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9.그를 아는 자(마태복음 2:1-13)

[성경본문] 마태복음2:1-13개역개정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제공: 대한성서공회

그를 아는 자(마태복음 2:1-13/2012.12.19.오전)
1. 옛날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자기 반 아이들의 가정방문을 하는데, 그 가운데는 가정생활이 너무 어려운 아이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기 집에 선생님이 오시지 못하도록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을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보여 드리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가정 형편을 알아야 그기에 맞춰서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는 것은, 학교교육이 교과서를 통해서 지식만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통해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가정이나 문제 아동일수록 선생님이 자주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기 위해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셔야 하고 그것도 주인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생명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이 예수님이야말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믿어도 예수님을 손님으로만 모시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집에 아무리 귀한 손님이 찾아와도 손님에게는 귀한 것을 맡기지 않습니다.
손님에게는 어려운 부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집안 식구, 특히 부부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 다 맡기고 모든 것 다 말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부부가 한 마음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인생의 목표도, 삶의 방식도, 중요한 결정들도 함께 하며 함께 나누며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곁에 있었고, 별을 보고 연구하다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게 된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경배합니다.
동방박사들을 통해 이 소식을 알게된 헤롯왕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소란을 떨었습니다.
그밖에 예루살렘 성의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함께 소동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눅2:15-20절에 보면 베들레헴의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찾아와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그 직업이나 신분이나 출신이나 삶의 배경이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간단히 분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저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찾아가 경배하며 그 심령에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배척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450년이 넘었고, 개신교는 150년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기독교가 일본 인구의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없거나 전도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 동안에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 일본의 개화를 위해 헌신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본 전역에 8천여 개의 교회가 있고, 소그룹 단위의 가정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본의 문서전도는 훌륭하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능력이 제대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믿는 자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믿어도 실상은 그 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신활 믿는 사람들도 많고,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들도 많고,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 종교지도자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성경 가르치는 것은 잘하지만 배운 것을 행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3.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수태고지, 즉 성령으로 임신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엇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고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이 일을 위해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드렸던 것입니다.
요셉 또한 이 사실을 알고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아이를 낳기 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였고, 출생하자 아이의 이름을 "예수" 라고 지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다는 그 사실에 대한 동의만으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믿는다는 것은 알고 동의한 후에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받아들인 사실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것에 까지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별을 바라보고 연구하다가 그 별이 계시하는 내용을 사실로 확인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서 아기예수님의 강탄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태어날 아기 예수님을 위해 귀한 예물을 미리 준비해 왔습니다.
그들의 예물이 무엇이었습니까? 황금과 유황과 몰약이었습니다.
이것은 왕에게 드리기에 합당한 예물이었고, 이것은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고 구원의 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알고 인정한다면 그 다음에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4. 사람들은 안다는 것을 자랑하고 깨달은 것을 남다른 특권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알고 말았으니 이제는 뒤로 물러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어느 빌딩에 가서 일을 보다가 우연히 화재나 긴급 상태가 발생한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 한 몸만 얼른 빠져 나오겠습니까?
당연히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실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려 할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배 밑창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면 혼자 구명보트를 내려 타고 도망을 가겠습니까?
당연히 응급조치를 해서 배를 위험에서 구하던지 아니면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2:26)이라 하였고,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약4:17)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목회자에게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사카에는 어려운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도 그렇지만 연약한 후배 목사님들의 교회들을 보면, 교회가 어려워지면 힘을 모을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직분받은 교회에서 연기처럼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나중에 보면 큰 교회에 다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열심 있는 신자처럼 행세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지 몰라도 저는 민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5. 본문 3절에 보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가난한 목수 집안의 장남의 탄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임을 헤롯왕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헤롯왕이나 대제사장 같은 종교지도자들은 아무도 베들레헴으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베들레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알고도 행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문제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알고 깨달으면 행동에 옮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헤롯왕 같은 사람입니다.
헤롯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대재앙이었습니다.
자신의 왕권을 흔들고 헤롯 왕가를 멸절시키려는 대적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왕권이라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온 이스라엘을 유아살육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종교라는 짐을 지워 고생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그 이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평안을 잃고 늘 사람들을 대적하며 죽이며 원수 만들기를 좋아하다가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 고통하다 죽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과 이스라엘 전체가 통째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6.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 당시 사람들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다는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시대에 누가 별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누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주었습니까? 천사들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런 특권을 받고도 행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밤에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는 것이 귀찮은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탄생을 통해서 누구도 맛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알고 행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배우고 깨닫는 이 말씀이 남다른 특권인 줄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섬기고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이 종교적인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고 기쁨이요 영광스러운 일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낼수록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신앙이 죽은 신앙인지 살아 있는 신앙인지 판결이 나는 것입니다.

7. 아기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죄 가운데 빠져 고통 하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분은 하늘의 영광의 보좌도 버리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분은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그분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신을 찢으시고 한 방울의 피와 물도 남기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다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삼아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단순한 생명이 아닙니다.
요10:10절에 보니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응답에 확신을 가지고, 환란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기 예수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노쇠하다가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세월이 갈수록 더 풍성함에 이르는 생명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세상살이나 먹고 사는 일에 너무 매달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을 바라보고 너무 지나치도록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간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그를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는 넘치는 생명력으로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알았고, 그 목적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 그분을 아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도록 힘써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특권이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기뻐하고 즐기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화재난 건물에 사람들을 버리고 나 혼자 도망가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구멍 난 배가 침몰해 가는 것을 알고도 혼자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가는 영원히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누가복음 2:14절에 기록된 대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였으니, 이 말씀대로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임하고, 이 땅 사람들에게 영원한 기쁨이 넘치도록 우리가 알고 체험하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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