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위기 가운데의 인생(열왕기하18:13-37)
[성경본문] 열왕기하18:13-37개역개정
13.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26.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36.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위기 가운데의 인생(열왕기하18:13-37/2015.10.25.오전)
1. 기원전 701년에 앗수르의 산헤립은 애급 군대를 격파하고, 이웃 나라인 블레셋을 포함하여 유대 땅의 46개 성읍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면서 히스기야 임금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는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온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앗수르에게 침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은 유대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대하31장에 보면, 앗수르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서 광야로 흘러가는 물의 근원을 막아서 광야에서 그들이 물을 공급받지 못하도록 하며, 무너지고 부실한 성벽을 중수하고, 바깥에도 성벽을 구축하고, 망대를 높이 올리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어 전쟁을 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히스기야에게는 앗수르를 상대로 싸울만한 군대는 물론이고, 이미 멸망해 버린 이스라엘처럼 3년씩이나 앗수르 군대를 상대로 버틸만한 그런 국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 무엇입니까?
산헤립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 줘서 군대를 철수시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나라가 금 30달란트와 은 300달란트를 주면 앗수르 군대를 철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그들이 요구하는 엄청난 액수의 보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지만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성전에 입혀 놓은 기둥의 금까지 다 벗겨서 바쳤습니다.
히스기야가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 중심의 흔들림이 없는 귀한 신앙인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앗수르의 침공이라는 위기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 앗수르에게 무너져 패망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멸망을 면해보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2.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히스기야 임금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도 인생에 위기는 오고 어려운 일은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이 뛰어나도 인생 자체는 연약하고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있을수록 겸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원하는 않는 위기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이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인본주의에 매달리는가?
히스기야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잃어버린 평화를 회복하는 이 문제를 대적이 원하는대로 다 들어주면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지지를 얻을 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가 돈 때문에 일어나고, 돈을 잘못 사용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벌어들이려다가 낭패를 만나고 어려운 일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악착같이 벌어들여서 살만하다 싶었는데, 사고를 만나고 병들고 사기꾼 만나고, 그래서 돈은 돈대로 뜯기고 사람은 사람대로 피를 말리다 보니, 건강이나 가정이 파탄이 나는 그런 인생을 우리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쉬운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히스기야 임금의 경우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를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세상의 모든 닻줄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위기를 만난 인생에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 하나님에게는 인생의 어떤 문제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해결 방법을 우리 하나님은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만난 인생을 향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2-3)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원하는 물질을 주어서 평화를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기 히스기야처럼 이런 문제를 만났다면 어느 정도는 히스기야를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본문 19절 이하에 보면 랍사게가 하는 말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내용과 31-32절의 거짓말을 빼고는 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죽음을 무릅쓰고 앗수르에게 대항하려는 용맹도 있었고, 대하32장에 보면 나름대로의 전략도 있어 보이지만, 이미 앗수르에게 패배한 이웃 나라 애급을 의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유대 군사 중에 말을 타고 싸울 만한 군사 2천명도 없는 전력으로는 앗수르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 자체가 너무도 무모한 모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히스기야의 결정은 국가의 운명을 쥐고 있는 통치자의 고뇌 끝에 나온 결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4. 참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 다시 말해서 참 믿음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이 평화를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고, 대적이 요구하는대로 들어주면 그 대적의 마음도 움직일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히스기야 임금처럼 어떤 문제를 돈으로나 어떤 인본주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했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온전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요구하는대로 다 들어주면 군대는 물러갈 줄 알았지만, 그들은 공식적인 조공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막대한 재물을 요구했고, 그것이 수중에 들어오자 말하고는 다르게 군대를 철수하기는커녕 아예 예루살렘을 사마리아 성처럼 멸망시키려고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위기를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 중심에 서는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는 그 어떤 것들도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의 이러한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사단의 세력 아래 지배당하고 있는 이 세상의 진정한 정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돈이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의 파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목적이며, 마귀는 이렇게 세상의 권력이나 물리적인 군대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고 파멸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가정에서 핍박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한 발 물러서 주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31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볼 때, 그런 방법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영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신앙은 영적 전쟁이고 우리의 대적은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망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으며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그 어떤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놀라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그 목적은 우리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런 세상의 공격 앞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 이외에는 우리에게 그 어떤 방법도 전략도 수단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 이외에는 세상을 이기는 길은 없으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 이외에는 우리를 위기에서 건질 방법이 없으며, 하나님은 위기 앞에서 오직 믿음만을 사용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도와 주시는 줄 믿습니다.
5. 그래서 히스기야는 19장에서 들어가서 그 사실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통해 후회하고 깨닫고 뒤늦게 국가의 운명을 걸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손이 직접 앗수르 군대를 칠 때 유대 나라의 문제, 히스기야의 위기는 해결된 줄 믿기 바랍니다.
헨리 나우웬은 말하기를, 인생에 매일 놀라움이 있지만, 그것을 기대하고 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로 온다고 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을 느낄 수 있으며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통해 이 사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와 문제는 어떤 때에는 슬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어떤 때에는 기쁨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을 받아들일 때 결코 망설이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쁨 속에는 슬픔이 있으며, 슬픔 속에도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두 사람이 똑같이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그런 재난을 통하여 감사를 선택하고, 다른 한 사람은 불만을 선택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선택한 이것들이 그들 자신의 평생은 물론이고, 그들 주위에 있는 가족들과 이웃에게 오래도록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원하지 않는 위기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인본주의로 나오다가 더 어려움을 당했지만, 나중에는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6. 우리 주위에 기도 없이도 신앙생활을 깔끔하게 잘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쁨이 있어 보이고 사교성이 좋고 긍정적이고 모든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 없이는, 특별히 히스기야 처럼 위기를 만나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간구함이 없이는 감격에 넘치는 영적 체험을 맛 볼 수는 없습니다.
기도가 없으면 영적인 눈은 점점 어두워지고, 믿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중요하지 않은 일이나 가치 없는 일에 인생이 매달리게 되고, 그것 때문에 재물에 손해를 보고, 시간 손해, 인생의 손실이 보통 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살아 있는 간증이 있어야 진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왜냐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불쌍한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놀라운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통해서 체험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고, 내가 믿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의 삶에 채워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랍사게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히스기야 임금이 행한 종교개혁을 비웃고,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의 백성을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히스기야가 기도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그가 처음에 행한 것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돈은 돈대로 다 갈취 당하고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그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큰 위협과 압박을 받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이 없습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7.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오고 고통이 오면, 하나님은 점점 작아지고 문제와 고통은 점점 확대되고 크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문제 속에 짓눌려서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하면서 도망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히스기야 임금처럼 하나님께 매달려서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망하고 두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문제를 피해갈 수 없고,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마귀가 시험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만날수록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인본주의가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이것이 우리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래서 상황 판단이 잘 안되고 그래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결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고, 이로 인해서 많은 손해와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었고, 그는 이런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로 가져오는 축복의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도 고백하기를,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73:28)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히스기야의 위기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8.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문제를 만났을 때, 간절히 기도는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기도 응답을 잃어버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그래서 형식적인 신앙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늘 불안하고 근심에 가득차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의 감격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놀라운 체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위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위기가 오고 고통이 오고 문제가 생겼다면, 히스기야 임금처럼 신앙을 회복하고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줄 믿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일이 꼬이고 안되는 것은 기도하라는 사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히스기야 처럼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줄 믿습니다.
비록 죄 때문에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비참한 신분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였으며,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 (렘29:11-12)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생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기도응답이 넘치고, 평안이 넘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하는 은혜의 사람,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