2014.12.7.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누가복음1:26-38)

[성경본문] 누가복음1:26-38개역개정

26.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누가복음1:26-38/2014.12.7.오전)


1. 일본의 엔화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설 때 1달러에 87엔 하던 것이 어제 보니 120엔을 돌파했으니, 화폐 가치로 보면 일본 국민은 2년 동안에 앉아서 38%의 재산을 날려 보낸 셈입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세계 경제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안정을 찾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안정되고 합리적인 화폐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의 말에 의하면 미국이 제 나라의 경제를 살리려고 달러를 마구 찍어서 뿌려대는 바람에, 오늘의 1달러 가치는 1970년대의 5-6센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도 1980년대만 해도 1만 위인의 화폐는 부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도시의 평균 소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도 시간이 갈수록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보고, 자산을 지키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도리어 그 집에서 쫓겨나거나 집 때문에 더욱 가난해지고 눈덩어리처럼 불어나는 채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고 있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열심히 저축하는 사람들일수록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모은 재산의 가치를 그만큼 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는 국가대로 막대한 빚으로 나라 살림을 꾸리는 것을 보면 이 세계경제라는 괴물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바벨론 성처럼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더욱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너나없이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놈의 돈 때문에 라고 핑계하면서 늘 돈 타령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무거운 짐을 지도록 만드는 인생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가 무엇인지 이런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대처할 수 있는 사고의 능력마저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하면서 서로가 상처를 입고 고통하게 된 원인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사업이 무너지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돈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반듯하게 자라지 못한 원인도 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교회도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돈타령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성도들이 말씀을 멀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원인을 제공하면서, 교회 와서 소망과 위로를 얻으려 왔던 사람들이 낙심한 채로 교회를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편 기자들처럼 문제와 고통 속에서도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세상이 우리에게 그 어떤 보장도 주지 못하며, 경제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종교란 본능에 따른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가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종교의 역할」 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종교란 신들, 혹은 그들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말대로라면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은커녕, 종교인이라는 말조차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치 중심이 아닌 본능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우리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을 고통 속에 빠져 절망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주어진 본문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3. 나사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라는 처녀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더불어 만들어 갈 미래의 가정과 자녀에 대한 꿈으로 가득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리아는 용모가 아름답고 겸손하며 성격이 온유하고, 신앙적으로는 경건하며 특별히 시편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가 동네 끝에 있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마리아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주고받았던 대화의 내용입니다.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그 위에 천사가 그녀에게 던진 말은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30-31절의 내용을 보면 마리아 너는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었고, 그래서 아들을 잉태하여 출산하게 될 것이고 그 이름은 예수라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34절에 보니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였습니다.
정혼한 요셉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그 어떤 남자도 육체적으로 가까이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천사가 착하고 순진한 소녀에게 돌 직구를 던진 것입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그것 가지고 시비할 사람이 없지만, 마리아가 살던 시대는 그야말로 생명을 건 모험이었고, 살아남을 가능성도 희박했습니다.
꿈에 한껏 부풀어 있던 마리아는 순간적으로 나락에 떨어진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4. 그래서 마리아는 처음에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천사는 계속해서 돌 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니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고 했습니다.
요셉의 아들을 낳을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별안간 하나님의 아들을 낳다니, 그리고 또 성령은 누구시란 말인가?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마리아가 알아듣거나 이해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지막 돌 직구를 던졌습니다.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는 것입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든지 간에 내가 지금 너에게 전달한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너에게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곁에서 섬기는 특별한 천사라고는 하지만 마리아에게 일방적으로 공격하듯이 계시를 전하고 그냥 가버리는 천사를 보면서 마리아가 너무도 불쌍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녀가 받은 충격,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 까지 견뎌야 하는 의심의 눈초리며 생명의 위협 등의 고통을 생각할 때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대체 요셉에게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며, 이 세상에 어떤 남자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사건을 듣고 이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5.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마지막 절인 38절에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갑자기 나타난 천사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거나, 남자를 알지 못한 채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런 문제를 위기 가운데로 몰아가려는 사단의 궤계가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건의 전말을 통해서 마리아 스스로가 세상에서 당할 환란이나 고통을 염려한 것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을 수용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자기 자신을 위탁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고통과 문제로 흔들리고 있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노아의 구원의 방주 사건은 물론이고, 아브라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이르도록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문제없이 고통도 없이 평안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거나 받은 복을 누린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조차도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기까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겪었고 마지막에는 순교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복음을 위해 걸어간 수많은 고난의 자취를 통해 남긴 위대한 영적 유산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것들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참 복이나 사명이나 소중한 것들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한결같이 어렵고 위험천만한 것들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 때 감당할 수 없는 일이요, 다 내 인생을 해롭게 만드는 것들뿐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업이 기울고 생활이 어려우면 헌금이 줄고, 구제하는 일에 인색해지고, 어려운 만큼 다른 곳에서 만회하려고 더 바빠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생활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6. 우리가 착하고 법을 지키면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면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받고 좋은 일이 있어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결과는 왜 반대로만 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통은 과연 어디서 왔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심심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장난삼아 불순종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잠간 뒤로 제쳐 두고 뱀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본문의 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 하고 고민했습니다.
34절에도 마리아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천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두려웠고, 고민했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린 결론인데 어째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출산하기 까지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제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내린 결론이었지만, 마리아는 어떤 고난과 죽음의 위험을 각오하고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주의 여종” 이라고 고백하면서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 기를 원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과 예상치 못한 계시를 받으면서 그 혼란의 와중에도 마지막 순간에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 말씀으로 스스로를 정결한 영혼이 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땅의 모든 것, 시간이나 물질이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생명까지 나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고,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7.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아무런 문제도 불편함도 두려움이나 고통도 없이 그야말로 천국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천국 같은 생활도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경제가 좋아지고 쌓아 놓은 재물이 늘어나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시편기자는 그런 인생을 보고 부러워했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죽을 때에도 평안히 죽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습니다(시73편).
그래서 자신이 지금까지 마음과 손을 깨끗이 하며 의인의 삶을 산 것이 참으로 헛되다고 까지 말할 정도였습니다(13)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답을 주셨습니까?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73:18-19) 고 했습니다.
그래서 22절에 스스로 고백하기를,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 같은 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짐승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리켜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삶을 가리켜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인생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시편기자의 표현대로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는 짐승에 불과한 것입니다.

8. 인생의 문제는 경제의 유무나 지식의 유무나 환경과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따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남에 있습니다.
마치 튼튼한 나무에서 그 가지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매는커녕 점점 말라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욕심이라고 하는 죄, 교만이라고 하는 죄가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진짜 문제는 보지도 못하고 늘 피상적인 문제만 붙들고 씨름하다가 그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죽음과 멸망을 맞이하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자기를 높이고 스스로의 영광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지상에서의 사명을 다하면 다시 그 분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문제나 고통에 마음이 빼앗기고 흔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난 문제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 하시는 뜻이 있음을 깨닫고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는 고백과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명감에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모습이며, 그 분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는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귀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결단 이런 고백이 우리를 세상의 그 어떤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주며, 내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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