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베들레헴의 길(누가복음 2:1-7)
[성경본문] 누가복음2:1-7개역개정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베들레헴의 길(누가복음 2:1-7/2013.12.15.오전)
1. 12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성탄절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케롤이 울려 퍼지고, 여기 저기 대형 크리스마스 추리며 장식들이, 그리고 시중에 흘러넘치는 상품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여기에다가 흰 눈이라도 내리면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는 것입니다.
백화점의 벽에는 술에 취한 산타 할아버지의 장식이 이때만큼은 어떤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네온과 장식들이 현란스러운 가운데 웬만하면 일 년에 한 번쯤은 호사를 부려도 될 법한 그런 계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결코 기독교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할 수 있지만,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도 아니고, 그 분의 정확한 출생 년도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축하 행사는 세상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만들어낸 축제일뿐입니다.
그들은 성 밸런타인의 날처럼 그저 흥청거리며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기면 그만이고, 그 뒤에서 장사꾼들은 이익을 챙기면 그만인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기독교와는 그의 관계가 없는 이 성탄절에 열광합니까?
사람들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 보다는 진기하고 예상 이외의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런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뉴스의 경우도 감동적인 것이나 일상적인 뉴스보다는 대형 사고나 재앙이나 끔찍한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면서 그런 것을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타락과 부패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이러한 죄성은 그래서 내일은 또 무슨 놀라운 사건이 있을 것인가? 내일은 어떤 사건이 우리를 놀랍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2.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문제는 일어났는데, 정작 그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모르니 해결 방법이 있을 리가 없으며, 사람들은 허둥거리며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결국에는 세월만 보내고 모든 기회를 놓치기 마련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지만 문제에 대한 깨달음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노세 나오끼(猪瀬直樹) 동경 도지사가 의료법인인 도꾸슈까이(徳州会)에서 5천만 엔을 뇌물로 받아놓고 그것이 들통이 나자 온갖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런 구차한 변명을 듣고 이해해 줄 만한 사람은 적어도 일본 안에서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의 이러한 추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제 자신이 만난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변명하면 할수록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문제는 점점 더 커지고 제 자신은 끝없이 추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노세 나오끼(猪瀬直樹)라는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욕심이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았고, 동경 도지사로서의 자질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죄와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패와 말도 안되는 어리석음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의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우리를 거짓말하게 만들고, 죄가 사람을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게 만들고, 죄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도록 만들고, 죄가 사람을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3. 바로 이 죄 때문에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 길이 오늘 본문의 베들레헴의 길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처음부터 자기의 죄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으로서 부하의 아내를 한 번쯤 건드린 것이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의 무서운 책망을 듣기까지는 자신이 큰 죄를 범한 줄도 알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고 빼앗고, 싸우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죄인된 우리 가운데서 33년간 섬기시며 십자가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오늘의 베들레헴의 길인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호적을 새로 할 것을 명령했고,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일을 위해 각각 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던 요셉도 조상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삼상16:1절에 보면 "베들레헴 사람 이새"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새는 다윗의 부친이고, 그래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만삭이 된 마리아를 데리고 먼 길을 여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대중교통 수단을 사용해서 이동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길은 험하고 대부분 광야 길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을 향하는 이 길은 단순히 호적을 위한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 그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길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일찍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니라" (미5:2)고 예언 했습니다.
예루살렘 남방에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옛날 이름으로는 에브라다 라는 이곳에서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할 메시아가 출생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메시아의 출생지가 반드시 베들레헴이어야만 하는가, 갈릴리면 어떻고 예루살렘이면 어떤가?
그렇게 고생하면서 꼭 베들레헴에 갈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선지자를 통해 이미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까?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범하였을 때, 죄인을 위한 구속의 뜻을 정하셨습니다.
인간이 제 스스로의 욕심으로 빠진 죄악의 심연이 얼마나 깊고 어둡고 고통스러운지 잘 아셨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따라 다윗의 자손 요셉의 가정에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5.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볼 때 과연 누가 메시아며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은 반드시 진짜가 있으면 가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진짜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이 진짜처럼 보이지만, 진품을 소유한 사람은 가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메시아가 누구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동정녀의 몸에서 출생하는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미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그가 출생하기 칠백 수십 년 전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 출생지를 예언하였고, 이사야는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 출생한다고 하여도 이 두 가지, 베들레헴과 동정녀의 출생이 아니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메시아로 보내 주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는 목적이 겉으로는 호적을 새로 만들기 위해 가는 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발걸음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한 발걸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선과 악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을 분별하며, 그 말씀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6.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는 다윗왕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왕들이 있었고, 훌륭한 왕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유일한 왕은 오직 다윗 왕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고 했습니다.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다윗의 자손을 통해 메시아가 오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윗왕가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는 영원한 왕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의 이 베들레헴을 향한 길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는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는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다윗왕의 후손으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남으로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이루도록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베들레헴을 향한 길은 어렵고 장애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됨을 알고 마리아를 데리고 온 요셉이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고 고백한 마리아가 뱃속의 아기 예수와 함께 베들레헴을 향해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7. 문제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뜻을 이루며 잘 살고 행복한 인생을 누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성공할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눈이 밝아지고 지혜가 생기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속았습니다.
왜 속았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사기꾼들이 득세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고 어려움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 욕심, 그 정욕이 어디서 왔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인생의 행복은 욕심을 따라 가는데 있지 않습니다.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 아닙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은 아닙니다.
영원한 행복, 영원한 성공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순종할 때,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줄 믿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현란한 조명과 장식들과 주고받는 선물들이 무엇입니까?
성탄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참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사단의 간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에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문제를 보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취하다가 가장 중요한 한 해의 마지막을 탕진하고 마는 것입니다.
8. 오늘 본문을 보면서 느끼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뜻을 실행하시는 이 일에 능력 있는 천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왜 연약한 인간을 통해 이루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영광과 영원한 기업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나누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천사들까지도 우리를 위해 부리는 영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베들레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길로 나아간다면, 세상을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성취를 위해 우리 자신을 헌신한다면 욕심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가는 그 베들레헴에는 우리가 몸을 쉴 만한 단 한 칸의 방이 없다할지라도, 그 길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면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이 일을 위해 험한 십자가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셨고, 마침내는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성탄절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뜻을 아는 것이고,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말씀은 성취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에 잠긴 이 베들레헴을 비추는 빛으로 오늘 우리를 부르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