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24.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열왕기하23:21-30)

[성경본문] 열왕기하23:21-30개역개정

21.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4.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25.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8.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열왕기하23:21-30/2016.7.24.오전)


1.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돈 석 냥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잃은 김 서방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친구인 박 서방이 주워서 곧 바로 김 서방을 찾아가 돌려주었는데, 웬일인지 김 서방은 이 돈은 내가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이미 내 돈이 아니고 주운 사람의 것이라고 하면서 한사코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로가 이 돈을 갖지 않으려고 다투다가 나중에는 친구 이 서방에게 찾아 가서 판결을 부탁했는데, 그 이 서방이 하는 말이 서로가 갖지 않으려고 싸우고 있으니 그렇다면 그 돈을 내가 갖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주머니에서 넉 냥을 꺼내서 김 서방과 박 서방에게 각각 두 냥씩 나누어 주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각각 한 냥씩만 손해 보는 것으로 하면 공평하지 않겠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으로 생각하면 택도 없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들어보니 우리 선조들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인정이 있고, 남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던 것 같아서 우리 조상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가슴에 훈훈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어제 인터넷 뉴스에 보니 요즘 한국에는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을 골탕 먹이는 알바들이 문제라고 합니다.
경험이 많고 일 잘 한다는 청년을 고용했는데, 다음 날 나타나지도 않거나,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차서 한 창 바쁠 때 소리도 없이 사라지거나 이렇게 해서 골탕을 먹이고는 그것을 인터넷 상에 올리고, 이런 무공(?)을 자랑하고 비법을 전수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요즘 눈만 뜨면 일어나고 있는 무법천지의 테러범하고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나가다가는 나라도 민족도 개인의 미래도 없다는 생각뿐입니다.

2. 인류 역사상 한 때 이름을 날렸던 문명국들은 나름대로의 시민 의식이나 도리를 규정하는 지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경우에는 화랑정신이 통일과 번영을 이루는 근간이 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본이 쓴 로마제국 멸망사에서도 로마가 망한 것은 로마를 지탱해 온 로마정신인 그래버타스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보면 국제대회를 치루는 스포츠는 승패에 따라 폭력으로 얼룩지는 난장판이 되기 일쑤이고,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나만 편하고, 내 개인의 유익을 따라 불법을 당연한 듯이 행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것처럼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불법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행하면 더 이상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 유행이 되고, 그 시대의 정신이 되고 새로운 질서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느낀 것은 2,600여 년 전의 이스라엘의 경우도 우리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새롭게 변화된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3. 불과 8살에 유다 왕이 된 요시야가 20살이 되면서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이 우상숭배를 뿌리 뽑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데 사방의 온갖 우상을 가져다가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친 므낫세와 그 이전의 왕들이 세웠던 온갖 우상들을 다 갈아엎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상숭배와 관련된 온갖 부도덕함과 잘못된 관습들도 뿌리 뽑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가 오늘 본문의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본문 22절에도 그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킨 후에 이 유월절 행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함으로 생겨난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애급에 쏟아 부은 10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재앙으로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처음난 생명을 멸하시는데, 그 때 이스라엘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재앙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넘어가게 함으로 재앙을 면하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이 유월절은 우상숭배의 억압에서 하나님 중심의 백성으로 변화된 사건입니다.
한 마디로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이라는 믿음의 공동체와 민족의 출발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4.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이 유월절 기간 중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말씀대로 그 기간 중에 십자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유월절 사건과 동일한 것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노예 상태에서 압제를 당하여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로 애굽에서 죽음을 넘어 구원받고 자유를 얻은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온 인류가 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용서받고 구원 얻은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 년에 몇 번 시행하고 있는 성찬식이 바로 이것을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문에 발랐던 양의 피는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는 오랜 세월동안 이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왕하9장 솔로몬의 유월절 행사가 있었고, 대하30장에 보면 히스기야의 유월절 행사가 있었고, 요시야 이후에 스룹바벨의 유월절을 지키는 행사(스6:19-22)가 있었지만, 오늘 본문 22절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많은 왕들도 하지 못했던 이 일을 어떻게 젊은 요시야가 할 수 있었습니까?
본문 24-25절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님을 향한 남다른 요시야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25절에서는 요시야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같은 왕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5.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약책, 성전에서 발견한 책, 율법의 말씀, 율법을 따라 등의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시야 임금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월절 행사를 지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역대를 통해서 이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서 시작된 민족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려서 늘 혼란과 살상이 반복되었고 고통과 실패 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내가 누구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계속해서 위기가 오며, 결국에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도 하나님이 영적으로 출애굽하게 하신 나라요 민족입니다.
8.15 해방을 시작으로 해서 70여 년간 얼마나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번영과 축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민족을 이방의 복음의 빛으로 삼으시려는 거룩한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나서 잘 먹고 잘사는 줄 알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욕심과 교만에 사로잡힌 채,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 앞에 무슨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줄로 모르고 있습니다.

6. 요시야의 종교개혁 핵심이 무엇입니까?
24절에 보니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루려 한다는 말의 의미는 일으키고 견고하게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되게 하고,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을 참 약속으로 받아 누리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신학과 신앙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 공부 많이 한 신학자들이나 훌륭한 목회자들이 왜곡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더 이상 변화받기를 거부하는 성도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그 구원의 표징으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데, 그 이후에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보다 지금이 몇 배로 자라났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심을 얻는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가 100배는 아니라도 30배는 성장했느냐는 것입니다.
더 많이 양보해서 30배는 아니라도 10배는 성장했느냐 하면 목회자로서 제가 볼 때는 10배는커녕 거의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신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출산하면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건강하게 그리고 빨리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남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하고 더 예쁘고 귀한 대접을 받는 자식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은 돌보는 사람도 없고 사랑을 쏟아 주는 사람도 없는 천덕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체험하지 못하고, 말씀의 능력도 소유하지 못한 채 무능력 그 자체에 빠져 살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5절에 보니 “요시야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 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7. 교회를 주님의 몸 된 교회요, 은혜의 제단이라고 하면서 이 교회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쏟았고 얼마나 희생을 쏟았습니까?
믿음의 형제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얼마 전에는 교회가 건축한다면 다 도망갔다고 하는데, 요즘은 선교한다고 해도 교인들이 도망간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사람들이 주일은 거룩한 날이니 하루 종일 성전에서 머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 공부하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는데, 지금은 일 주일에 한 시간 예배하고, 십일조 생활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언제 전도하고 언제 중보기도하며, 언제 섬기고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하나가 운명, 운명하는데 그 운명이 오늘 본문 26-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운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참담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 임금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지도자를 따라와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자식인 여호아하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운명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힘으로 돌이키거나 바꾸거나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인생의 길을 말합니다.
24-25장의 내용을 보면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할 때 보다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멸망을 맛보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길이었습니다.

8.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9-30절에 기록된대로 요시야 임금을 데려가시고 유다나라에 본격적인 심판을 내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시야 임금이 믿음으로 살았는데 비참하게 죽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마치 택자와 불택자를 갈라놓는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것입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에서 어느 날 하나님이 에녹을 데리고 가신 것처럼(창5:24),
엘리야를 불병거에 태워 홀연히 데리고 가신 것처럼(왕하2:11),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성도들을 7년 대환란을 피해서 공중혼인 잔치에 이끌어 올리시는 휴거의 사건처럼(살전4:17), 그렇게 요시야 임금을 데려 가심으로 우상숭배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받을 멸망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에게 망했는데도 유다가 살아남았으니 이것은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낫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정통성은 유다에게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27절에 보니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유다도 이스라엘처럼, 이방 나라들처럼 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기원전 586년에 요시야가 가고 없는 남왕국 유다는 신흥제국 바벨론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므낫세를 포함한 유다 전체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9. 최근 돌아가는 국제정세와 사람들의 행동과 그 생각하는 수준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남은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언약의 말씀에 기록된대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배신과 미움 속에서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치열한 싸움 속에 우리처럼 연약한 인생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성령의 역사도 사라지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니 기도가 끊어지고, 교회의 문은 닫히고 사랑마저 식어버린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요시야 임금이 힘을 쏟은 유월절의 핵심은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구원, 자유, 해방에 대한 감격입니다.

요시야는 이러한 감격 속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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