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8.평화의 왕(스가랴 9:9-10)

[성경본문] 스가랴9:9-10개역개정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평화의 왕(스가랴 9:9-10/2013.12.8.오전)
1. 지난 주간에는 두 가지 큰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본국회가「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이 일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빼앗는다고 반대했고, 어떤 사람들은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의 뉴스는 지난 5일에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사망소식입니다.
남아공은 17세기부터 네델란드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면서 오랫동안 소수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을 지나치게 차별하고 학대하는「아파르트 헤이트(흑백분리정책)」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1960년대부터 비백인 반대투쟁이 격렬해졌고, 이것이 국제사회의 지지로 백인정권이 1991년에 이 잘못된 법을 철폐함으로 1994년에 전 국민이 참여하는 총선거를 통해 27년간 옥중에서 투쟁하던 넬슨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는 흑백이라는 피부색으로 대립하는 남아공에, 차별과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분노나 폭력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하는 방법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실천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온 세계 이곳저곳에서는 무장한 테러단의 공격에서부터 시작하여 민족 간의 대립이나 국가 간의 충돌, 심지어 한 나라 안에서조차 하나 되지 못하고 분쟁하고 피 흘리는 소식을 접하며 살고 있는 이때에 그의 95년의 생애는 참으로 귀하고 그의 죽음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2.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자유가 소중한 줄 알고 평등을 주장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고 주장하고 말한 대로 살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2004년 10월에 남아공의 남단 케이프타운의 로벤섬을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만델라 대통령이 27년간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흑인전용 형무소가 있었고, 그가 감금되었던 독방도 보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27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버리지 않았고, 그는 한 번도 이곳을 살아서 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형무소는 폐쇄되었고, 섬 전체는 1999년에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평등한 기회 아래서 살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 내 꿈이다. 이러한 이상이야말로 내가 목숨을 걸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을 실현하는데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것을 걸겠다" 고 하였습니다. 또한
"피부색이나 성장환경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미움을 배우는 것이다. 만일 미움을 배울 수 있다면 사랑하는 것도 배울 수 있다.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에 전달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만델라의 생애를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함께 만족하고 사랑할 수 있는 위대한 국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완벽하고 위대한 국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도자든지 한결같은 것은 그들이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국가와 민족을 만들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열망과 기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독재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정적을 탄압하고 부정부패와 연류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만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주위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자신도 망가지는 것이 권력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복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 집니까?  
제일 먼저 국가와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의로운 통치자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국가는 통치자에 의해 변하고, 백성도 지도자에 의해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위대한 왕으로서의 통치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4. 그는 어떤 왕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시온의 딸들이, 예루살렘의 딸들이 그를 기뻐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를 사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장차 오실 메시아는 다름 아닌 공의로운 왕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의 경우를 보면, 악인은 악에 대한 형벌이 없이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죄 없는 자가 심판을 받고 고통을 당하며, 세상은 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권력들이 자기 백성을 속이지 않으면 결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으며, 원하는 통치를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하는 장사꾼들이 손님을 속이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거래처와 손님을 속여야 내가 살아남고, 속여야만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통치는 전쟁과 무력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분의 다스림은 백성을 속이고 빼앗고 억압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세워진 평화의 왕국이며 은혜와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오셔서 죄로 말미암은 억압과 가난함과 질병과 모든 문제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군왕들은 백성을 압제하고 자신의 왕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케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모든 문제에서의 해방을 이루시고 영원한 목자로서 우리를 영생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5. 무엇보다도 그는 겸손한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귀를 탄 것은 왕의로서의 권위와 위엄이 아니라, 겸손함과 평화를 사랑하는 왕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분의 겸손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고 했습니다.
그는 병든 자 귀신들린 자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해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먼저 내미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목숨도 내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존귀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가장 비천한 자가 되셨고 수치와 부끄러움과 고통의 상징인 십자가도 대신 지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 모두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의 왕국은 기한이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인간이 통치하는 나라는 흥망성쇠가 있고, 전쟁과 기근을 겪으며, 수많은 고통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지만, 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화평과 기쁨으로 충만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믿고 따라 가는 길에는 모든 것이 완전하며 새롭습니다. 영원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요14:27)고 하셨습니다.

6. 우리는 그에게서 참 임금의 모습이 어떠하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하는 구세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가 죄 중에 고통 하는, 죄와 온갖 저주에서 신음하는 나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십니다.
그것이 곧 성탄절입니다. 그것이 곧 말씀이 육신이 된 임마누엘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요, 사랑을 위한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에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분의 구원의 은총을 영원히 찬양하는 줄 믿습니다.
저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데, 사진에는 여러 가지의 대상이 있지만 정말 감동적인 것은 사람의 얼굴과 자연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만들어진 그곳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자신의 받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카메라에는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마디로 만물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육체를 위한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 썩어질 사람의 육체를 위해 모든 상업이 존재하고, 과학과 학문이며, 정치며 사상이며, 유행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육체가 없어진다면 남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 오늘날의 물질문명과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성을 쌓고, 자신의 썩어질 육체를 위해 탐욕으로 물질을 모으고, 육신이 원하는 대로 끌려 살다가 마지막에는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 사랑이며, 바로 이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입니다.

7. 우리는 정말 평화를 사랑하고 참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온의 딸들이 사모하고 기다리던 이 평화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공의로우신 통치에 내 삶을 위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공의로우심과 겸손을 배우기 바랍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통치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전쟁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시온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본문 10절을 보니, 모든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고 전쟁의 활을 없애고, 공의와 겸손으로 온 세상의 화평을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왕국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땅 끝까지 이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복음은, 칼과 활과 병거에 의한 전파가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온 세상이 하나가 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것을 말합니다.

8. 주님은 본문 10절에서 그가 다스릴 영원한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약과 약속이 헛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가를 체험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은 간절하지만, 약속을 이룰만한 능력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변개나 취소가 없는 완벽한 약속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친히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시작하여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창조의 역사가 완벽함 같이 그의 약속은 완벽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사모하는 나라의 모습이며 통치자의 모습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의 생명을 주셨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9. 주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은 어느 특정한 국가와 민족만의 평화나 통일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만인이 누리는 영원한 평화, 영원한 기쁨,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가 받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2월의 대강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되신 주님의 성품을 닮은 그의 복된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완벽한 통치를 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그에게 복종시키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더불어 참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가 이 땅에 오셔서 33년 간 우리에게 보이신 본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 땅에 유일한 평화의 왕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의 다스리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이러한 삶을 통하여 능력과 축복과 의로움을 드러내시고, 주님의 나라는 속히 땅 끝까지 이를 것이며, 전쟁과 기근과 고통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가 이 땅에서부터 실현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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