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31.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열왕기하19:1-7)
[성경본문] 열왕기하19:1-7개역개정
1.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5.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열왕기하19:1-7/2016.1.31.오전)
1. 한국에는 요즘 2030세대를 N포세대라 부른다고 합니다.
소위 자포자기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온갖 사랑을 다 받으면서 자라났지만, 정작 사회에 진출해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뜰하게 절약하고 푼돈을 열심히 모아본들, 푼돈은 아무리 모아도 푼돈이고,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차라리 젊었을 때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인생을 즐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품 가방이나 해외여행이나 값 비싼 취미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수긍하며 그렇게라도 행복을 맛보라고 합니다마는, 과연 우리가 환경이 어렵다고, 주어진 조건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이렇게 자신들의 미래까지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은 인내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미래를 꿈꾸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미래에 어울리는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명망이 있는 훌륭한 목사님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삶 자체가 남들보다 몇 배의 뼈를 깎아내는 아픔과 희생을 인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도 어려서 미국에 건너가서 맨 바닥에서 낮에는 청소며 쓰레기 치우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한 후에 목사님이 되고 선교사님이 되었습니다.
환경이 어려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심장 수술까지 받을 정도로 부부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미국 최대 교단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우리 인생은 오늘만 행복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오늘은 집이 없어 빈들에 천막을 치고 살아도 내일에 대한 남들이 꿈꾸는 것 보다 더 크고 높고 위대한 미래를 바라보고 살며, 그 미래의 행복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꿈꾸며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위대한 인물들, 하나님께 크게 축복받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고난에서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래서 꿈꾸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그 아버지 야곱도 삼촌 라반에게 끊임없이 속고 당하고 살았지만, 축복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고 그래서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씨름해서 얻은 승리였고 축복이었습니다.
남들이 누리고 있는 서울의 5억 짜리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다고 미래의 꿈까지 포기한다면, 이 사람은 원래부터 패배자였고 그런 것을 누릴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꿈과 소망이, 남들이 가지고 있는 집이나 자동차나 명품 보다 소중하고 귀한 것인 줄 안다면, 적어도 내 꿈과 미래를 그런 것과는 비교하지 않으며, 그런 것 때문에 절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열왕기하 강해를 다시 시작하면서 히스기야 임금이 만난 위기와 고통, 그리고 수치를 통해서 그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영원한 승리지가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미래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3.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말하기를, 인간이 복음을 통해 회심하고 거듭남으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사람의 인격과 기질의 근본 요소는 바뀌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인 것들은 모두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모두 옛날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계속해서 이 목사님의 말씀을 빌리면, 심리학적으로 인간 자신은 본질상 과거의 그 사람 그대로이지만 새 사람은 새로운 성향, 새로운 이해, 새로운 방향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앙이란 내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내 속 사람에게 스스로 새롭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고, 내 영혼에 말씀과 성령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풍선에 공기를 아무리 가득 채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가 빠져나가고 그래서 풍선이 힘없이 쭈그러드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과 육신은 바람 빠진 풍성처럼 초라해지고 불쌍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본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4. 히스기야 임금은 이스라엘의 열왕 중에서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18장에 보면,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3)다고 했습니다.
나라 안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온갖 우상들을 타파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역사가는 평가하기를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5)다고 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7)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살이가 다 그렇듯이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유대 땅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임금이 된지 14년 만에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여 모든 보물과 심지어 성전의 금까지 다 빼앗아 갔지만 물러갈 줄 몰랐고, 재차 랍사게를 시키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 히스기야 왕이 옷을 찢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랍사게가 유다를 멸시하고 왕을 모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까지 모독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른 막대기 보다 못한 앗수르 나라의 온갖 신들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높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침공하여 유다를 멸망시키는 것이 너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여호와가 산헤립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건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시편 기자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시74:22) 하였습니다.
5. 나라가 외적에 포위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고, 스스로 더 이상의 해결책이 없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욕을 받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또한 국가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임금 스스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현실을 가리켜 히스기야 임금이 고백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3)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절망과 위기에 빠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런 위기와 고통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중상, 모략, 오해, 부당한 대우로 말미암아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고통에서, 이 절망에서 벗어나기는 해야겠는데, 아무런 방법이나 대책도 없고 그냥 슬픔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여러분은 그런 위기를 어떻게 넘겼고 극복했습니까?
마치 검투사가 싸우다가 힘에 부쳐 더 이상 적을 감당하지 못하고 밑에 깔려서 적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찌르는 날카로운 칼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해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절에 보니 성전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처한 기가 막힌 이 상황을 설명하고 나와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니, 랍사게가 보낸 협박 편지를 펴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6. 힘으로는 앗수르 대군을 물리칠 수 없었고, 랍사게의 협박에 대항할 만한 힘도 없었지만, 히스기야에게는 한 가지 비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연약한 인생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우리의 삶 한 가운데로 싣고 오는 수레와 같습니다.
그야말로 히스기야의 표현대로 이 날은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날이요, 또한 기도에 대한 응답의 날이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전달받은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본문 6-7절의 내용입니다.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되어질 한 가지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대적의 칼이 심장을 향해 파고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두려워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뜨린 대적을 어떻게 징벌하시는지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당시의 상황을 의식하고 기록한지는 몰라도, 고후4:8-9절에서 히스기야가 처한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 ”리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히스기야와 유다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대적을 망하게 하시니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7. 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까?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미리미리 다 예비해 놓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까?
과연 그렇다면 고생하면서 하기 싫은 기도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문제투성이고, 고통과 희생과 두려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기도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기도생활을 통해서 응답 보다는 응답받지 못했다는 불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들 소용이 없고, 도리어 내가 너희로 너희의 대소변을 먹고 마시게 만들겠다는 협박하는 소리입니다.
마귀는 벌써 우리에게 기도 무용론을 은연중에 우리 심령 속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라는 소리에 감동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해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듯이, 기도해 보면 나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만, 기도 없이는 불신과 낙심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환경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조건이 좋고 환경이 좋아서 왕이 되었으며,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의 제일가는 임금이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제 인생의 목자로 삼고 그 분의 인도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목동 출신이니 어떤 양이 되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 기도하면 우리 예수님의 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스스로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분의 기도 내용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눅22:42)는 바로 이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과 빌라도 법정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비참할 정도로 연약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아 운명하시기 직전 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이야말로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에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삼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 만물의 주인이요 으뜸이 되시는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본을 구원하시기 원하시고, 일본을 새롭게 만들기 원하시는데, 우리가 전도도 안하고 기도도 안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훈련 받은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따라 와야 하는데, 그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9. 예수님처럼,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면 절망 중에도 소망을 만나고, 고통 중에서도 위로를 얻으며, 연약함 중에서도 새 힘을 얻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를 통해서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날을 승리와 영광과 축복의 날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자기가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 환란과 징벌과 모욕을 랍사게에게 몽땅 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시32:6)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연약한 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믿는 자의 기도 앞에는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환란과 징벌과 모욕의 삶이라도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시고 어떤 환란과 두려움도 다 이기고 승리하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