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26.내 생각에는(열왕기하5:1-19)

[성경본문] 열왕기하5:1-19개역개정

1.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6.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생각에는(열왕기하5:1-19/2014.9.26.오전)


1.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너나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고 행복과 만족에 넘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하면서도 실상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불러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불행한 방법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못된 방법으로, 죄를 가지고 행복을 얻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분명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인데, 이 사실을 잊은 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편하고 빠른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원하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보듯이 심령이 가난하기 위해서는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심령이 가난하기를 원하면서도 애통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에 대한 목마름이 없이는 애통이 있을 수 없으며, 애통이 없이는 우리의 심령이 결코 가난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각과 삶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과 삶의 바탕위에 서 있는 한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지금의 시리아에 해당하는 아람나라에 나아만 장군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선 그의 이름을 나아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비가 깊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나아만은 왕 앞에서는 크고 존귀한 자요, 백성들 앞에서는 큰 용사라고 했습니다.
그가 한 나라의 임금과 백성들 앞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존경받기 까지는 전쟁터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을 것이고, 또 그의 이름에 어울리게 자비가 풍부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겉으로는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도 문제될 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남에게 드러내기 부끄러운 치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1절에,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는 말씀대로 속으로는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문둥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구국의 영웅으로서 최고로 성공한 인생이요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인기를 한 몸에 얻는 존재였지만, 장군의 갑옷 밑으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무서운 나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 많은 부자를 부러워하고, 인기 있는 연예인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우리는 이 사람들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이며, 그들의 삶이나 가정이나 자녀나 생각의 전부를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들도 나아만처럼 그 재물과 인기와 권력과 명예라는 갑옷 밑에 무엇이 숨어 있으며, 그들이 당하는 남모르는 고통과 슬픔과 문제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에 드러나고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 것과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내가 소유하고 누린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3. 이 나아만 장군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아온 계집종이 하나 있었는데, 이 소녀가 제 주인인 나아만이 나병으로 고통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떠올리며 그에게 가면 이런 질병은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여주인에게 말했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 소녀의 말대로 엘리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런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내 삶 속에서의 작은 것 하나가 생명을 살리고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제 2인자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많은 재물과 명예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신사숙녀고, 겉으로는 유명인사요 실력자라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나병처럼 인생이 좀 먹고 무너지고 있는 것을 숨기고 혼자 고통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병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고통의 세월만 보내고 있던 나아만 장군에게 있어서 이 소녀는 복음이었습니다.
비록 남의 나라에 사로잡혀 와서 종으로 살고 있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의 능력을 믿었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의 한 마디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인생을 치료하고 구원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지나가는 투로 말해도 절망과 고통에 빠져 방황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의 사람의 말과 그 행동이 복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나아만 장군도 제 병을 고치기 위해 왕의 친서를 휴대하고 많은 재물과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사에게로 나아간 것입니다.

4.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결코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엘리사를 찾아간 나아만의 생각과 행동이 무엇입니까?
9절 이하에 보니 선지자 엘리사가 거하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엘리사가 맨발로 달려 나와 맞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나아만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1절에 보니,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다" 고 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갔던 나아만에게서 나온 것이 내 생각이었고 분노였습니다.
만일에 나아만이 끝까지 제 생각을 고집하고 그냥 돌아갔다면 그는 정말 불쌍한 자요 세상의 조롱거리고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생각이라는 자기중심은 반드시 몇 가지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은 첫째로 분노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라는 고집, 관념, 주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반드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기중심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그 분노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내 상각은 불순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남의 말에 경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습관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의견이 대립되면 분노하고 반대하고 돌아서 버립니다.
그래서 되는 일도 망치기 마련입니다.
셋째는 지금까지 수고하고 희생한 것을 헛수고 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분노와 원망과 불평만 남을 뿐이지 고생을 해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5.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장군이 찾아왔다고 하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극진히 맞을 줄 알았습니다.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선지자가 어떤 큰 의식을 행하기를 원했고, 종교의식으로 무슨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자기에게 명령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자기 생각하고 맞아 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병든 것도 슬프고 고통스러운데 도리어 문전박대를 받은 것 같아서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요단강에 내려가서 그곳에서 몸을 일곱 번 씻어라 는 것뿐이었습니다.
중병 환자일수록 자신의 병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인지를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그 고통에 어울리는 위로를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는 위로는 못할망정 예의도 없고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면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나서 그냥 돌아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일 높은 신분과 재력을 가지고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다혈질에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사람 성격에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어쨌든 나아만은 선지자 엘리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발길을 아람 나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나아만을 그냥 돌아가도록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니 요단강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나아만을 보고 지혜로운 종들이 간청을 하기 시작합니다.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였습니다.
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자기 생각, 자기 고집을 버리고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강에 들어가서 한 번 씻어 보자는 것입니다.

6. 선지자의 무례함에 조금 전까지 화가 났던 나아만도 생각해보니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되돌아 요단강에 들어가서 선지자의 말대로 7번 몸을 강물에 잠그고 올라오니 14절에 기록된대로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나아만 생각대로 아람 나라에는 이스라엘의 요단강 보다 더 깨끗한 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요단강에 들어가 그것도 7번씩 씻으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제일 먼저 내 생각을 버려야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나 축복이 내 생각이나 방법이나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가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버릴 수 없으며,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문제와 고통 속에서 이 나아만 장군처럼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고 신음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듣고 판단하고 분석하고 순종의 여부를 놓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들의 권고를 듣고 선지자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요단강에 7번 들어갔을 때, 그는 나병도 치료하고 자기 생각, 자기 고집, 교만한 마음도 씻게 되었습니다.

7. 자기 생각으로 충만하여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못돼 먹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결점은 안 보이고 남의 잘못만 보이기 때문이고, 내 잘못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말과 행동만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나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 가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생각이 복음을 막고, 내 고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내 생각이 가져오는 자기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말씀대로 믿고 순종할 때 은혜가 임하고 능력이 임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바로 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을 어떤 사람들이 믿었습니까?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5-7)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와서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잘못된 인격도 고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순종은 선지자의 말대로 나병을 앓던 몸을 깨끗하게 치료하였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고집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 선지자 엘리사에게 돌아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8. 나병은 저주받은 병이요 육체의 질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왜냐면 나중에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병 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나병으로 곧 교만한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인생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나병처럼 똑같이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저주받은 마음의 질병을 고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버리고, 사람들 앞에서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며,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육간의 나병을 고치시려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고 한 것처럼,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잘못된 감정인 분노를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 사람 되는 은혜로 충만해지기를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