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열왕기하7:11-20)

[성경본문] 열왕기하7:11-20개역개정

11.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12.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13.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14.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16.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18.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19.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열왕기하7:11-20/2015.1.12.오전)
1.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과 일본 문화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을 하면서도, 정작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웃 나라가 우리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어째서 다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책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습니다.
새해가 되어도 이전의 모습에서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생각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 고 하심과 같이, 작년에 안 된다고 생각하던 것,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번 생각의 틀에 갇혀 버리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쁜 생각이나 부정적인 사고방식, 나쁜 습관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실패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2. 우리 주위에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생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살던 사람이 어렵게 사업을 일으켰는데, 의외로 사업이 잘되면 이게 아닌데 하면서 불안해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난과 실패, 질병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것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은 도박 이외의 인생의 즐거움에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불륜에 빠진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위기와 체질에 젖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는 사랑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 교회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제 마음에 맞는 다른 교회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평생 방황하다가 끝이 납니다.
사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은 병적인 습관 때문에 실패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부터라도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꾼다면 큰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몸이 아프고 병에 잘 걸리는 사람도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면 치료가 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의 마음이 이미 질병과 실패에 지배를 당하고 있으며, 그런 상황이 오히려 제 스스로에게 맞고 적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의 말씀도 제 생각을 바꾸지 못해서 불쌍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람 군대의 포위로 기근을 만난 사마리아성은 그야말로 지옥의 참상 그대로였습니다.
이대로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가 성 중에 선포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1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는 것입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아람 군대에 의해서 사마리아성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던 곡식이 가격이 폭락하면서 흘러넘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본다면 누구라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이 신임하는 한 사람의 장관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절과 19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선지자가 먹을 양식이 없으니 헛소리 한다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성 바깥에 내어 쫓긴 문둥병자들도 다 알고 있는 이 일을 성안에 갇힌 사람들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갇힌 사람은 바깥세상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생각이 갇힌 사람, 생각이 정체된 사람, 생각이 죽은 사람은 선지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 말씀하셔도 믿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기근에 빠져 죽어가는 사마리아 성의 구원이 어떻게 임했습니다.
6절에 보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된 일이었습니다.
아람군대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게 하심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기적을 보면서도 제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열심은 대단히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제 고집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고 하여도, 구원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그 분의 도우심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살길이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전쟁도 겁이 없는 것입니다.

5. 그러나 왕이 신임하는 이 장관은 선지자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장관의 말을 통해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으며, 한 나라의 살림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는 몰라도 속에는 철저한 인본주의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언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그들의 상식에 맞고 그들의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100세에 아들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노아는 어떻게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것뿐입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사55:8-9) 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면서도 내 형편에 맞는 내가 원하는 말씀만 좋아하고, 정작 어떤 문제가 내 삶 한 가운데 자리 잡으려고 할 때에는 신앙은 실종되고, 불신앙과 인본주의로 충만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생각은 자아 중심이요 인간 중심이요 세상 중심의 생각이라면, 이제부터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6. 이 어리석은 장관이 문둥병자들이 전해준 놀라운 사실을 왕과 더불어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13절을 보면 지혜로운 신하 한 사람이 등장입니다.
왕은 문둥병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것은 우리를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적군의 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 사람들은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어리석음에 빠져 있어야 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람 군대가 포위망을 풀고 도망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이나 장관은 굶어죽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상식은 있었지만, 그 상식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으면서, 이 하나님은 아람군대라는 채찍에 맞아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절망과 고통 속에 떨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은 그 강력한 쾌감을 다시 찾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분의 도우심과 능력을 갈망하고 그 분의 구원을 기다릴 아는 사람들입니다.

7. 이름도 모르는 왕의 신하 한 사람은 그렇다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탐꾼을 보내어 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대단한 용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말 한마디 잘 못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경우에 따라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했다가는 문제를 책임지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어찌되었던지 왕이 적군의 계략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제안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남 앞에서는 침묵하고 뒤에서 말하는 그런 비겁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선과 악을 분별해 낼 줄 알고, 그것을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엡도 라는 주간지를 발행하는 신문사가 이슬람 과격 테러범에 의해 공격당하고 12명의 생명을 잃었지만, 프랑스 정부와 국민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샤를리라고 이름을 들고 행진하였고, 전세계 사람들도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을 지지했습니다.
        
8. 그런데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부러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3일간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용기를 얻도록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은, 겁쟁이들은 뒤로 물러가 숨을 때 그들은 믿음에 용기를 더하여 앞장서서 나아갔습니다.
이런 용기는 자신의 믿음을 키우고, 자신들의 신앙에 기적과 능력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용기 있는 신하를 통해서 사마리아성은 속히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신임하는 장관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다가, 기적의 현장에서 도리어 비참한 최후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에게 선포하게 한 그대로 완벽하게 성취되었고, 이 어리석은 장관은 말씀이 성취되는 이 일로 인하여 저주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살면서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와 실패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주이며 어떤 것을 가리켜 실패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이 저주이며, 선지자의 음성에 불신앙으로 고집하는 것이 실패중의 실패입니다.

9. 성경을 읽으면서 왜 이스라엘 왕이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그것도 할 일이 많은데 왜 이 장관을 성의 문지기로 세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발에 밟힌다고 하니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5:13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고 했습니다.
장관이 나라와 민족이 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져 백성을 구하고, 왕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묵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였으니, 이 사람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새해를 맞으면서 사람들을 볼 때, 시간은 변해도 사람이 변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월은 가도 생각이 바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작년의 실패와 고통을 반복하며,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하며, 말씀에 아멘은 왜 합니까?
2015년도 우리의 우선순위가 있다면, 제일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로 바뀌고, 세상 중심의 삶이 교회 중심의 생활로 바뀌고, 내 생각 자기중심의 생활이 순종을 통해 말씀 성취의 삶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요나 같은 선지자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며 새롭게 하심으로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10. 그렇다면 올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 나로 하여금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자비의 사람이 되도록 먼저 홈리스 같은 사람이나 실패로 고통하는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자비를 드러내는지 보시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이해하며 모든 사람들과 화해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미운 원수를 먼저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원수에게 우리가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이 되도록 은사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면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일을 만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보고 계십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응답하셨구나. 하나님이 나 같은 겁쟁이, 좁쌀 같은 내 인생을 축복과 능력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려고 귀한 기회를 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기회를 붙잡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말씀과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하며, 그렇게 해서 달라진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은 용기를 부어주시고, 용기 있는 믿음으로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더 넓은 곳으로 달려 나가도록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붙잡혀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뀜으로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