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10.어머니 이세벨이 남긴 것(열왕기하 9:29-37)

[성경본문] 열왕기하9:29-37개역개정

29.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0.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어머니 이세벨이 남긴 것(열왕기하 9:29-37/2015.5.10.오전)

1. 최근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버지는 없고 여자들만 사는 동성애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고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지난 5월5일, 미국 크리스천 투데이 신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브랜디 윌튼 이라는 학자는 칼럼을 통해 밝히기를 동성애로 인하여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기본적인 아동 발달에 많은 장애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모성 원리와 부성 원리가 서로 간에 균형을 잘 잡으면 가정에서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모성 원리라고 하면 내 자식이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잘하던지 못하던지, 능력이 있든지 없던지 상관없이 일단 포용하고 감싸고 이해해 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말합니다.
반대로 부성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자식의 잘잘못을 가려내고, 개성과 능력을 중요시 여기고, 그래서 벌을 주고 매를 때리면서,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끊고 맺는 것이 확실한 아버지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근자에 와서는 모성 원리가 점점 강해지고 반대로 부성 원리는 쇠퇴하면서 가정 안에서 부친 부재현상이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서 자녀 교육에 악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갑자기 놀라거나 탄성을 지를 때, 남녀를 불문하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에구머니!」나, 「어머나!」 인데, 이것은 전부 「어머니」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면서, 「아빠-」 보다는 「엄마-」 하고 우는 것을 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를 먼저 찾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런데 새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조류 세계에서도 인간들처럼 제 새끼나 가족은 모른 채 하고 바람피우고 돌아다니는 나쁜 엄마 새, 나쁜 아빠 새가 있는가 하면, 제 자식을 위해 생명을 바쳐서 희생하는 좋은 엄마 새, 좋은 아빠 새도 있다고 합니다.
수컷의 경우를 예를 들면 뉴기니아에 살고 있는 극락새는, 암컷이 수컷의 등에 알을 낳고는 나 몰라라 하지만,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 까지 이슬만 먹으면서 날아다니다가 새끼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면, 수컷은 기진하여 추락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펭귄은 암컷이 수컷의 발등 위에 알을 낳고 바다로 나가 먹이를 구하는 사이에, 수컷은 60일 동안 꼼짝도 못하고 서 있으면, 알에서 부화한 새끼를 위해 암컷은 제 뱃속에 저장한 먹이를 새끼에게만 전달해주고는 수컷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두 달 동안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수컷은 바다로 걸어가다가 쓰러져 죽는다고 합니다.
또한 노래하는 목청이 좋기로 유명한 뻐꾸기의 경우는, 너무 게을러서 알을 낳아도 기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꾀꼬리나 오목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도망가는 새도 있는데, 이것을 탁란(托卵)이라고 합니다.
제 자식을 낳아 남의 집 앞이나 시설에 버리고 가는 사람과 닮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극락조나 펭귄이 현대사회에서 부친의 권위는 다 잃어버린 채 식구들을 위해 돈만 벌어다가 갖다 바치는 부친 부재의 사회와 너무 닮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꿩이나 공작처럼 새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람만 피고 돌아다니는 수컷들도 있습니다마는, 인간사회나 동물의 세계에서나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이고, 가족이 중요한 만큼, 가족에 대한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이 따라 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3. 세계 각국에는 어머니날이 있고 아버지날도 따로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부모를 함께 묶어서 기념하는 어버이날은 한국 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한국 교회가 매년 오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녀들을 낳아서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그들에게 부모로서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면 다 훌륭한 부모에 훌륭한 자식을 둔 가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많은 가정들이 이미 파괴되고 있고, 이렇게 잘못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고통하고 방황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이 부모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가면을 쓰고 온갖 위장을 하고 살지만, 그 사람이 죽을 때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상한 곳에 갔다가 그 곳에 불이 나서 타 죽었거나, 1971년 12월 25일에 서울에서 일어난 대연각 호텔의 화재 때처럼 남녀들이 벌거벗고 뛰어 내린다거나, 그래서 그 이상한 곳이 어떤 곳이냐? 무엇하러 그곳에 갔느냐? 그것을 보면 그 인생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임종에 가까워서 무슨 말을 하면서 죽었는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세벨의 죽음을 통해 이 여인이 살았을 때 어떤 인생을 살았으며, 그리고 많은 자식을 두고 죽었는데, 그 자식들에게 어머니로서 무엇을 가르쳤으며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이세벨의 죽음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이 이 본문을 대하는 우리의 관심입니다.

4. 예후가 이세벨의 아들인 요람 왕을 죽이고 이스르엘로 돌아오자 궁 안에 있던 황태후 이세벨이 머리를 꾸미고 눈 화장을 하다가 창문을 통해 반역자 예후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후를 향해 던진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고 했습니다.
아들 죽인 예후를 보고 시므리 라고 했으니 이세벨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므리는 이스라엘의 3번째 왕이었던 바아사의 아들인 엘라 왕을 죽이고 7일 천하를 이루다가, 오므리가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것을 보고 궁에 불을 놓고 자살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 덕분에 이세벨의 시아버지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6대 째 왕이 되었습니다(왕상16장).
그 때로부터 43년 쯤의 세월이 흘렀고, 예후는 시므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세벨이 예후를 가리켜 시므리라고 불렀습니까?
이것은 아들을 죽이고 모반한 예후에 대한 저주의 말이었습니다.
너도 43년 전의 시므리가 제 왕을 배신하고 그 대가로 저주의 죽음을 당한 것처럼 너도 그가 받은 저주를 너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란으로 인하여 아들 왕이 죽은 상황에서 황태후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저주의 말 이외에는 예후를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5. 그런데 문제는 예후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스르엘로 돌아올 때, 왜 이세벨이 왜 머리를 꾸미고 화장을 하고 그를 기다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화장을 해서 젊은 예후를 이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함입니까?
전문가에 의하면, 여자들의 화장은 본능적으로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화장을 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세벨에게 주어진 상황은,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했던 황태후의 존재가 예후의 반란으로 일시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그 권력을 사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일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죽음에 임박한 시점에서 머리와 화장에 온갖 정성을 들인 이유는, 예후가 아무리 모반을 해도 자신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권력의 소유자임을 그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녀는 죽는 순간에도 황태후의 자세를 유지할 정도로 자존심과 고집이 대단한 여자였습니다.
이세벨이 제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유다 나라로 시집을 간 딸 아달랴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1987년도부터 매년 국민적 미소녀를 뽑는 콘테스트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 유명한 미녀 배우들과 탤런트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발 기준에는 의외의 심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출연자 본인의 부모를 보는 것입니다.
심사 대상의 대부분이 고등학생의 연령이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고 스타일이 좋아도 성장하면서 사람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근거는 그 부모의 외모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외모가 심사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식이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6. 그렇다면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그녀의 아들들은 또한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달랴는 아들인 유다왕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하자 공백이 된 유다나라의 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 제 손자들을 병아리 밟아 죽이듯 모든 손자를 학살한 비정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그 부모들처럼 유다나라에도 바알신을 숭배하는 잘못된 신앙을 퍼뜨려 백성들을 범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비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손아귀에 넣었지만 그녀의 권력은 6년을 넘어가지 못하고 분노한 백성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아들들인 두 왕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면서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든 여로보암의 길로, 아합의 길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22년 간 통치와 아들들의 12년 간에 걸친 오랜 세월을 통해서 자기 마음에 원하는 것을 다 손에 넣는 여자였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 위해서 나봇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들까지 다 죽일 정도로 악마와 같은 여자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는, 역사 가운데 이세벨만큼 위대하고 행복한 여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보면 그녀의 죽음은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33절에 보니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한 내시들이 이세벨을 창문에서 던져 죽였습니다.
죽은 시체가 피를 쏟아 내고 있는 사이에 예후는 궁 안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고, 생각해 보니 그래도 왕의 딸이요 왕비요 왕의 어머니인 황태후의 시체를 저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예후는 백성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후하게 장사를 지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개들이 와서 이세벨의 흘린 피를 핥아 먹었고, 그녀의 머리와 손발을 제외하고는 개들이 다 뜯어 먹고 난 뒤였습니다.
  
7.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조건을 다 갖춘 여자가 이렇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인 죄 값을 치른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숭배하게 한 죄 값이었습니다.
죄 없는 나봇과 그 아들들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자식들을 잘못 양육한 죄 값을 치룬 것입니다.
잘못 뿌린 씨앗은 전부 그 뿌린 자와 자손들이 다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이세벨은 자기가 섬기는 바알 신과 죄악에 대해서는 충실한 종이었지만, 왕후로서나 어머니로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 자신도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인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절대로 만나서는 안되는 만남이었고,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달려간 인생이 어떻게 자식을 지혜롭고 아름답게 양육할 수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세벨이 어머니로서 이 세상에 남긴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저주의 죽음을 남긴 것입니다.
10장에 보면 아합의 아들들이 70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이어받을 사람이 70명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아합이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들이 더 많았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전부 이세벨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들이 만난 것이 무엇입니까?
10:7절에 보면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 보내니라” 고 했습니다.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떼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어머니 이세벨이 자식들을 위해 남긴 유산이었습니다.

8.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의 어머니는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며, 자녀들과 더불어 영원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 자녀를 낳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그 생명으로 하여금 값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 어머니로서 지혜롭고 복 된 부모로서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부모 본인들이 먼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믿음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아들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도 믿음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한나는 속상하는 일도 많았고, 눈물 속에 세월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중심의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을 위대한 선지자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될 때, 그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로 갈지라도 어거스틴 처럼 방탕의 길에서 돌아올 수 있었고, 나머지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말씀을 높여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9.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결혼을 앞두고 위기 가운데 있었지만, 그녀가 그런 위기 가운데서 고백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고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태 안의 생명을 위해 마리아가 행동한 것이 무엇입니까?
레위 족속인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그 집에서 석 달을 머물면서 요한의 출생을 기다리면서 엘리사벳과 함께 성령에 충만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태어날 자녀들을 위한 신앙의 태교이며 어머니들의 영적인 교제였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참 어머니의 사랑이요 신앙적인 모범인 줄 믿습니다.  
이런 어머니, 이런 부모는 말씀에 기록된대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는 말씀대로,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나님께 복받고 형통한 길을 가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기는 복이요 사랑이며, 바로 이것이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을 다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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