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26.왕들의 죽음(열왕기하 9:14-26)
[성경본문] 열왕기하9:14-26개역개정
14.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
15.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21.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3.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 진지라
25.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왕들의 죽음(열왕기하 9:14-26/2015.4.26.오전)
1. 성경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시편은 믿음의 사람들의 신앙의 노래요 고백입니다.
찬송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믿는 자의 삶이 시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제일 첫 부분인 1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위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보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한 일에는 반드시 복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되, 악인에게는 그 행위를 따라 반드시 징벌하시고 그들의 평생에 저주와 고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의 악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그 악을 통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며, 악을 선으로 갚지도 않으시고 반드시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을 믿는 자는 많은 유혹 속에서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다윗은 온갖 환란 속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늘 생명의 위기를 만났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고난만 견디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가 얼마나 맹렬하고 철저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배경과 영적인 배경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미래와 자손들의 삶을 좌우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예후를 세우신 목적은 우상숭배와 온갖 악행에 빠진 이스라엘, 특히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가를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아니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합 왕의 집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신 목적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목적을 잃은 인생,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이 같은 날, 거의 같은 장소에서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이스르엘 여름 궁전에서 죽임을 당했고,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곳에서 므깃도까지 도망가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상들의 죄 때문입니다.
3. 이스라엘 왕 요람이 이웃 나라 아람군대의 침공을 받아 길르앗 라못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자, 이곳 이스르엘 여름 궁전에 와서 치료하며 요양을 하고 있었고,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의 문병을 위해 이곳에 찾아왔을 때, 예후의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하시야는 이웃나라 임금의 문병을 왔다가 그 나라의 반란으로 인해 함께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표현대로 하자면 재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람과 아하시야의 관계를 알아보면 하필 그 때 찾아와서 재수 없이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인 요람의 아버지가 아합 왕이고, 그가 이세벨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아달랴가 유다 나라로 시집가서 여호람 왕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아하시야입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사이는 호적관계로 보면 삼촌과 조카 사이입니다.
삼촌의 문병을 왔다가 예후의 손에 함께 살해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의 죄는 자식들과 자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피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죄의 혈통은 3-4대 까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조상들의 죄 때문에 후손들이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그들이 그 가문에서 태어날 때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하며 살인 하는 피의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조상들의 악행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운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상이, 부모가 하나님께 받은 심판을 자식도 함께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지금부터 520년 전에 일본의 아즈찌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 즉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때의 일입니다.
그 때에 유명한 도적이 있었는데 이시까와 고에몬(石川小衛門)이라는 사람으로, 도적 떼의 두목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교오토의 산죠에서 잡혔습니다.
그를 잡아 처형할 때 큰 가마솥에 기름을 가득 붓고 그 속에 이 도적놈을 넣어 튀겨서 죽이는데, 그 아들도 함께 넣었습니다.이유는 이 아들이 제 아비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도적질이니 이놈도 그냥 두었다가는 천하의 도적놈이 될 것이니, 미리 죽여 후환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가마솥이 뜨거워지자 이시까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두 손으로 높이 쳐 들었는데, 나중에는 너무 뜨거우니 아들을 발밑에 깔고 올라섰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놓고 실제 사건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는데, 그 당시의 예수회 신부였던 베드로 모레혼 선교사가 자신의 일기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 할지라도, 악인과 혈연을 맺거나 악인과 손을 잡고 동맹을 맺거나 그들을 가까이 하고 교제하면, 반드시 그 사람도 악인의 행위에 속한 악한 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유다 왕 아하시야의 부친인 여호람 왕이 아주 좋은 예가 됩니다.
여호람은 너무 훌륭한 할아버지 아사왕과, 그의 부친인 여호사밧 왕의 좋은 영향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오므리의 손녀이며 야합과 이세벨의 딸인 악마와 같은 아달랴와 결혼하면서 악인으로 변했습니다.
그 결과를 대하21:10절에 기록하기를,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런 여호람을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까?
아닙니다. 대하21:19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 이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 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버리고 악마같은 여자의 꾐에 빠져 우상숭배하며 악행을 행한 결과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죽도록 고생하다가 비참하게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동생이 형을 이어 왕이 되었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예후의 반란으로 요람과 함께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5.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잘 믿어야 자식들이 하나님 살아 계신 것을 알고, 하나님 두려워할 줄도 아는데, 부모가 대강 대강 믿으면 자식들이 속으로 부모를 비웃고 여호람 왕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해 자식을 키워 놓았는데 그 자식이 속으로 부모의 신앙을 비웃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 보다 더 기막힌 배신이 이 땅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 자식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부모들의 잘못된 신앙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믿는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 생활 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대해 불평이나 하고, 다른 성도들 흉이나 보면서 교회 다니면, 나중 온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흉내 내면서 먼저 믿는 사람들을 비웃기 마련입니다.
이런 교회는 당장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 너무 설쳐대고 비판하니까 그런 비평, 비판이 마치 대단한 신앙심인 줄 착각하고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함께 가세하여 제 교회를 싸잡아 비판하고 흉을 보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본인들은 물론이고 제 자식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 아래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전부 세속적인 영향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지 않고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행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7) 고 하셨습니다.
7.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요람이 예후를 향해서 “평안하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악한 자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자신의 행실의 악함을 인하여 남에게 평안이 아니라 고통을 주면서도, 본인들은 남들에게서 좋은 대우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생각과 이념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대적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은 기득권을 지키고 더 좋은 것으로 만족하고 평안함을 얻기를 원하여 또 다시 악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향해 예후는 가장 적절한 대답을 던졌습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22)는 것입니다.
이미 이세벨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바알 우상의 신앙으로 이스라엘을 더럽힌 여자였습니다.
예후는 그런 이세벨의 행위를 가리켜 “음행과 술수”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어디에도 이세벨이 음행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예후는 이세벨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는 이 행위를 영적 음행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까?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는 남편과 아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3:1-5).
특히 3:14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고 하였고, 31:32절에는 “내가 그들의 남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그러나 오늘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25-26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아합이 이세벨과 합작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뺏으려고 수많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 나봇과 그의 아들들을 쳐서 죽이고 그 포도원을 강탈하였는데,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셨다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예후를 통하여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갚으시는 내용입니다.
26절에 보면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왕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고 빼앗은 포도원이 당시에는 달콤하게 자신들의 배를 불렸지만, 결국에는 그 토지에다 그의 아들의 시체를 던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무죄한 자, 즉 의인의 피를 흘림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를 수많은 역사의 증인들 앞에서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 포도원을 강탈하고, 나봇의 피를 흘린 것도 모자라, 그의 아들들의 피를 흘려서 아무도 복수를 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대신 아합의 집안에 확실하게 갚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강탈과 투옥과 거짓 증인에 의해 매장을 당하여 세월이 가면 사람들이 다 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확실하게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9. 이전에 아합이 아람과의 전투에서 유다 왕 여호사밧을 아합 처럼 위장하여 위기 때에 유다 왕이 죽더라도 자신은 살려고 꾀를 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아합 왕이 맞아 격렬한 전투로 인해 빠져 나가지 못하고 해가 지도록 병거를 탄 채 모든 피를 흘리고 죽었고, 그 피를 개들이 와서 다 핥아 먹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은 사람이 변장을 하고 꾀를 부려도 정확하게 표적물을 맞추어 그 목숨을 찾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람 왕이 죽은 장소도, 그의 시체가 던져진 장소가 아합이 빼앗은 나봇의 포도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선왕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자식들도 같은 길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불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번 다시 우리의 자녀들에게 잘못된 영적인 유산을 물려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셨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악행에 대하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았고 부끄럽게 살아온 것은 우리 시대로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들과 오고 오는 후손들의 복되고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하나님 중심으로 의를 행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십자가 제단에 올려놓는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1-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