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7.31.물은 아래로 물고기는 위로(열왕기하23:31-24:7)
[성경본문] 열왕기하23:31-37개역개정
31.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
32.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36.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37.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물은 아래로 물고기는 위로(열왕기하23:31-24:7/2016.7.31.오전)
1. 로버트 슐러 라는 목사님이 잉어들을 관찰하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 같이 부화된 잉어들도 몇 달이 지나면 그 성장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했습니다.
살찌고 튼튼한 잉어는 먹이를 잘 받아먹고 스스럼없이 다니는데 반해서, 여위고 부실한 잉어들은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달아나고 숨는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겁쟁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편안하게 먹이를 먹을 수 있으며,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삶이나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두려움이 있고,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거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만났다고 하루아침에 우리 인생이 무너진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며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온 인생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죄와 고통에 사로잡힌 채 심판을 향해 나아가던 우리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확실하다면, 이것은 소위 운명을 바꾼 사건이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가 되며, 세상의 어떤 것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가장 적당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롬8: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고 하면서, 계속해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38-39)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제대로 자리를 잡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믿음의 대적인 두려움과 근심과 고통을 몰아내고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케 하는 줄 믿습니다.
2. 우리가 열왕기서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표현해서 강물은 아래로 흐르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그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입니다.
물줄기는 아래를 향해 내려가면서 모든 것들을 쓸어 가는데, 대부분은 생명이 없는 것들이거나 생명은 있어도 힘이 없는 것들은 다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아무리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어도 물결에 떠내려가는 법이 없습니다.
도리어 연어 같은 물고기는 바다와 강을 거슬러 수 천 킬로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의 근원지 가까이에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곳 까지 올라가서 그곳에서 알을 낳고는 물고기의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열왕기에 기록된 왕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사란 마치 물은 아래로 흐르고 물고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임금들은 물고기가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듯이, 국가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 중심에 서서 위로 올라가는 신앙을 통해 자신도 살고 백성들이 다 함께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나 본문의 여호아하스나 여호야김과 같은 임금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과 함께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결말과, 그들에게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우리 인생의 바른 답을 얻기를 원합니다.
3. 열왕기서 전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남북 왕조를 포함한 사울에게서 시드기야 임금에 이르기까지 42명의 왕들에 대한 평가는 오직 한 가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문 32절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있었습니다.
열왕기서와 역대기서는 통치자들에 대하여 평가할 때, 각각 그것을 기록한 사람에 의해서 약간의 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지만, 핵심은 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는지, 정직하게 행하였는지 그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부수적인 평가 기준은 다윗의 마음을 가지고 다윗이 나아갔던 믿음의 길로 갔느냐 아니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나 여호야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한결같이 “자기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32,37)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조상들이란 다윗 같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므낫세 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왕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같은 혈통을 타고 다윗 왕가의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조상을 각각 다른 부류로 나누고 있습니까?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비록 혈통은 다윗 왕가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그 행위나 생각에서,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목적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곱과 에서가 한 배, 한 혈통에서 나온 형제요 이삭의 아들이라도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버렸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유는 야곱은 그 행동과 생각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에서는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4. 열왕기서에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조상이 문제였습니다.
왜 조상이 문제입니까? 32절에 보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이 행한 악이란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버린 죄요, 둘째는 욕심을 따라 우상 숭배한 죄입니다.
그리고 불법과 불의를 행하면서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린 죄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들처럼 세상을 제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야 임금이 전쟁터에서 죽고 나자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그의 둘째 아들인 여호아하스를 왕좌에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이 아버지 요시야와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그 결과, 애급 왕 느고가 그를 사로잡아 애급 나라에 끌고 가서 임금 되지 못하게 하고, 유다 백성들이 애급의 허락도 없이 제 마음대로 왕을 세운 죄를 물어서 은100달란트와 금 1달란트의 조공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다윗의 혈통이라도 하나님을 떠나니 그 당연한 왕적 지위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나라의 권세에 휘둘리고 아무런 자유도 권한도 없습니다.
인생에 제일 소중한 하나님을 떠나고 나니 그들의 삶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제일 소중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가슴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여호아하스는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그 두려워하는 것이 그에게 임하였고, 그 고통은 이방 나라 애급에 끌려가 고생하다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5. 애급 왕 느고는 여호아하스의 형인 여호야김이 친 애급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대신하여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여호야김도 부친 요시야를 따르지 않고 망령된 조상들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떠난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머리를 상당히 굴린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 힘 자기 지혜가 아니고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야김이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원전 605년에 갈그미스 전투에서 망해가는 앗수르와 애급이 연합전선을 펴서 신흥제국 바벨론에 대항했지만 패배를 당하자, 팔레스틴 전역이 바벨론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바벨론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회만 있으면 바벨론을 떠나 애급에 속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601년에 바벨론이 애급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얼른 바벨론에 바치는 조공을 중단하고 애급에 붙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급에 붙어 있으면 조공은 바치고 자유는 없어도 그것이 약소국인 유다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년 후에 바벨론은 유다의 주변에 있는 아람, 모압, 암몬 군사들을 동원해서 유다를 치게 만들었고, 당연히 믿고 있었던 애급의 구원병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그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여호야긴이 다스린 지 3달 만에, 기원전 597년 3월16일에 유다는 바벨론에 점령당하고 여호야긴도 바벨론에 끌려가서 37년을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6.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여호야김은 교만하고 고집이 세고 사악한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그는 여러 번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때 마다 예레미야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렘36:3절에 보면, 하나님은 유다 나라가 불순종으로 인해 스스로 당하는 재난을 보고 이제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그 악행과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라는 위대한 선지자를 유다나라를 위해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예레미야를 가까이하면 분명 유다에게 사는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진노도 풀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다가 유다 전체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무너져 가는 유다를 살리고 회복시키려고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옥에 갇혀 자신이 움직일 수 없으니,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왕실서기관인 바룩에게 기록하게 하였고, 그것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여호아김 임금은 그 두루마리 성경을 가져오게 해서, 그것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 화롯불에 태우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이 유다에게 내려 주신 마지막 은혜를 자신의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불태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아하스나 여호야김 임금을 통해서 귀중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머리를 쓰고 꾀를 내지만, 그 결과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나쁜 머리의 특징은 쓰면 쓸수록 더욱 어려운 일만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보호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요셉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도 그랬습니다.
7. 우리는 악한 왕들을 통해서 악한 조상들의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죄의 성향이 얼마나 강하고, 그 영향력과 파괴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이스탄불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말마라 해협이 있었고, 그 가까운 곳에 작은 섬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그 섬들은 왕자의 섬이라고 했는데, 이유는 왕의 진노를 받아 유배된 왕자들의 슬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하나는 공주의 섬이 있었습니다.
옛날 어느 왕에게 너무 아름답고 지혜로운 딸이 있었는데 동방의 현자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 딸은 20살이 되기 전에 뱀에게 물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왕은 잠도 못자고 고민하다가 섬 하나를 지정하고 그곳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 시키고, 공주와 종들, 그리고 시위대를 주둔시켜 보호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살이 되던 해, 폭풍으로 외국배가 파선되어 그 섬에 표류했는데, 그것을 구경하러 나온 공주가 그 배의 젊은 청년을 흠모하게 되었고, 밤에 몰래 그 섬에 상륙한 청년이 공주에게 사랑의 표시로 준 꽃다발에 작은 독사가 숨어 있다고 공주를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 혹은 섭리라고 하지만, 저는 죄에 관해서는 특히 죄의 유전에 관해서는 이 세상적인 운명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는 죄는 그 결과를 설명할 때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운명처럼 그렇게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어떤 운명도 능히 바꾸실 수 있으며, 그 증거가 바로 우리 자신들인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우리를 이런 운명에서 해방시켰고, 우리를 온갖 저주와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시킨 줄 믿습니다.
8. 이 불신앙과 혼돈의 21세기에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길로 가야 합니까?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는다고 했는데, 지푸라기를 잡으면 소망이 없으며 확실하게 물에 빠져 죽습니다.
위기를 만난 인생은 내가 지금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인생의 바른 답을 얻을 수 있는지, 어디로 가야 구원이 있고 소망이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병들었을 때 좋은 의사를 만나야 사는 길이 열리듯이, 유다나라처럼 위기를 만났을 때 애급에 붙었다가 앗수르에 붙었다가 바벨론에 붙었다가 이리저리 흔들리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사는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5:4) 고 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노엽게 만들고, 애급이나 바벨론을 의지하면 끝도 없이 그들에게 시달리면서 수탈을 당할 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떠난 유다 나라의 임금들은 새롭게 왕이 되어도 한결같이 그들은 유다나라의 백성들을 위한 임금이 아니라, 대적 원수인 애급이나 바벨론을 위한 허수아비 임금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물고기가 왜 물을 거슬러 위로 올라갑니까? 위로 올라가야 사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떠내려가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위를 바라보고 위를 향해 올라가고 내 믿음을 키울 때,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늘 승리하는 자의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