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4.십자가의 은혜(고린도전서1:22-29)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2-29개역개정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십자가의 은혜(고린도전서1:22-29/2013.11.24.오전) 1. 지난주는 추수감사절로 성도들이 많은 과일로 강단을 장식하고, 예배 후에는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귀한 친교를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귀한 손님까지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여러 가지로 주님의 귀한 은혜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오늘은 교회 창립 29주년 기념 주일로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많음 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1984년 11월 25일, 오사카 북쪽에 있는 수이따시의 센리오까(吹田市千里丘) 14번 국도변의 2층 다다미방에서 7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1년 전에 한국성서선교회의 일본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오사카에 와서, 저를 선교사로 초청해 주신 아사히그리스도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약 30년 전이니, 한국은 가난한 후진국이었고 일본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선진국 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엄청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었던 때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서 이러한 무역역조 현상을 타개해 줄 것을 요청했고, 나까소네 수상이 일본 국민에게 미국 물건을 많이 사 줄 것을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미국의 부동산이나 회사들을 일본 회사들이 너무 많이 사들여서 문제가 될 정도로 경제력이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그 때 한국은 나라도 가난했지만 대한항공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 당해서 269명의 전원이 사망한 가운데 매우 어수선할 때였습니다. 2. 그런데 제가 선교지를 일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외조모가 일본 사람이고, 모친이 일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째는 당시에 한국은 비자를 받을 수 없는 나라가 많았지만, 일본은 어느 나라나 마음대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통한 세계 선교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둘째는 일본이 부자의 나라이니 일본의 경제력으로 가난한 나라들을 도우고,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이야기가 좀 길어집니다마는, 그 때의 일본과 한국이 분명하게 다른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1982년에 제가 처음 일본 땅을 밟았는데, 그 때 제가 서울 서대문 연희동에 살면서 밤에 산에 올라가 동서 사방 아래로 내려 다 보면 붉은 십자가 네온이 24개나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사방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오니 교회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신사나 절간은 좋은 땅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보란 듯이 서 있었는데 교회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나라의 외조모의 친척집에 인사를 하려고 찾아가는데 1시간을 달려가도 길가에 교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천리시를 지나가는데 도로 변에 나무 십자가를 달고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 같은 교회가 하나 보였습니다. 도로보다 움푹 내려간 곳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이 교회는 도로에서 쏟아지는 온갖 먼지와 매연을 다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천막교회에서 가마니를 깔고 신앙생활을 한 적은 있지만 교회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나머지 일본 땅에 아름다운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내 꿈이 되었고,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일본에 오게 되었습니다. 3. 1983년에 일본으로 파송 받고, 1984년 봄에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 올 때, 김포공항에서 우리를 배웅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물건은 버리고 우리의 전 재산은 달랑 12,000엔이 전부였습니다. 문제는 복음 없이도 소원 성취하고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어버린 이런 경제대국 일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고 왔으니 과연 그 복음을 누가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당시에는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88올림픽과 한류 붐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익숙해 졌지만, 그 이전에는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건물을 빌리는데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고오베 개혁파신학교를 다니면서 전차를 타면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닌니꾸 쿠사이 (마늘 냄새)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결심하고 2-3년 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쿠사이 쿠사이 해서 그 다음부터는 먹어도 냄새나고 먹지 않아도 냄새 나니 김치라도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에 다시 먹기 시작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포들이라도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제가 서투른 일본말로 예수 믿으라고 했으니, 일본 사람들이 저를 보고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게 보았겠습니까? 4.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을 살펴보면 매우 부정적인 단어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리끼는 것, 미련한 것, 약한 것, 부끄러움, 멸시받음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 22절에 보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 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리는데 메시야가 오시면 특별한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적어도 로마가 유대 땅에서 물러나고 이스라엘은 메시야의 통치로 세계를 다스릴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의 메시야인 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의 문제는 저주스런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먼저 기적이나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권력으로 세계를 정복하였고, 동시에 헬라문명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신약성경이 유대인의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고 헬라어로 기록된 것만 보아도 그 당시의 헬라 문명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헬라인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철학과 신화와 웅변을 최고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최고의 지혜와 웅변술을 가지고 자신들을 감동시켜 주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전하는 것은 늘 말도 안 되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로 인한 구원뿐이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고 세상 학문과 지혜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가 아니라 가장 무능하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불쌍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23) 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18) 인 줄 믿습니다. 5.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국운이 치솟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오사카중앙교회가 창립되었고, 숫한 고난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29년의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십자가의 은혜였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라는 것은 내 힘이나 내 지혜나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의 도우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라는 것은 다른 것에 한 눈 팔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에 집중한 신앙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바깥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경제적인 논리에는 눈이 밝아도,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논리며 삶의 방식을 의존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인간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래서 소유가 바닥이 나면 그것이 인간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것이 마르크스주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죽도록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이런 삶이 프로이드 주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주님의 몸 된 이 교회는 이런 풍조 속에서 어떻게 걸어왔습니까? 광야 같은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 길이었습니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약속하심을 믿고 인내함으로 승리를 얻은 길이었습니다. 기도와 응답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며 걸어 왔습니다. 6. 이민사회에서 교회가 2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면 전통이 있는 교회라고 분류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30년을 눈앞에 둔 우리교회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걸어온 하나님 중심의 신앙의 유전들과 쌓아 올렸던 영적인 자산들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신앙의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전통 있는 교회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되고 믿음으로 귀한 본을 보이는 귀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 많은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교인들끼리 싸우거나 분열한 적도 없습니다. 도리어 교회를 섬기는 일에 그 희생을 기뻐하고, 예배 때 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런 분들이 중심이 되어 오직 하나님 중심의 개혁주의 신앙을 지향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제 자신을 말씀의 도구로 복음의 사명자로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신앙을 말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목적은 이 땅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이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특히 고난과 어려운 문제 속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힘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 동안 우리가 예배하는 이곳을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했지만, 어려움을 만난 뒤로 한 3년 동안 그 기도를 멈추어왔지만, 최근에 다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와 기도제목이 일본 복음화, 세계 선교, 성전건축입니다. 이곳에 성전을 건축하고 선교센타를 건립할 수 있도록 다시 꿈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7. 오늘 본문에서 강조되어 지는 것처럼 십자가의 복음은 약한 자들을 불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없는 자들을 불러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지혜로도 우리의 소원은 이룰 수 없지만,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보다 먼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의 힘이 되시고 도움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29년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십자가의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가 교만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가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하였고, 허황되고 어리석은 꿈을 가진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켰고, 고난과 수치 속에서도 분노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인내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교회의 29년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시도록 안으로는 힘써 섬기는 삶을 살고, 바깥으로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 많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