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7.우상은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열왕기하10:15-29)

[성경본문] 열왕기하10:15-29개역개정

15.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16.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8.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노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모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예후가 바알 섬기는 자를 멸하려 하여 계책을 씀이라

20.예후가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

21.예후가 온 이스라엘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고 무리가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매 바알의 신당 이쪽부터 저쪽까지 가득하였더라

22.예후가 예복 맡은 자에게 이르되 예복을 내다가 바알을 섬기는 모든 자에게 주라 하매 그들에게로 예복을 가져온지라

23.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24.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25.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26.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27.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8.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29.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우상은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열왕기하10:15-29/2015.6.7.오전)
1. 한국에서는 지난 달 5월 20일 경에, 중동의 바레인에서 귀국한 68세의 남성이 감기증세로 치료를 받은 후에, 중동 지역의 낙타에서 전염되는 메르스 환자인 것이 알려지면서, 이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2차 3차로 감염을 시키면서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내 의료진이 전염병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회나 여행은 물론이고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전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인해 심지어 시장이나 상가들도 사람이 없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보지만,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온 국가가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결국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질병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나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사고가 질병을 키우고 두려움을 키운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정말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이 시대가 가져오는 온갖 문제와 재앙에 빠져서 고통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제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키우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고통을 주는 질병을 이기고, 온갖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을 키우고, 위기에 대한 대응의 능력을 키울 때 우리 사회와 자녀들에게 미래가 있는 것이지,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대통령을 향해 욕이나 하고, 사건만 생기면 전부 남의 탓으로 돌리며, 나만 살겠다는 그런 풍조를 잘라내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고통스럽고 암담한 미래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의 왕이 된 예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교개혁을 단행하는데, 이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레갑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예레미야 3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기에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레갑의 후손들을 성전에 불러 모아 놓고,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도록 강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선지자가 뜬금없이 레갑의 자손들을 성전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왜 포도주를 먹이려고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을 타락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려고 애를 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대로 살려는 사람들의 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렘35:5절 이하에 보면 술잔에 술을 가득하게 따른 후에 그들에게 마시라고 권할 때 그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선조 요나답의 명령인 그의 유언을 반복해서 주장하면서 포도주 마시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갑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들에게 내린 명령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나답과 예레미야 35장의 요나답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나답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 자손들에게는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며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6-7) 고 유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목민으로 만족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에 기도로 구할 것을 가르치면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고 하신 것처럼, 이 땅의 육신의 아버지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도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이나 후손이 잘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왜 요나답은 그런 유언으로 자손들에게 경제적인 족쇄를 채웠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이 입술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삶 속에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탐욕과 이로 말미암는 우상숭배의 폐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이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조금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탐욕과 방탕함과 어리석음이 바알 신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의 삶보다 결코 나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답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열심히 쌓아 올린 경제적인 바벨탑은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심판을 받으며, 더 지독한 재앙을 입을 구실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나, 하나님에 대한 거룩함이나 종교적인 의무감 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당시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고, 그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4.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로 이점을 주목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레갑의 자손들을 성전에 모아 술을 마시도록 강요했고, 그들은 조상의 명령이라고 3번 씩이나 반복하면서 우리는 결코 그 술을 마실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순결함을 지키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온 유대사회가 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도는, 레갑의 자손들은 그들의 선조 요나답이 명령한 것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 된 너희들은 왜 내 명령에 순종 할 줄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주목할 내용도 바로 이것입니다.
유목민으로 살면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에 집착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농경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재산이 늘어나고 집을 짓고 농장을 만들고 더 많은 농토를 확보하면서 재산이 늘어나고, 재산이 늘어나는 만큼 그곳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그 집착이 탐욕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탐욕과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예후 조차도 이 여호나답의 탐욕이 없는 진실하고 청렴한 삶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알 우상을 척결하면서 자신의 정권을 반석 위에 세우는데 있어서 이 여호나답 만큼 선전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5. 예후는 이 요나답과 손을 잡고 이스라엘 중에 만연한 바알 숭배의 우상을 뿌리뽑는데, 이 일을 위해 예후가 사용한 계략이 무엇입니까?
18절에 보니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는 것입니다.
마치 바알 신 숭배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처럼 거짓 선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바알신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열심 있는 숭배자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바알 신 숭배 전국 총회를 연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매우 주도면밀했습니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지도자들을 한 사람도 빠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그 가운데 멍청하게 끼어든 여호와의 종들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이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수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예복까지 준비해서 입혔습니다.
그들을 철저히 속이기 위해서 그들의 생애에 있어 바알 신을 향한 마지막 제사까지 올리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장한 군사 80명으로 하여금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도록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후의 모든 행위가 지나치게 잔인하고 냉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9-10장에 걸쳐 기록된 예후의 혁명은 끔찍하도록 잔인합니다.
그러나 예후의 이런 행동은 인간 예후의 행동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아합 집안의 사람들처럼 동일한 심판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들의 죄악은 관영했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한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단순한 반란이나 권력투쟁이나 개혁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6. 우리는 이런 예후의 행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탐욕에 대한 보복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면서 제일 큰 전쟁이 있다면, 신앙을 박해하는 외부에 있는 세력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을 뿌리 뽑는 전쟁입니다.
왜냐면 우상은 탐욕과 욕심에서 나오며,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영원한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숭배는 저주와 고통과 영원한 죽음을 낳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는 때로는 예후 처럼 냉정하고 잔인할 정도로 이 전쟁에 치열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안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런 우상들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골3:5-6절에 보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의 정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탐심만 우상이 아니라 우리 육신이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 끌려 가는데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우상이라는 것이고, 그 우상숭배의 결과는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인격과 심령의 지성소에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마치 주인처럼 자리 잡고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모든 우상을 끌어내리고, 그곳에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 까지 우리는 영적 전쟁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이라면 승패와 관계없이 피를 흘리고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대적 보다는 더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예후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서 많은 국력을 잃었습니다.
그 사실이 3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상을 뿌리 뽑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릴 때, 큰 대못을 박다가 못 대가리 부분이 망가져서 그것을 다시 뽑아 낼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세력들을 뽑아 낼 때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일수록 그 일을 성사시키면 가치가 상승하고 그기에 비례하여 얻는 결과는 놀랍고 귀한 것들인 줄 믿습니다.
예후가 아합 집안에 잔인할 정도로 씨를 말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합의 혈육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의 왕조는 결코 반석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씨를 말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우상의 뿌리를 다 뽑아 내지 못한다면, 그 뿌리는 세월이 가면서 다시 우리를 삼키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도록 우리를 더 무겁고 깊은 죄악 가운데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자리 잡은 우상의 세력을 몰아내지 못하면 결코 내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할 수 없고, 늘 두 가지의 세력이 서로 분쟁하면서,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평안이 없고, 기쁨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감사도 없는 삶이 될 뿐입니다.

8. 우상숭배 한다고 소원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욕심을 낸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탐심과 우상숭배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만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레갑 자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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