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2.구유에 누인 아기 (누가복음2:8-20)
[성경본문] 누가복음2:8-20개역개정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구유에 누인 아기 (누가복음2:8-20/2013.12.22.오전)
1. 인생에게는 두 가지의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 스스로의 힘이 미치는 영역이 있어서 그곳에서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학생들은 학교나 전공을 바꾸어 볼 수 있으며, 직장인들은 회사를 바꾸고, 사업가들은 이런 사업 저런 사업을 할 수 있으며, 취미도 바꿀 수 있고, 주거지의 변경이나 헤어스타일이나 여러 가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영역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국가의 지도자 문제입니다.
사람이 지도자를 잘 만나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지만,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저주요 패가망신입니다.
내가 태어난 땅의 지도자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백성을 함부로 죽이는 살인마라면 그것은 잘못된 만남이고 그 만남 자체가 고통일 뿐입니다.
이것은 지도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정에서 남편 잘못 만나거나 아내를 잘못 만나서 지옥 같은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고, 세상에서 못된 사람 만나서 평생을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된 만남 때문에 내 인생이 고통스럽고 많은 세월을 허비했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지금보다 더 좋은 만남을 통해서 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이런 분들을 위해 좋은 만남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2. 오늘은 성탄주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 최대의 선물인 복된 만남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신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들에서 밤을 새우며 양을 치던 목자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온 백성을 위해서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11절을 보면,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고 했습니다.
왜 양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들만이 아니라 온 백성, 즉 유대 땅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경제적인 수탈을 당했고, 로마의 앞잡이인 이방인 헤롯왕의 압정으로 고통 할 때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한 왕인지 마태2장에 보면, 동방박사들을 통해 유대 땅에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그 이유만으로, 제 나라 백성들 가운데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다 죽였다고 했습니다.
어찌 이런 포악하고 잔인한 왕이 헤롯뿐이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 땅에는 3대를 내려오면서 살인자들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데 백성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만남이요 고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아기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유에 누인 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것은 본문 1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이것입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평화를 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광은 무엇이고 평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어찌 우리와의 만남에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로 영광이라고 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 강탄하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 길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죄와 고통에 빠져 신음하는 불쌍한 우리 인생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인생이라도 스스로의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러나 뜻만 있다고 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정부가 완벽하고 훌륭한 법을 공표한다고 해도, 그것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온전한 법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하나님의 뜻은 완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는 오셔서 33년 동안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함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된 예수님의 목적이고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그분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4.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도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행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델프라는 신학자며 예수회의 신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빵은 중요하다. 자유는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빵은 육신의 양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공급원이지만, 아무리 양식이 풍부하다고 해도 자유가 없는 인생은 가치를 상실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대적인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분에 대한 신앙고백이 없다면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빵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쟁취하고 그 자유를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목적을 위해 오셨고 33년 동안 우리 가운데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든지 평화를 말하고 화평을 말해도 제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고는 참 평화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한 삶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고집이며 모든 계획은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 안에서도 내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참 평화가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5. 둘째로 평화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탄하시기 까지는 이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는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의 모든 평화는 일시적인 것이거나 이름뿐인 평화였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는 우리 가운데 평화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가리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4
-15) 고 했습니다.
이 땅의 그 어떤 평화도 누군가가 먼저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고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죄로 막힌 원수의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우리에게는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해 진노와 저주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생이 제일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지 아니하고는 천년만년을 살아도 참 평화를 맛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먼저 욕심을 따라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와 화목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먼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화목의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이 두 가지의 일, 하나님 아버지께는 죽기 까지 순종함으로 영광을 돌리셨고, 이 세상에는 십자가를 통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영원한 평화를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람, 즉 그리스도의 소유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다는 의미로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이나 많은 사람들은 이 그리스도라는 말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교 당하는 것을 기뻐하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실제로 기원64년 이후로 로마 황제 이외에 누구에게든지 "주" 라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다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가리켜 "나의 주" 라고 고백하는 행위는 곧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백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세상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오셨다면, 이것은 당연히 오늘날 우리들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까지 인도하셨고 도와 주셨습니다.
7. 본문 12절에,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라고" 고 했습니다.
표적이란 무엇입니까? 겉으로 드러난 증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는 이 아기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 곧 그리스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아기가 받은 사명, 곧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를 완성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 더불어 함께 살다가 함께 죽는 존재들입니다.
왜냐면 그를 믿고 영접할 때,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났고, 잃었던 생명을 찾았고, 저주와 모든 고통은 물러가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영원한 목자요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와의 이 만남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만남이요 복된 만남인줄 믿습니다.
피렌체의 성자인 성프란시스코는 평화의 기도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오 거룩하신 주여,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음이나
남은 생애를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