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30.믿음, 사랑, 소망으로(골로새서 1:3-6)

[성경본문] 골로새서1:3-6개역개정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 사랑, 소망으로(골로새서 1:3-6/2012.12.30.오전)
1.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는 지난 토요일, 저는 두 가지의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지난 27일 밤 8시 경에, 뉴욕 지하철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남성의 등을 떠 밀어 치어 죽게 만들고 도망간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지난 16일 인도 뉴델리의 심야버스 안에서 6명의 남성들이 차례로 성폭행하여 중태에 빠뜨린 23살의 여대생이 수술을 받던 싱가폴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사건은 자동차나 열차 사고나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총기사건처럼 한꺼번에 수십 명, 수백 명이 죽고 다치는 그런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고로 인한 인명 손실은 미리 조심하고 예방에 힘을 쏟으면 어느 정도는 방어할 수 있는 사건들이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옆 사람이 갑자기 흉기가 되어 사람들을 공격하여 생명을 잃게 만드는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사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의 사건이지만 모리나가 제과의 독극물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분노를 불특정 다수를 향해 살상의 행위를 가지고 무섭게 쏟아 붓는 사건이 일본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만한 그런 일들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뉴스와 기억들이 더 많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그러나 사도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골로새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가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볼 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믿을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소망을 가질 만큼 기대를 가질만한 그런 세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나 우정이나 신뢰나 질서 같은 것은 이미 땅에 묻혀 화석이 된지 오래되었고, 사람들은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혼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쯤은 괴물이 되어버린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혼자 살아남아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렇게라도 살아남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제 인생에서 죄와 고통과 저주를 더 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나 일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는 교회에게도 일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면 이 사람들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답고 복된 삶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보여 주었더라면, 이 사람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소망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믿음이라도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살았고, 교회 다니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머리 굴리고 눈치 보면서 악착같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점점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적어도 2012년도만큼이라도 내가 바로 살았더라면, 내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었더라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좀 더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그렇다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결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자녀답게 아름답고 복되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 수 있습니까?
첫째로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나면서부터 일어서 본 적도 없는 이 앉은뱅이 거지의 손을 잡고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잡아 일으켜 걷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할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나면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 앉은뱅이 거지를 잡아 일으켜 걷게도 만들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만들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행3: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 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이 무슨 이름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여 따라가는 그 믿음이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을 좇아내고,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어떤 사람이라도 새롭게 만들고 구원하는 줄 믿습니다.

4. 세상 모든 일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관련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구경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경꾼들은 아무리 귀하고 복된 일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어난다 할지라도 결코 구경하는 것 이상의 것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앉은뱅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지만 구경꾼들은 그냥 엑스트라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상속받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는 구경꾼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약2:14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17절에 분명히 밝히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 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아멘 믿습니다만 하면 다 구원받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야고보가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죽은 믿음,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도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도 실상은 대부분이 구경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5.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이런 엉터리 믿음을 가지고 누구를 살리며 무슨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삶에 무슨 미래가 있으며 소망이 있겠습니까?
산 믿음이 그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것처럼, 죽은 믿음도 그 사람을 영원히 죽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경꾼의 결말에 대하여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6:24-7:20에 보면 아람왕이 사마리아를 치러 올라와 성을 에워싸자 성안에 기근이 심하여 결국 자녀를 삶아 먹는 일이 일어났을 때, 선지자 엘리사가 "내일 이 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고 예언했고 이 말씀을 믿지 못한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했더니,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왕하7:1-2)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이 아람군대를 두려움으로 몰아 황급히 도망하게 만들었더니, 이로 인해 버리고 간 곡식이 산더미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 장관은 많은 곡식을 보고도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 곡식을 가지려고 다투는 군중들의 발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4절에 나오는 "너희의 믿음"이 6절 끝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고 풍성함에 이르도록 하려면 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2013년도에는 믿음의 구경꾼이 아니라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 믿음을 선물로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넘치는 능력과 은혜와 축복으로 풍성하기를 소원합니다.

6. 둘째로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성도들에게 강조하기를,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일요3:18) 고 했습니다.
자녀를 키워보면 부모가 집안에서 고함지르면 자식도 고함지르는 사람이 되고, 부모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면 자녀도 그런 인생이 되고 맙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라나는데, 남의 손에만 맡겨 놓고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그런 자녀들은 나중에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초대교회가 2천여 년이 지나도록 교회의 모범이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으로 행함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함께 떡을 떼며 함께 교제하며 하나가 되어 기도와 말씀과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랑의 능력이 사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능력이 있는 교회가 힘이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허리가 약해서 늘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허리가 약하다고 핑계하기가 싫어서 무거운 짐도 들고 했는데, 그 때마다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허리 아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병들고 허약한 사람은 제 구실을 못하는 법입니다.

7. 하나님의 자녀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선을 행하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쥐꼬리만큼 하면서 행한 것 그 이상으로 자랑하고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왜 참된 사랑으로 행할 수 없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있는 곳에서 참 사랑이 나오고 참 사랑으로 행함 속에서 소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 없는 곳에서 무슨 행함이 따라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목적은 우리가 언제까지 사랑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대신에 이 세상에서 사랑의 사도요 사랑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일요4:17)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미래가 두렵고 불안합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 시작해서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주님 대신에 사랑의 사도로서 살아간다면 사랑의 능력이 우리와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8. 세 번째로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는 원동력이 있듯이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원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롬8:24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민족도 소망이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소망이 있을 때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일본의 중의원 선거나 한국의 대통령 선거도 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마니페스트(공약, 선언)이 무엇입니까? 전부 내일에 대한 소망들뿐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바라보고 나아갈 때에도 반드시 소망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올 한해는 어려웠지만 내년에는 잘되겠지! 좀 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대한 만큼 열심을 내고, 열심을 내는 만큼 내일에 대한 소망이 넘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도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 받아 새 사람 되는 것에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기쁜 것입니다.

9. 허약한 사람이 병에 잘 걸리고 전염병에 약하듯이 세상 유혹에 잘 넘어지는 사람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고생이 되어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유혹과 싸워 반드시 이기려고 몸부림도 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지금 당장 눈앞의 일만 생각하기 때문에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마라톤 선수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100미터 200미터 단거리를 뛰는 선수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경기가 순식간에 끝나지만 마라톤은 그렇지 않습니다.
42.195킬로의 거리를 뛰면서 고통스럽고, 목마르고, 외롭고 당장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이 수도 없이 밀려오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목표지점을 바라보고 쓰러질 때까지 달려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곳의 면류관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골인 지점에서 나를 기다리는 면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과 약한 마음과 잘못된 생각이 밀려와도 물리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가 어렵고 열매가 없어도 낙심해서는 안되는 것은 전도자로서 받은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있든지 없던지 낙심하지 아니하면 주님 말씀대로 때가 되면 거두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자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이후에라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10. 민수기 23:19절에 보니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고 했습니다.
2013년도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할 정도의 능력과 축복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이나 바라보고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이제 부터는 믿음, 사랑, 소망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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