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27.축복의 문(말라기3:8-12)
[성경본문] 말라기3:8-12개역개정
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축복의 문(말라기3:8-12/2014.4.27.오전)
1.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시대에 교오또에 「이시까와 고에몬(石川五右衛門)」 이라는 천하의 대도적이 있었습니다.
15명의 도적떼를 거느리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다가 결국 잡혔는데, 사람들은 그를 잡아 극형에 처하는데 큰 가마솥에 기름을 부어 삶아 죽였다고 합니다.
그 때 사람들이 그의 어린 아들까지 잡아와서 함께 죽이는데, 이유는 아이가 부모에게 듣고 배운 것이 도적질이니 이놈도 살려 두면 세상을 크게 어지럽힐 것이라 해서 함께 삶아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마솥에 이 도적놈 부자를 넣었는데, 처음에는 아들을 살리려는 마음에 두 손으로 어린 아들을 공중에 들어 올리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뜨거운 고통을 이기지 못하자 아들을 발밑에 깔아 그 위에 올라서서 고통을 면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사건을 일본에 20년간 머물면서 무역상을 했던 스페인 사람이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고, 그것을 스페인의 예수회의 소속 선교사 「베드로 몰혼」이 더 자세하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은 1594년에 일어난 일이고, 고에몬의 나머지 가족도 그렇게 삶아 죽이고, 나머지 일당들은 기둥에 묶어 창칼로 찔러 처형했다고 합니다.
2. 성경에도 보면 강도나 절도 같은 도적질에 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십계명에는 이러한 도적질을 금하고 있으며, 율법에는 도적질한 물건을 팔았을 때에는 소는 다섯 배로, 양은 4배로 갚아야 했고, 갚을 것이 없을 때에는 종이 되어서라도 갚아야 했으며,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도적질에 대한 벌이 더욱 엄격했는데, 그 대표적인 형벌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달려 죽은 강도였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사회에서는 도적질 하면 손을 자른다고 하는데, 마5:30절에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고 하였는데, 이 말씀이 도적질한 손을 잘라 버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 도적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본격적인 도적질 사업을 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남의 물건을 특별한 의도 없이 무의식중에, 그것도 본의 아니게 훔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모르는 물건을 주워서 제 것으로 하는 일이나, 제일 흔한 일이 남의 물건을 빌렸다가 되돌려 주지 않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책이나 CD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쇼핑센터나 수퍼에서 가끔 장난이나 호기심으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도적질입니다.
그리고 장사 하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속임수를 쓰는데, 이것도 남의 물건을 도적질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사회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로 가져 오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향해 선지자는 통렬한 멧세지를 던진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올바른 자세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소홀히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며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이 태도가 결국에는 저주를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제 마음대로 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이 본문 10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나를 한 번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십일조입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나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이스라엘이 받아들이기에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알아보려고, 그들의 신앙상태를 드러내기 위해서 시험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볼 수는 있습니다.
삿6:36절 이하에 보면 기드온이 양털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왕상18장에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불로 응답을 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예외는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 스스로가 그 시험을 허락하실 때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왜 말리기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나를 시험하라고 하셨습니까?
말라기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한 마디로 망한 시대였습니다. 어떻게 망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두 가지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망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이고 불경건한 그들의 말 때문에 망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것을 도적질해서 망했습니다.
그 결과 저들의 현실은 고통스러웠고, 미래는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이 고통하고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극약 처방을 하신 것이고 그것이 나를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보면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을 책망하시고 벌을 주시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망해가는 그들을 살리고 축복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말하고, 헌물은 그 십일조 이외에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들을 말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온전하게 드리는 예물이니 오늘날로 하면 감사헌금이나 건축, 선교 등의 예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십일조는 무엇입니까?
영적인 의미로 보면,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의 성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성막에 다른 불을 가져다가 분향할 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고(레10:1-2),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불량하게 행하다가 한 날에 죽었습니다(삼상2:34).
하물며 하나님 앞에 마땅히 드릴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어찌 죄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오늘날 영적인 분별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지혜롭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순종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의 뜻에 순종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는 순종의 결과를 축복으로 맺고 있습니다.
셋째는 축복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10절에 보니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말씀은 10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11,12절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축복을 선언하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신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에 도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식언치 않는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6. 물론 우리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지날 때 번번이 하나님을 시험했고, 시95:8-1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므리바에서와 광야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이 40년을 근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하"(시95:10) 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행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든 그들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11) 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모든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손들만 들어갔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선지자 자신의 생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선포된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도적질이 되는 것입니다.
7.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십일조를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도적질인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8절에 보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도적맞은 물품은 다름 아닌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에서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목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고 그 분의 말씀이 기본이고 그 분이 무엇을 명령하셨느냐가 우선되어야 마땅합니다.
도적질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왜 도적질합니까?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본주의가 나오고 머리를 쓰고 잔꾀를 굴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나쁜 머리는 굴리면 굴릴수록 손해보고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장래에 대한 소망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며 바른 길로 갈 수 있겠습니까?
8.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영적으로 부흥하는 시기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예물이 풍성하였고, 십일조가 창고에 넘치는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전장에서 얻은 전리품까지도 그 중에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렸고, 농사를 지으면 그 열매의 십분의 일을 드렸고, 어떤 수입이라도 하나님의 것을 성별하여 온전히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부모가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으면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식을 도적질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고, 10절에 보니 하늘 문을 여는 축복의 열쇠요 쏟아 붇는 축복을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당시의 이스라엘은 나를 한 번 시험해 보라는 하나님의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난관을 하나님 없이 제 힘으로 돌파하려고 하다가 영영 망하고 말았습니다.
9. 믿음의 요소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두려움은 물러가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마가14:41-44절을 보면 어느 가난한 과부가 헌금할 때 두 렙돈의 헌금을 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풍족한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이 여인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난하지만 부자들에게는 없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부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만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신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값없이 얻은 것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과부처럼 전부 드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 분으로부터 귀한 것을 받아 누리는 줄 믿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십일조로 나를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에서 나온, 병든 자를 살리려는 마지막 처방이었을 뿐입니다.
10.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이외에도 감사를 넘치게 하고, 선교, 건축의 예물은 물론 예배헌금까지 따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도 희생하셨는데, 우리가 십분의 일도 아까워하고 물질에 인색하다면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이런 태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는 만큼의 정성과 희생을 각오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의 자녀란 말입니까?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 사람들, 이웃 나라 사람들까지 우리가 받은 축복을 보고 놀라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따지고 논쟁하면 사람들은 설득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과연 우리를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시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십일조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십일조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하늘 문을 여는 유일한 축복의 열쇠입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로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