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3.그 아들의 이름(이사야 9:6-7)
[성경본문] 이사야9:6-7개역개정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 아들의 이름(이사야 9:6-7/2012.12.23.오전)
1. 병원의 신생아실에 가보면 갓난아기들이 누워있는데 저마다 명패에 쓴 이름이 있습니다.
부모나 집안 식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이름을 짓느라고 씨름합니다.
어떤 집안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이의 이름이 장차 태어날 생명의 인격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고, 더 복되고, 뛰어난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그런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자녀들의 이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의 이름은 성은 高가요 이름은 길 永에 지킬 守입니다.
제가 자랑하고 영원히 지킬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요 십자가 복음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태어날 당시에는 우리 가문이나 주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셨고 제 이름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한 가정에 어린아이가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이의 이름이 특이합니다.
기묘자라고도 하고, 모사라고도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기묘자, 모사라는 것은 전쟁에 있어서 탁월한 지략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전쟁이나 국가의 경영에 있어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계획을 세우는 지혜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것은 이 아이는 단순한 혈통을 이어받는 인간이 아니라 그 안에는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이 충만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지만, 그의 근본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표현한 것은 한 가정을 책임지고 돌보고 부양하는 보호자임을 말하며, 평강의 왕이란 이름은 세상 주권자들과는 전연 다른 그의 통치의 능력과 근본을 백성들의 평화와 번영에 두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이사야서를 읽어보면 고통과 절망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5장에서 본문의 9장에 이르기까지 흑암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30에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 다 고 했으며, 8:22절에도 "땅을 굽어보아도 환란과 흑암과 고통의 암흑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고 했으며, 9:2절에도 "흑암에 행하던 백성" 이라고 했습니다.
6:13절에는 "그 중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 이라 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불러 이렇게 고통과 어둠과 절망에 빠진 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사명을 허락하시고 그 약속의 증표로 한 아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이 아이를 통해 장차 선민 이스라엘은 모든 흑암과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요,
이 아이를 통해서 장차 그들의 대적을 남김없이 심판하고 이 땅에서 몰아낼 것이며,
이 아이를 통해서 그가 평화의 왕국을 영원토록 세우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9:1절에 나오는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기원전 732년에 앗수르에게 점령당해 앗수르의 영토로 편입되고, 이로 인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몰려와서 살게 됨으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쉴 새 없는 전쟁과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도 관심을 끌지 못했던 소외된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 사람들은 기뻐하려고 해도 기뻐할 이유가 없으며,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할 일이 없으며, 삶에 평강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과 소망이 없는 저주 같은 나날이 바로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땅에 이런 환경 속에서 소망이 회복되며 기쁨과 평안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한 어린아이를 통해서 이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3.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나 경제적 상황을 보면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경험한대로 인간의 힘으로 평안을 회복하고 기쁨을 되찾고 감사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살아갈수록 더 많은 인생의 짐과 어려운 현실이 우리의 발목을 걸어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인간이 노력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실 때 우리는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만족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3절의 즐거움은 인간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요 감사인 줄 믿습니다.
그 사실이 사사시대의 기드온을 통해 증거되고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3백 명의 기드온 용사가 미디안의 연합 대군을 전멸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손이 그들을 치고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대적을 물리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 능하신 기묘자요 모사이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맛본 승리의 기쁨은 절대적이고 완벽한 기쁨이 된 것입니다.
4.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절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런 절망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힘들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도 노후에 대한 준비가 없어 미래가 불안하고 힘든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적인 가난이 고통스럽지 만 절대적인 가난은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그런 시대를 살았고,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룬 것은 이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서가는 선진국들을 따라 잡은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고, 흑암을 물리치는 광명의 태양은 반드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늘 열강에 짓밟히는 나라요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에도 소원은 자주국방이요 부국강병이요 우리도 잘 살아보세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사모하던 것은 강력한 통치자 메시야를 원했던 것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애급이나 로마를 물리칠 만한 왕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한 아기를 약속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바로 그 분이 본문의 말씀에 기록된 한 아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5. 대한민국은 1997년의 IMF로 회생 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전 국민이 힘을 합치고 온 교회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의 문을 열고 열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제는 국제사회를 이끄는 지도자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2007년도에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세계금융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이 경제적 파산이 전 세계인의 도덕적 정신적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에는 서로 양보하고 도와주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안되고 먹고 살기도 어려워지니 사람들 속에서 짐승의 본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양보하고 질서 지키고 양심적인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시대가 어려워지면 반드시 나오는 단골메뉴가 있습니다.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노스트라다무스로 사람들을 미혹하더니 최근에는 12월21일에 종말이 온다고 소동을 일으키는데 고대 마야인들의 종말설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일부의 어떤 교회들도 프리메이슨이니 블루칩이니 하면서 성경까지 억지로 풀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고대 마야인들의 종말설도 그 배후에는 종말론으로 돈벌이 하려는 사람들의 간계가 숨어 있습니다.
근거도 없는 기독교의 잘못된 종말론의 배후도 같은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고 했습니다.
6. 이 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이 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무너지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마음까지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은 어려울수록 기묘자요 모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과 그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관리하시고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장 힘이 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7절 마지막 부분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는 것입니다.
정치가가 약속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도움을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강대국 앗수르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흑암에 내려앉은 가난한 땅 고통의 땅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8절에 기록된대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시"는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앗수르에게 당하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으면 이런 번거로운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을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그들의 불순종이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고통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스블론과 납달리 땅을 고통과 흑암의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강대국을 믿고 사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죄가 불순종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7.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로 오셔서 그 분의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고 순종함으로 승리의 영광을 얻을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오셔서 연약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분의 이름이 이 사실을 보증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바로 그가 베들레헴에서 나신 아기 예수시며, 그는 우리 모두의 왕이신 줄 믿습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늘 미래가 두렵고 불안합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인생이라도 현실은 어둡고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기드온처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스블론과 납달리 땅이 절망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라도 하나님은 능히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고 저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매 아들을 보내어 영원한 사랑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소식을 온 세상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아기 예수가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인 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복음전파의 기회입니다.
예수님도 처음 전도를 시작하셨을 때 이사야9:1-2절이 인용되었습니다(마4:14-16).
성탄절을 통해 우리의 잃어버렸던 영육간의 귀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복되며, 이웃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