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14.인생의 위기(열왕기하 4:18-37)
[성경본문] 열왕기하4:18-37개역개정
18.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19.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21.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23.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24.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25.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28.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29.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30.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31.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32.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위기(열왕기하 4:18-37/2014.9.14.오전)
1.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원하지 않는 사고나 사건에 휩쓸려 고통을 당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육체가 병 때문에 무너지거나, 신앙 때문에 원하지 않는 박해를 당하거나, 가정의 안팎에서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사건들이 우리를 고통하게 만들고 인생을 위기 가운데로 몰고 갑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체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위기 앞에 쉽게 무릎을 꿇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운명에 맡겨 수동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항하기도 합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만난 위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모두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위기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위기의 원인을 찾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수넴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만났을 때 이 여인이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수넴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2. 성경에 보면 늙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고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고, 삼손의 부친 마노아가 그렇고, 제사장 사가랴가 그랬고, 오랜 세월 자식이 없이 울고 있던 한나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자식을 주시되, 믿음의 조상으로, 선지자로 귀한 사명을 가진 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수넴 여인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한창 재롱부릴 만한 나이에 부친이 일하고 있는 추수 밭에 나가 놀다가 갑자기 어린아이가 절명하고 만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아이가 두통을 호소하다가 단시간에 숨이 넘어간 것을 보고 열사병인 것 같다고 합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가 어머니인 이 수넴 여인의 무릎에 잠시 앉아 있다가 죽은 것입니다.
병명이야 어찌되었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생명인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아들을 잃고 만 것입니다.
사실 늙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 늦게 자식을 얻으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생명이고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식을 또한 갑자기 잃어버린다면 정말 이것은 처음부터 없는 것보다 못한 일입니다.
그 부모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 여인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핵심 중에 한 가지기 무엇입니까?
그녀에게 있어서는 제 생명보다도 소중한 아들을 잃어버렸지만, 결코 신앙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 위기는 왔지만 그 위기를 통해 잃어버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녀가 취한 행동을 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위기를 만나면 그 위기에서 잃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앙심도 잃어버리고,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잃고 회복할 수 없는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욥의 아내입니다.
재앙을 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이 어리석은 여인이 욥에게 한 말이 무엇이고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병든 몸을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 피가 나도록 긁고 있을 때, 그녀는 남편을 향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욥2:8-9).
우리는 욥의 결국을 보면서 그의 아내였던 이 여인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은 제 인생에서 갑자기 만난 이 위기를 어떻게 해쳐 나갔으며 어떤 방법을 취하였습니까?
4. 21절에 보니 제일 먼저 죽은 아들을 선지자 엘리사의 방에 데려가 그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나와서 남편에게 선지자에게 급히 가도록 사환 한명과 나귀 한 마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수넴여인은 재촉하여 선지자 엘리사가 있는 갈멜산을 향하여 40키로를 달려가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초하루나 안식일도 아닌데 왜 선지자를 만나러 가는지 그것도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녀의 남편이 아이의 죽음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어떤 희생을 치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미에게 있어서 자식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이 여인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들의 죽음을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이런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에서 방문을 닫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 보면 남편에게 “평안을 비나이다” 고 했는데, 이것은 남편에게 근심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늙어서 겨우 얻은 아들이 죽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수넴 여인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갈멜산에 다녀 올 때 까지, 아니 선지자 엘리사를 모셔 와서 아들을 살려낼 때 까지 아무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담대한 신앙이요 용기 있는 행동입니까?
수넴 여인이 제 인생에 만난 위기가 선지자를 통해 해결될 줄 믿었습니다.
어찌되었던지 그녀는 갈멜산에 도착했고, 선지자 엘리사를 만났고, 아들이 죽은 사실을 말했습니다.
엘리사는 무슨 이유인지 밝히지 않고, 사환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들려주고는 명령대로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 이상하게도 수넴 여인이 갈멜산에 올 때와 같은 행동을 하게 합니다.
29절에 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고 대답하지 말고 목적지를 향해 곧장 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아이의 얼굴에 이 지팡이를 놓으라 그러면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30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사가 직접 가서 살려주지 아니하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선지자 엘리사도 할 수 없이 동행하여 수넴 여인의 집에 도착하여 아들을 살리게 됩니다.
6. 우리는 이러한 수넴 여인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녀가 문을 닫았다는 행동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문을 닫는 표현이나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발견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엘리사가 죽은 선지생도의 아내였던 한 과부에게 이웃의 빈 그릇을 빌려 집에 남아 있는 기름을 따르라고 했을 때에도, 4:4절에 보면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 라고 했습니다.
그 사실이 5절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33절에서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엘리사는 문을 닫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아들의 죽음을 비밀로 하려는 행위요, 둘째는 외부와의 세계를 차단하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마태6: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방문을 닫는 행위는 오직 하나님께만 온 마음을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려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문을 닫고 나왔으며, 아들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7. 이 여인의 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기까지 그녀는 이미 아들이 절명하는 그 순간부터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아들을 놓고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녀의 가진 신앙은 부활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은 이미 선지자 엘리야가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인데 하나님이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러 갈 때나 돌아 올 때나 아무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들의 죽음을 소문내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나왔으며, 그래서 남편에게도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엘리사의 행위를 통해서 아이가 살아난 것은 그녀의 기도 응답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도 이 여인처럼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에 가 보면 성도들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의 비밀을 여기 저기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사람들만 기도해도 충분합니다.
잔소리 많고 남의 말하기를 별미를 먹듯이 하고 소문내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도리어 마귀가 틈타고 성도들만 상처를 입고 교회만 소란스러울 뿐입니다.
8. 수넴 여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자에게로 가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믿었고, 내가 만난 이 인생의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생명을 잃은 아들을 되찾기 원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부활 신앙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기도의 응답을 위해서 문을 닫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넴 여인의 이 문을 닫는 이 행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은 곳을 향하여 문들이 열려 있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친구의 방문, 잡지와 소문들, 온갖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루 종일 우리 입으로 쏟아내고 있는 말들이 쌓을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교회 안에서 촉새처럼 말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며 사람들을 놀래게 만드는데 이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무엇을 했습니까?
스스로 아라비아의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3년 동안 세상을 향해 문을 닫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뜨겁고 가장 신실한 능력 있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문들을 하나 둘 씩 닫을 때 마다 우리는 주님과 가까이 할 수 있으며, 골방 중에서 은밀하게 살아계시는 주님의 응답을 체험하는 줄 믿습니다.
9. 수넴 여인은 자신이 만난 인생의 위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은 더욱 승화되었고, 죽은 아들을 부활의 능력으로 되돌려 받았으며, 선지자 엘리사의 능력이 그 스승인 엘리야 못지않은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이것도 잃고 저것도 잃고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지만, 그녀는 이 위기를 통해서 인생에서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위기 속에서 하나님 중심의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입니까?
믿는 대로 이루는 능력입니다.
내가 믿는 만큼 내가 그 믿음을 위해 수고한 만큼 희생한 만큼 능력과 축복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가지고 결론적으로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세상을 향한 모든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이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법을 향해 지체하지 아니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입을 닫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수고하고 희생한 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희생에 어울리는 결과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7절에 보니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잃었던 아들을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잃었던 기쁨을 회복하게 하셨고, 선지자를 향해 감사를 올렸습니다.
이유는 인생의 위기 속에서도 기도의 응답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