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9.7.초대받은 식탁(열왕기하4:8-17)

[성경본문] 열왕기하4:8-17개역개정

8.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9.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1.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14.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제공: 대한성서공회

초대받은 식탁(열왕기하4:8-17/2014.9.7.오전)
1. 저는 지난 40년의 세월을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랩하면서 이슈가 되고 있는 시사문제나 인물, 사건, 문화, 역사에 관한 기사를 분류 정리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는데, 요즘은 일본 와서 27년 간 구독하던 신문도 끊고, 인터넷 뉴스도 필요한 것만 검색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감동과 유익을 주기 보다는 한결같이 사람을 낙심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답답하게 만드는 그런 내용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제 입에서도 긍정적인 말 보다는 비판과 부정적인 말이 많아지고, 제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에서 조차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정말 한국에서 들어오는 소식이나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사람들의 말에 신물이 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도리어 서로 대적하면서 이런 비참한 환경을 만들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우리의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사28:8)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사야 선지자의 말 그대로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환경은 참으로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취해서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눈과 귀의 일부분이라도 막아서 세상이 무작위로 쏟아내고 있는 이 더러운 것에서 제 자신의 감정이나 삶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나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르는 떼거리 패거리의 바람입니다.
이 사람들 앞에는 역사도 없고 법도 없고 인륜도 정의도 양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남을 짓밟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 우리의 눈을, 우리의 관심을 어디로 돌려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까?
여호와의 말씀 속에 길이 있고, 주님의 말씀 속에 생명력이 있으며, 이 말씀 속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수넴은 엘리사의 거주지가 있는 갈멜 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곳으로 지명도가 낮은 동네였습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한 부유한 여인의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여인의 식사 대접은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 마다 이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 집안에 옥탑방을 만들어 선지자가 이곳을 방문할 때 마다 쉬고 가도록 하자고 그 남편에게 요청하였고, 그녀의 요청대로 수넴 여인의 집 안에는 선지자 엘리사의 전용 공간인 게스트 하우스가 만들어 졌습니다.
그것도 10절에 그 방을 담 위에 만들었다는 표현을 보면, 그 집안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엘리사가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만들은 것 같습니다.
저도 여행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겠지만 유럽이나 호주 같은 곳을 여행해 보면, 큰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이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밤에는 배낭을 베고 노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보통 일은 아닙니다.
이럴 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숙소를 제공받는 것은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은혜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으로부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4. 우리는 여기서 왜 수넴 여인이 선지자 엘리사를 위해서 이렇게 까지 수고하며 섬기게 되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주의 종을 접대하고 헌신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9절에 보니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내가 아노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요즘 목회자들이 수난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성도들과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신앙의 인격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성도들도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감화받기 보다는, 설교자의 신앙의 인격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설교자의 인격이 예수님 당시의 이중인격이나 위선으로 얼룩진 바리새인들을 닮아갑니다. 그래서 도무지 사람들의 모범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둘째는 영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영적인 능력의 상실입니다.
사람은 그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고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기업은 경영의 능력이 필요하고, 정치가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교사는 지식과 도덕의 능력이, 목회자는 사람들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영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상실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물질숭배와 세상 사랑이라는 대체적인 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5. 사람은 서로가 만나면 만날수록 상대방의 결점과 연약함을 더 많이 보기 마련인데, 이 수넴 여인이 만난 선지자 엘리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두 번으로 끝나는 그런 식사 대접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숭고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 중심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인격과 영성에 감복한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자인 제 자신의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넴 여인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로 엘리사 선지자를 섬기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단순히 쉴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선지자가 머물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강제도 아니고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인 헌신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섬기면 섬길수록 이 수넴 여인이 만나는 선지자 엘리사는 온 이스라엘의 영적인 아버지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결코 왕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 가는 이스라엘의 주권자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본문 17절에 기록된 대로 엘리사라는 그의 존재는, 온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수넴 여인의 집안과 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축복과 능력의 통로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축복과 능력과 구원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보시고 "그 일곱째 되는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창2:3)셨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녀를 만드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창1:28) 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고(신1:11), 신28장 전체에서 축복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을 통해서 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사람을 통해서 충만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생도의 아내는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 받게 하셨고, 다윗도 결국에는 사람들을 통해서 전무후무한 능력과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 왕은 물론이고 골리앗 같은 괴물조차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축복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은 나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신이 축복의 통로가 되며 능력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기준은 우리의 환경이나 조건이나 그 어떤 능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7. 수넴 여인은 선지자 엘리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 할수록 그에게서 영적인 감화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식사 대접만으로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서 더 크고 좋은 일을 하리라 마음먹은 것입니다.
결코 인간적인 다른 의도가 없는 섬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 드릴 수 있는 진정한 헌신입니다.
제 개인의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는 능력이 뛰어난 특별한 선지자로 알고 있는 만큼, 그들에 대한 인상이 부드럽거나 따뜻함 보다는 왠지 딱딱하고 완고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그런 성격이나 외모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사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대머리라고 놀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생각보다 마음이 순수하고 여리고 작은 일에도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13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 「세심하다」는 의미는 두려워하거나 조심스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하랏」 으로, 이것은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조심스럽고 치밀한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처음부터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 수넴 여인의 친절이 단순한 친절이나 인사치례의 차원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섬김과 헌신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엘리사 자신이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8. 그래서 그는 수넴 여인이 마련해 준 처소에 들어가 누워서 자신에게 감동을 준 이 여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왕권이나 권력을 통해서 이 여인의 혹시 있을지 모르는 억울한 일이나 어떤 특별한 계획을 해결하거나 도울 목적으로, 아니면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나 또 다른 어떤 특별한 권리를 주고자 그녀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는 말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조금 해석하기 힘든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은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이 족하다는 의미의 대답을 남기고 그녀는 물러갔습니다.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관계가 멀리 있을 때는 서로가 예를 갖추고 만나지만,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판단될 때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경계선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허물이 없을 정도로 친한 사이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경향도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이 사회적으로 특별한 존재일 때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저 사람하고 동등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수넴 여인은 선지자가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친밀했지만, 선지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신뢰하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는 그런 시대에 이런 인간관계, 이런 태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반드시 본 받아야 할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9. 수넴 여인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엘리사로서는 이 여인을 도와줄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환 게하시에게 이 집안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 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알아낸 것이 무엇입니까?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이 가정에도 심각한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그것은 14절에 기록된 대로 이 집안의 대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것과, 그녀의 남편은 이미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부부가 마치 아브라함이나 사가랴의 부부처럼 생산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를 잇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저주에 가까운 고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넴 여인은 그런 사실을 선지자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방도를 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분복으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출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인공수정이니 하면서 과학의 힘을 빌리다 보니, 최근에는 별의 별 사건들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뉴스만 해도 호주의 어떤 부부와 일본의 젊은 청년이 일으킨 가당치도 않은 사건들은 인간된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10.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런 세상 풍조 속에서도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며 큰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이 가정에 대를 이을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안 선지자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다시 불렀고, 문 바깥에 서서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그녀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니 "한 해가 지나 이 때 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가서는 선지자 엘리사의 말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씀이요 은혜입니다.
저는 오늘날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관계가 이런 관계로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주의 백성들은 주의 종들을 섬기되 사심 없이 부지런히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주의 종들은 주의 백성들을 향해 축복을 선언하면 그 선언한대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그런 관계, 그런 목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선지자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관계는 우연찮게 길 가는 선지자에게 밥 한 그릇 대접하고 대접 받는 그런 관계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섬김을 통해 향기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했고, 진정한 섬김과 목회의 본을 보여주는 축복의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성도들이 주의 종을 섬기는 일은 향기 나는 아름다운 일이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온갖 축복을 성도들의 가정에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 그 자체인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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