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6.은혜 입은 자가 가는 길(열왕기하23:1-20)

[성경본문] 열왕기하23:1-20개역개정

1.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4.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것들의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8.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9.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10.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11.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15.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들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은혜 입은 자가 가는 길(열왕기하23:1-20/2016.6.26.오전)

1. 요시야 임금은 성전에서 발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자신의 옷만 찢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심령을 찢으면서 애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시야를 귀하게 보시고 유대나라를 향한 심판을 연기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임금 때에도 그가 교만한 마음을 뉘우칠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 임금의 생전에는 진노를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로 볼 때,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진노하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임금은 비록 나이는 젊지만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된 사실을 알고 그는 소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회개하면,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에게 소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요시야 임금이 생각해 보니,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왕국 유대 나라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위태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하면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사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시야 임금은 결단하기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입은 요시야 임금이 무엇에 소망을 두었으며, 이 일을 위해 어떤 길로 나갔는지 깨달아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과 심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귀한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2. 요시야 임금은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을 보니 그곳에는 우리 조상들과 전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우리가 망했다면, 이제부터는 여기에 기록된 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했으니,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도 그렇게 한 번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제안에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겼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엇입니까?
유대 땅만이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이었던 벧엘과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모든 우상을 척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우선순위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제일 급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따질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임금은 생각하기를 유대 땅에 쏟아 부을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을 때, 이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첫 번째 일이 무엇입니까?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과 우상을 섬기던 제단들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일에 참여한 제사장들을 다 쫓아내고 죽였습니다.

3. 이러한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 7절에 보면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희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 안에도 남창의 집이 있었고, 또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믿는 여신 아세라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휘장 같은 것을 만드는 곳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지역은 내리는 비가 적고 그래서 늘 물이 부족함으로 이방인들이 우상을 제사할 때 비를 내리고 풍요를 불러오는 신을 만들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알신이고 그 바알신의 부인이 바로 아세라신이었습니다.
우상도 부부로 만들어 둔 것은 그들이 부부관계를 가짐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땅이 열매를 맺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음란하고 패역한 우상숭배가 하나님의 성전 한 쪽에서도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창은 거룩한 신에게 드려짐으로 거룩하게 된 자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카다쉬에서 유래된 말로, 이것은 남색하는 자, 곧 동성애를 말하는 것이고, 일본어 성경에도 신전남창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당시의 성전 제사장들이 우상숭배하는 산당의 제사장들과 교류가 있었고, 서로 양쪽을 관리하던지, 어떤 편의를 봐 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타락했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그 당시의 유대 나라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얼마나 문란하고 어지러웠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이 거룩한 성전이지 성전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되었고, 성전에서 율법책이 없어져도 요시야 임금 때까지 그것을 찾는 자가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 임금은 생명을 걸고 성전을 정화하고, 지금까지 그 어느 임금도 철저하게 뿌리 뽑지 못했던 산당들을 다 태우고 헐고 부수고 말았습니다.

4. 솔로몬 왕 이후에 여러 왕들이 타락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을 뿌리 뽑고 척결한 임금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정치적으로나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임금은 백성들의 신앙이 바로서야 나라가 살고 백성이 형통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던 제단은 남김없이 뿌리를 뽑았고, 그것에 두 번 다시 제단을 만들지 못하도록 불사르고 찍고 깨트리고 헐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뿌리고, 기드론 시냇가에 쏟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13절에 보면 솔로몬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각종 이방 우상을 섬기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가리켜 본문에서는 멸망의 산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곳은 감람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늘 기도하시던 장소였습니다.
이곳이 요시야 임금 시대까지 각국 나라의 온갖 우상을 섬기던 장소로 사용된 곳인데, 역대 임금들도 손을 쓸 수 없었지만, 요시야는 생명을 걸고 다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그곳을 우상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부정하고 저주받은 장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젊은 요시야 임금이 시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을 위한 왕권강화도 아니고, 경제적인 발전도 아니고, 군비를 축적하거나 외교를 강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잘 섬겨서 진노와 저주를 면하고 우리도 복 받은 백성으로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5.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 시대를 다시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이 무엇이냐? 개혁하고 고치고 거듭남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타성에 젖어 들기 마련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사가 힘들고 불편하여 귀찮고 육체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리새우가 왜 죽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새우가 젊어서는 열심히 허물을 벗고 말끔하게 새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좋아합니다.
그럴 때 마다 보들보들하고 깨끗해 보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보리새우는 허물 벗는 일이 힘들고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딱딱해진 제 자신의 껍질에 갇혀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보리새우의 모습이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하고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젊어서는 열심도 있고, 뜨거운 헌신도 있고, 그래서 주님을 위해 충성된 살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 탓하고 건강 탓하고 환경과 조건을 탓하면서 뜨거웠던 가슴은 식어버리고 이제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살고 내 자녀들도 함께 살려면 요시야 임금처럼 개혁을 해야 합니다.
성도의 개혁은 세상 풍조와 육신의 욕심과 게으름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6. 지난 23일에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떠나느냐 남느냐를 놓고 국민투표를 했는데, 결과는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유럽은 가장 민주주의적이고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 대이동에 비교할 만큼 난민과 이민의 물결이 전 유럽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래 전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어느 지역 어느 마을을 방문해도 그 중심에는 교회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이정표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도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교회가 인생의 삶이나 공동체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1세기의 유럽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옛날에는 대한민국 교회들처럼 활발하게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지역사회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교회 자체의 생존이 위협을 받을 정도로 연약해지고 말았고, 최근에는 노인들만 몇 사람 왔다 갔다 하는 박물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뜨거웠고 그들도 옛날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4년 전에 아내와 함께 영국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녀간다는 고츠월드(Cotswolds)를 런던의 친구의 안내로 다녀왔습니다.
런던에서 옥스퍼드를 거쳐 자동차로 약 2시간 반 정도 달리면 나오는 지역인데,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로 소문난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 한적한 곳에 1300여 년 된 오래된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교회는 크고 잘 지어졌지만 한 눈에 가난한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뒷 벽면에 보면 한쪽에는 역대 교역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시무했던 연수가 기록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동판에 새겨진 어느 한 성도에 관한 글이 있었습니다.
그는 1867년에 태어나 1946년에 소천한 베아트리체 무어라는 성도로, 그가 살았던 80년의 생애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충성된 예배자이며 이 교회와 지역을 위한 가장 풍성한 후원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짤막한 내용이었지만 지금도 그곳을 방문했을 때를 생각하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향기와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7. 자신의 죄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고, 조상들과 그 시대의 사람들의 죄와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 그런 민족이었지만, 요시야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특별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이었습니까?
유대 나라의 역사에서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을 갔습니다.
아무도 시도해 본적도 없는 그런 신앙의 개혁에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대로 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럽히는 것들은 그것이 신이라 불리는 우상이든지, 그것이 사람들이 만든 제단이든지, 그것이 어떤 제도이고 어떤 사람이든지, 거룩해야만 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럽히는 것이라면 다 쓸어버리고 없애버리자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유대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맹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맹렬한 진노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언약갱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은 약속을 새로 만들거나 그 내용을 보강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의 대상인 인간이 그 언약의 조건에 맞추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살았지만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제 마음대로 살면서, 그래서 그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한 채 살았던 이 사람들이 다시 처음 출발로 되돌아가는 재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 본문 2,3절에 기록된 이 언약이라는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뻬리트」 로 자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대 사람들이 당사자들끼리 약속을 나눌 때, 동물을 잡아서 그 한가운데를 갈라놓고 그 짐승의 가운데로 약속한 당사자들이 지나감으로 그 약속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창15장에 보면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들을 전부 중간을 쪼개어서 갈라놓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한 밤중에 큰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면서 하나님의 불이 그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17).
왜 이렇게 합니까? 이 약속을 어기면 이 동물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이라는 것, 약속이라는 것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뻬리트」 라는 이 단어의 또 다른 의미는, 족쇄를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당사자들이 서로 약속을 하면 그 약속에 족쇄처럼 묶여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서약의 경우에는 남녀 간의 삶이 서로 상대방에게 묶여 있어 제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라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가지와 같은 이스라엘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 죄를 심판하시고 죄 악행에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이 곁가지와 같은 우리를 모른 척 하고 외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의 언약의 재물로 십자가에서 희생 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받아야만 할 모든 진노를 다 쏟으셨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언약의 대상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귀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구원으로 불러주시고 귀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죄 때문에 망할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시야처럼 우리 자신을 고치고 언약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가 말씀과 성령으로 치료되고 회복되어 죄악과 우상숭배에 대한 진노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고 구원받고 새롭게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요시야 임금처럼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가 그 분의 도우심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사명인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