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14.여호야다의 혁명(열왕기하11:1-21)
[성경본문] 열왕기하11:1-21개역개정
1.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2.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3.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4.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5.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중 삼분의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삼분의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의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7.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너희는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너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하니
9.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 바 안식일에 들어오는 자와 안식일에 나가는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10.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11.호위병이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되 성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서고
12.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13.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14.보매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5.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17.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18.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21.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 여호야다의 혁명(열왕기하11:1-21/2015.6.14.오전) 1.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말하기를,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시102:6-7) 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기를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10)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편의 많은 부분들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내용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자의 신음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아무리 절망의 심연에 빠져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며 마침내 장래를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2편의 경우도 탄식으로 시작한 기도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분에 대한 확신과 그의 은총을 찬양하면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고난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한 것 같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일의 결국을 알고 나면 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다루셨고 왜 그렇게 험한 길로 인도하셨는지 알게 되고, 그래서 감사가 나오고 찬앙이 나오고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바로 그런 고난과 흑암의 시대에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왜냐면 유다 나라는 하나님이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윗의 집안을 등불처럼 남겨두시고 언약의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택자 구원은 물론이고, 선민 된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 남겨둔 그루터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왕이 되자 아합 집안과 혼인을 맺으면서 유다 나라의 역사는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그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을 시작으로 유다는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왕 요람의 문병을 가서 예후에게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황태후 아달랴는 급히 손을 들어 다윗 왕가의 모든 후예를 몰살시키는 대대적인 살육을 벌였고, 이로 인하여 더 이상 유다 땅에는 다윗 왕가의 혈통은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고 하셨는데 이 약속은 어떻게 되며, 또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29) 라고 간구한 기도는 다 어떻게 되었단 말입니까? 과연 하나님이 다윗을 집을 버리시고, 이스라엘의 등불을 영원히 소멸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 신을 섬기는 아합 집안의 딸 아달랴에게 다윗의 자손이 씨도 남김없이 다 학살당하고, 그 나라 유다왕국을 장악하고 바알 신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다윗왕가의 등불은 악마와 같은 여자 아달랴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에게 소망을 둔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민족들의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꺼져 버린 등불과 같은 다윗 집안의 등불을 다시 밝히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재생시키는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파괴되지도 손상되지도 않는 그 언약의 영원함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여호세바라 이름 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한 여호람왕의 딸로서 아하시야왕의 누이이며, 당시 대제사장인 야호야다의 부인이었습니다(대하22:11). 그녀는 다윗왕가의 모든 혈통을 죽여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시켜 온 세상에 조롱거리로 삼으려 했던 악마와 같은 여자인 아달랴의 손에서 1살도 채 안된 젖 먹이 요아스라는 왕자를 학살의 현장에서 건져내어, 6년 동안 성전의 은밀한 장소에 숨겨 키웠습니다. 이 사실은 아는 사람은 아달랴가 통치 하는 6년 동안에 여호세바 자신과 요아스의 유모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당한 상심과 절망감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도 다 소용이 없다,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수도 없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은 다 헛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유다 사람들이 이웃 나라로 부터 받는 조롱과 멸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상심하고 있는 사이에 아달랴는 권력을 장악하고 그 권력의 힘으로 온 유다를 바알신을 숭배하는 나라로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4. 성경에는 잔인하고 비참할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진 의인들이 당하는 핍박과 고통이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남으로 행복이 없고, 만족이 없고, 감사도 기쁨도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어느 정도로 악독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인 존재인지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심의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예정과 역사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고 남다른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고, 마침내 큰 승리와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세바가 젖먹이 요아스를 빼내어 아무도 모르게 성전에 숨겨 키웠는데, 이 사실이 아달랴에게 알려지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6년을 인내하면서 왕자 요아스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그녀의 용기 있는 이런 행동이 역사의 코너에 몰려 질식당한 것 같은 다윗 왕가를 소생시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란 단순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은 희생과 용기를 동반할 때 그 믿음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신실한 일꾼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5.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인물은 여호세바의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 입니다. 아달랴가 대량 학살을 통해 불법으로 왕권을 찬탈하고 계속해서 유다 나라를 바알신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강한 위기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야다는 정치적인 목적 보다는 제사장의 사명감에 고취되어, 유다 나라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라면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고, 다윗과 맺은 언약이 참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반드시 다윗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는 자가 이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6년의 세월을 인내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모반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부정하고 온갖 악행으로 하나님을 거역한다고 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성취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제사장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는 참 신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보건데 악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사라지고, 세상이 소망이 없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모든 시대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낙심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때문에 인내로 때를 기다리면 반드시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도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33:2)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6. 마침내 역사의 아침은 밝아오고 말았습니다. 아달랴의 통치 7년 째가 시작되면서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은밀하게 그가 신뢰하는 레위인들과 군대장관들을 불러 모아 맹세를 하게하고 거사의 계획을 밝히고 그동안 숨겨왔던 요아스의 정체도 밝히면서, 전국에 사람들을 보내 큰 세력을 예루살렘으로 규합하고는 성전에서 요아스의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여호야다의 거사의 특징은 군대를 동원해서 대적을 치고 섬멸하는게 아니라, 성전에서 법적인 수순을 먼저 밟아 왕의 대관식을 먼저 거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호야다의 신앙심과 그의 인물 됨이 뛰어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하23:3절에 보면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제사장 답게 다윗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윗의 자손인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도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했”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다윗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깨어지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신을 숭배하는 국가로 전락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조차도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였지만,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에 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아스가 새로운 왕이 된 것을 본 아달랴는 반역이라고 외쳤지만,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것을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성전에서 끌려 나가서 분노한 백성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7. 우리는 여호야다 대제사장 부부의 믿음과 용기 있는 행위를 보면서, 우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너무 쉽게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아 부끄러움이 앞서게 됩니다. 이 부부가 6년 동안 요아스를 숨겨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가슴 조이며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렸겠습니까? 그들이 6년 동안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으며,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명을 건 모험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과 부귀공명의 영달을 누리려는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자신들이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윗 집안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이요, 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 여호야다 부부는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런 여호야다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대하24:15-16절에 보니,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첫째로 그가 온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최고의 평가요 하나님 앞에 그가 얼마나 신실하였는지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유다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열왕들의 묘소에 안장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아닌 사람으로 왕들의 묘소에 묻혔다는 것은 왕의 반열에 설만한 공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8. 둘째는 그의 연수가 130세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사장 아론은 123세로(민33:39), 모세는 120세로(신34:7), 여호수아는 110세의 나이(수24:29)로 천수를 다했던 것을 볼 때, 그들 보다 한참 뒤의 시대에 130세를 누린 것은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셨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호야다는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잠10:27) 는 말씀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는 유다 나라의 전국에 산재한 바알 신과 각종 우상들을 다 부수고, 바알신의 제사장인 맛단을 죽임으로 유다 나라의 바알 숭배를 뿌리 뽑았습니다. 또한 성전세를 만들어 그것으로 낡은 성전을 수리하는 등 종교개혁에도 열심을 내었고, 평생을 통해 요아스 임금에게 많은 영적 감화를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9.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다윗 왕가를 중심으로 하는 선민으로서의 유다는 아달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왕자 요아스 한 사람의 생명을 통해 회복되었고, 그 중심에 여호야다 대제사장의 부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려고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목숨을 걸고 저항하고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건 희생적인 영적 싸움이 있을 때, 그 때부터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참 예배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세력, 특히 하나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우상 세력을 몰아내지 않으면, 참된 영적 회복을 이룰 수 없으며, 이런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야다는 유다 가운데의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해 용기를 내었고, 그런 용기 위해 하나님은 은혜를 더하시고 그의 개혁을 완벽한 승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 가운데 무너진 것이 무엇이고, 내 안에서 깨어진 것이 무엇이며, 어디서 부터 우리의 영적인 길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이 모든 것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성취되도록 우리 자신을 그 분에게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9) 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십자가로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