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9.은혜를 입은 요시야(열왕기하22:14-20)

[성경본문] 열왕기하22:14-20개역개정

14.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은혜를 입은 요시야(열왕기하22:14-20/2016.6.19.오전)


1.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 땅을 홍수로 다 쓸어버려서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홍수를 내리시는 분명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6:5-6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고 했으며, 그래서 13절에 가서는,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가족과 방주를 탄 짐승들을 제외하고 온 땅이 다 홍수로 멸망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할 때 노아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교해 볼 때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 그 때 보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이 아직 물 심판이나 불 심판이 임하지 아니했으니 지금이 그 때 보다는 아무래도 덜 부패하고 그래서 사람 살만한 세상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불법과 부패함이 덜 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 때 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낫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2. 지금 온 세상이 다 함께 제 정신이 아닙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눈만 뜨면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사회의 구석구석에 썩어서 곪아 터지지 않은 곳이 없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한 그런 죄악이 우리 주위에 만연하고 있으며, 악을 행한 자가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공의를 외치는 자는 내어 쫓기고 파멸당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노아의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더 악하다면 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죄악에 대한 심판을 포기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를 포함한 이 시대가 그래도 그 때 보다는 의롭고 정직해서입니까?
우리는 지금도 매일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더 이상 진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부패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 시대에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결코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나 심판이 없이 오늘 잘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아무데나 쏟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오직 한 군데 하나님의 진노가 지금도 불타오르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자기 아들이라도, 그 분이 죄도 없이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을지라도 용서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죗값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 박고 살을 찢고 한 방울의 피도 남가지 않고 다 흘리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만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무섭고 크고 두려운 것입니다.

3.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자신의 허물과 죄를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잘못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인간의 죄를 이해하거나 그 죄를 보고도 못 본 척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죄와 불법에 대해서는 한 번도 타협하시거나 눈 감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에 그 진노를, 그 심판을 전부 자신의 아들 위에 쏟으신 것입니다.
갓난아기가 잠을 자고 있는 방에 무서운 독사가 들어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치켜세우고 아이가 잠자고 있는 곁으로 다가갑니다.
놀란 어머니는 즉시 달려가 뱀과 싸워서 아이를 위기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자신이 잠자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가 생명을 걸고 자신을 지켜 준 것을 알지도 못한 채 평안히 자고 있습니다.
아이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내 죄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희생을 치루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신 하여 희생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제일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어 용서받은 구원의 능력을 불신하거나 의심하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전해주는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가 제일 불쌍한 인생이요, 그 믿음을 거부하고 방해하고 박해하는 자가 제일 큰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 받은 인생은 누구입니까?
복음의 말씀을 듣고 용서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4. 오늘 본문을 보면 제사장 힐기야가 훌다라고 하는 여선지자에게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본문 16절로 말씀에 기록된대로의 재앙을 이 땅 이 거민들에게 내리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신28:15-68절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둘째는 요시야 왕에 대한 예언으로서, 19절에 보니 여호와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회개했기 때문에 나도 너의 말을 들어서 요시야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이 땅 이 민족에게 임하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라와 민족에게 평안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요시야 임금이 회개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유다를 향한 심판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본문 17절에, “이는 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에게 철저히 배신당하고 자신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그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죽은 우상에게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화가 전연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요시야 임금의 조부에 해당하는 므낫세의 범죄입니다.
그 백성을 포함해서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가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이 회개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5.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전체에게 내리시고자 하시는 재앙이 무엇입니까?
어디를 가든지 저주가 따라 다니고, 식탁과 각종 소산이며, 그 몸에서 출생하는 자녀들과 후손들까지 저주를 받으며, 몸의 각종 질병이며,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내리시고, 전쟁에서 패하고, 자녀들은 포로가 되고, 시체는 새와 짐승의 밥이 되고, 정신병, 피부병, 맹인, 폐병 등의 모든 질병이며, 아내를 빼앗기고 농작물을 빼앗기며 아무도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없으며, 온갖 저주, 고통, 두려움, 흉년의 재앙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제 몸에서 난 자식을 몰래 먹는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산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통을 반드시 이스라엘에 쏟아 붓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반복합니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본에 살면서 느끼는 것인데,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이 사기를 당합니다.
둘째는 너무 아는 것이 없어도 사기를 당합니다.
셋째는 마음이 너무 약해도 사기를 당합니다.
그런데 이 우상숭배의 원인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을 고생한 이유도 욕심 때문입니다(시78:30,106:14).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약1:15)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갈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욕심을 따라 살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도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인들 못 본척하고 우리의 죄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6. 그렇다면 어떻게 요시야는 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까?
요시야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행한 죄가 얼마나 크고, 그 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둘째는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는 여호와의 재앙을 듣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옷을 찢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죄인에게는 재앙과 심판을 내리시지만, 그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다윗 왕도 그 죄가 너무 크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도리어 가장 위대한 임금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행13:22).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죄에 대한 그 분의 진노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과 같아서 아무도 끌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하33:12절 이하에 보면, 므낫세처럼 악독하고 못된 왕이라할지라도, 그가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 고생하는 가운데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할 때, 13절에 보니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왕위를 회복하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왕하 25장에 보면, 유대 나라 마지막 왕인 요시야의 아들인 시드기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선지자를 죽이려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느브갓네살의 4차 침공을 받고 유대 나라 자체가 멸망에 이르고 맙니다.
그 자신은 도망가다가 사로잡혀서 그 앞에서 아들들의 죽임 당함을 본 후에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서 바벨론으로 짐승처럼 끌려가서 그곳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이로 보건데 우리 하나님은 죄에 대한 맹렬한 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7.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의 사람들은 꿈쟁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다니엘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꿈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꿈으로 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일맥상통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이 시기당하고,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도 가고, 인생의 별의 별 일을 다 당해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꿈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시험에 잘 빠지기 마련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화를 내고 싸우고 낙심하고 큰일 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는 신경도 안씁니다.
왜?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기 때문입니다.
골치 아픈 일이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삽니다.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 빼앗기고 신경 쓰다가는 믿음의 사람도 마귀의 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이 임하고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이 시대와 나를 향한 말씀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8. 본문 20절의 말씀, 여선지자 훌다가 하나님께 받아서 한 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시야 임금이 죽을 때 까지 하나님이 은혜로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근거는 오직 하나입니다.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회개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 주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가 없어서 의인이라서 평안하고 감사 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 시대나 소돔 고모라 사람들 보다 더 흉악한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때문에 용서받고 구원받고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 줄 믿습니다.
내 죄가 깨달아지면 깨달아질수록 내 죄 때문에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자 분들은 매일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서 세수를 하듯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자신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요시야 임금처럼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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