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1.우리에겐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시편 30:11-12)
[성경본문] 시편30:11-12개역개정
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 우리에겐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시편 30:11-12/2012.11.11.) 1. 한국 교회는 해마다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면 일 년 동안에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절의 기원은 신약교회가 생기기 전인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라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신약교회는 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몇 가지의 경로를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유래를 출23:14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매년 삼차라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초실절, 오순절), 초막절(수장절, 장막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구원하기 위해 강퍅한 바로와 애급을 심판하실 때 10가지의 재앙을 내릴 때, 마지막 10번째 장자들을 죽이는 죽음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민족은 자기 집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죽음의 재앙을 면하고, 마침내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이 큰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광야 40년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도우시고 보호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초막절은 나중에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건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로 연결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맥추절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것을 감사하는 절기로, 이것은 신약시대의 성령강림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교회가 지키는 모든 절기들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의 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개신교의 역사를 통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피의 여왕이라 불리는 사악한 메리 여왕은 개신교를 탄압하기 시작하는데 런던 서쪽에 있었던 사형장은 개신교 신도들의 처형당하는 것으로 매일 피의 강을 이루었고, 인육을 태우는 연기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5년간의 무서운 탄압 속에서 마침내 메리여왕은 요절하고, 숨어있던 엘리자벳이 나타나면서 1558년에 처녀의 몸으로 왕위에 올랐고, 이 엘리자벳 1세가 영국의 피의 종교전쟁을 끝내고 종교를 통일시키고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종교중립을 표방하였고, 이 때 경건한 사람들이 신앙의 순결과 예배의식의 개혁을 주장하며 청교도 운동을 일으킴으로, 한 때는 장로교회의 황금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청교도들은 정치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일부가 영국을 떠나 화란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신앙의 일치와 자유를 추구했지만, 여기서도 신앙의 일치를 보지 못하자 11년 후에 일부의 청교도들이 신천지인 아메리카로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620년 9월 16일 브류터스를 지도자로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네델란드의 암스텔담 항구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2개월 만에 아메리카의 동북부의 프리마우스에 도착하였는데 그 날이 1620년 11월 21일이었습니다. 3.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날씨는 곧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이 시작되었고 식량도 바닥이 나고 그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고 합니다. 혹한을 이기고 봄을 맞이하기 까지 무려 44명이 사망하였고, 반수가 약간 넘는 불과 58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기아와 영양실조로 대다수가 폐결핵에 걸렸고, 사람이 죽어도 인디안들 에게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추기 위해 몰래 장례식을 치러야 했고, 그러면서도 통나무를 잘라 먼저 예배당을 지은 후에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이듬해 가을에 농사의 첫 수확을 거두고 주변의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그 은혜를 즐겼다고 합니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대통령이 독립전쟁의 승리와 헌법제정을 축하하면서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언하였고, 1941년에는 미국의회가 11월 넷째 목요일로 정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청교도들이 상륙한 프리마우스 언덕에는, “너희 조상들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 성취한 것들을 비겁하게 포기하지 말라”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 경건한 기독인들의 좌우명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11월 셋째주일로 통일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4. 세 번째로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피와 물을 쏟아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사죄의 은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통한 희생과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고, 그 분의 은혜가 오늘의 내가 존재하도록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요, 그의 은혜와 긍휼을 입지 않고는 아예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고 찬양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많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인물인 욥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곁을 떠나고 비난과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병들고 지치고 꺼져가는 생명 속에서도 그가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욥1:22)고 하면서,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23)했다고 했습니다. 욥의 인내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욥42:9)다는 것과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12)셨다는 것입니다. 욥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절망적인 상황을 이기고 나중에 갑절의 축복을 누렸는데 그 원인이 인내와 감사였습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도,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9:15)고 했지만, 정작 그의 복음을 위한 전도의 삶은 너무도 어렵고 비참하기까지 했습니다. 고후11:23-27절에서 그의 고난의 삶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28절에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 했으니, 그는 안팎으로 고난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많은 감사와 복음을 위한 희생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5. 하박국 선지자도 빈궁과 낙심 속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서조차 열매를 얻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은 전부 권력자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황 이였지만, 하박국은 그런 것을 보고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빈궁한 현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고, 비록 하나님의 역사가 더딜지라도 그의 의와 역사는 약속대로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했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도 보이지 않고 경제나 정치나 사회적으로 너무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은 물론이고 많은 교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울수록 더욱 구원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과 기도로 힘을 얻어 인내하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어렵다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의 은총에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늘 귀한 것으로 우리의 심령에 채우시는 믿음의 선물에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6.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하여 육신은 고통을 당하나, 내 영혼이 구원받았고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늘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는 이것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박해를 받아 지하묘지로 숨은 카타콤의 성도들이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그렇게 감사와 찬양에 넘쳤겠습니까? 구원의 감격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감사했고 기뻐하였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향해 내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의 힘,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뜨거운 감사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은 환경과 조건이 어떻게 변하던지 간에,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고, 사자 굴속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과연 어려운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늘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멈추지 않는 그 사람이야말로 믿음에서 성공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고, 더 많은 복 받을 기회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위로 나타나는 믿음, 곧 감사가, 기쁨이, 은혜가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날 때 그것이 참된 감사요, 기쁨이요,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줄 믿습니다. 7. 우리의 감사는 입술의 감사가 아닙니다. 의무적인 감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들과 비교하는 감사도 아닙니다. 바울은 빌4: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지극히 불안한 상황 속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과 조건도 능히 감사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지금의 환경이 좋아서 마음에 들고 만족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하나님은 은혜와 평강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런 감사가 도리어 고난당하고 있던 많은 성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었고, 그들은 고난으로 낙심하거나 연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주일로 다가오는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감사와 기쁨은 환경이나 조건이 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의 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매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헌신의 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우리의 감사가 교회의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고난 곳에서도 범사에 올리는 우리의 감사가 많은 성도들에게 힘과 소망을 주는 줄 믿습니다. 심령 속에서 울려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이 감사의 찬송이 일본도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적은 감사가 더 큰 감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이 감사를 통하여 우리가 영육 간에 더욱 풍성해지는 줄 믿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