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7.구원하시는 하나님(열왕기하19:8-19)

[성경본문] 열왕기하19:8-19개역개정

8.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

9.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14.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구원하시는 하나님(열왕기하19:8-19/2016.2.7.오전)
1. 한 동안 에볼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다가 그것이 잠잠해지니 최근에는 지카 바이러스라는 것이 맹위를 떨치며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 숲에 사는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특히 임신한 여성이 물릴 경우에는 태속의 어린아이의 머리가 작아지는 소위 소두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기에 물린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하는데, 아직도 예방이나 치료약이 없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에볼라 보다 더 무섭다고 합니다.
최첨단 문명세계를 자랑하는 21세기에서 모기와의 전쟁이 웬 말입니까?
그런데 지난 2013년도 한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21살의 박모세라는 청년이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불러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애국가를 불렀다고 어떻게 전 세계에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모친 조영애씨가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병원에서는 태아의 뇌가 기형이니 생존율은 제로 퍼센트니 유산을 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하여 아이를 재왕절개로 낳았다고 합니다.
낳자마자 어린아이의 대뇌를 70%, 소뇌를 90% 잘라내어 겨우 생명만 건졌지만, 의사는 보고, 듣고, 말하고,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박모세는 시력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와 자폐증까지 앓는 중복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5살 때는 사도신경을 다 외우고, 말문이 열리면서 7살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음정이나 박자가 완벽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병원에서 MRI를 찍을 때 마다 뇌세포가 늘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병원에서는 과학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조영애씨는 세상에 건강한 아이들도 많은데 왜 내 자식만 이래야 하는가 하고 불평한 번 하지 아니하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그 아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3년에 평창 올림픽에서 애국가를 부른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2. 인생이란 살면서 감당하기 어렵고 인내하기가 죽음 보다 고통스러운 일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런 고통, 그렇게 절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전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나라의 히스기야 임금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한 앗수르의 공갈과 협박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히스기야 임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면 산헤립의 환심을 사서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나중에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고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기도하는 인생을 하나님이 외면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과,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셨습니까?
인간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서 어떻게 유다를 구원하시고 히스기아 임금을 고난 가운데서 건지셨습니까?

3.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히스기아를 압박하던 랍사게는 전략상 산헤립과 합류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물러납니다.
바로 그 때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두려워할 만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스왕 디르하가가 히스기야를 돕기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디르하가는 애굽의 25대 왕조의 3번째 임금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다급해진 산헤립은 지난 번 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히스기아를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펼쳐 놓은 산헤립의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아 임금이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자기 백성의 모든 형편을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특히 수치와 두려움과 고통에서 건지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경험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것을 고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1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그래서 눈과 귀를 가지시고 듣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4. 우리가 기도할 때,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어떻게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며 구원하시는 분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 하나님을 더욱 알고 배우는데 힘쓰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아는 만큼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넘치고 내일에 대한 소망으로 뜨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이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히스기야 임금의 상황에 딱 맞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 살피시는 이로다. 많은 군대로 구원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시33:15-19)고 하였습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어떤 사람은 언덕길에 차려진 성황당의 귀신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눈도 귀도 입도 없이 사람이 만들면 만들어진 대로, 앉혀 놓으면 놓인 그대로 움직일 줄 모르는 우상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 받기보다는 모세를 대항하여 온 애급을 망하게 하는 바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 아래 온 우주 가운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오,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이시오, 만물과 인생을 통해서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5. 그러므로 히스기야 임금의 기도가 다릅니다.
19절에 보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데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풍전등화와 같은 유대 나라의 위기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인생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자가 없으며, 연약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가 하나님 스스로에게 큰 영광이 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신들이 어떤 존재이며, 앗수르의 산헤립이 얼마나 허망한 인생인지 17-18절에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들과 그들이 믿는 신들의 종말이 어떠한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히스기야의 지식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19절에서 말하는 “알리이다” 하는 이「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체험하고 얻은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내가 그 분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사실을 내가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신앙고백이 전연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행17:11)했다고 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받는 자들을 더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6.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으며,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20절 이하에서 그 사실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귀와 눈을 열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협박하던 산헤립과 랍사게며 그 일행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세세히 밝히고 계셨습니다.
앗수르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 보다 자기 말을 믿고, 자기를 의지하라고 했지만, 히스기야는 하나님 없는 어리석은 자의 말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죄 가운데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구원의 주로 오셨지만, 아무도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인류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십자가의 길에서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비웃음을 당하시며 고통하셨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배신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과 받은 사명이 너무 크고 귀한 것인 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 한 가운데 계셨지만, 늘 그분이 강조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지향하는 신앙의 본질이요 목적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임금은 온갖 시련과 협박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7. 과연 현실적으로 보면 앗수르 왕이 말하는 것이 조금은 과장된 말일 수도 있지만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지독한 앗수르의 군대의 손에서 구원받은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민족을 앗수르 임금으로부터 구원한 신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너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도 먹고 살고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이 앗수르의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 한 것처럼, 지금도 믿는 자들의 신앙을 파괴하려고,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파괴하려고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과 이유도 없는 불안이며,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통해 우리를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믿음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세밀하게 관찰하시고, 가까이 오셔서 귀를 기울여 듣고 계시며, 우리를 침 삼킬 동안도 놓치지 않으시고 살피시사, 우리의 기도에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고, 확실하고 구하는 것 보다 더욱 풍성하게 채우시고 구원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적들에게 둘려 쌓여 모함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사자 굴에 떨어져도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그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자는 구원을 얻는 줄 믿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이 온갖 유혹과 협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다윗 집안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약의 말씀을 붙들면 믿음으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고난 중에라도 십자가를 붙들면 위로와 회복과 승리를 얻는 줄 믿습니다.

8. 그러나 유다를 공격하고 히스기아를 협박하던 산헤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에 보니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천하의 무적 대군을 이끌던 산헤립이라도 풍문에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헛소문 때문에 결국에는 칼에 망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인간이 큰 소리치고 잘난 척하지만 근본적으로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어리석게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인생들의 도움이나 구하러 다니는 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분명하게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고 하셨습니다.

오늘 많은 문제와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세상 사람들이 우왕좌왕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 중심에 서서 기도하면 유다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모든 문제 가운데서 건지시고,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열방 가운데서 영광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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