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8.【3】가지 감사(시편 50:14-15,22-23)
[성경본문] 시편50:14-15개역개정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3가지 감사(시편 50:14-15,22-23/2012.11.18.오전) 1. 지난 11월 16일 오후 3시 50분에 헌법 7조에 의해 일본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3년 남짓에 걸친 민주당 정권은 사실상 붕괴되고, 정당들이 이합집산 하는 가운데 12월16일의 선거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중의원 해산이나 선거니 요란스럽지만 정작 일본의 장래를 안심하고 맡길 만한 정당이나 구심점을 가진 인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국가의 경영에 위기가 오면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서민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고 있으면서 다른 것이 많은데 그 중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살기가 어려워지고 돈에 궁하면 무조건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대통령을 욕하고 재벌이나 힘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30년 이상을 살면서도 그런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비록 정치하는 사람들이 죽을 쒀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심중에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려우면 나 한 사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두 어렵고, 정치하는 사람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어렵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더 힘들고 괴로운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남들에게 미소와 밝은 대화를 통해 힘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있다가 선거철에 한 표를 가지고 정권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다음 주로 다가온 교회 28주년을 생각하면서 올 한 해도 그렇지만 28년 동안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마땅이 드려야 할 감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2. 그것은 첫째로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알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고 하였고, 계속해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고 했습니다. 과거 우리는 연약하고 힘이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서 심판받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불경건한 자들이었고,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우리의 것으로 돌렸던 죄인 중의 괴수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이웃을 향해 사랑과 은혜를 베풀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상처와 고통을 주고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짐승보다 못하고 벌레 보다 못한 이 죄 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연약하고 불쌍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는 크고 놀랍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3. 두 번째로 우리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믿음의 공동체인 오사카중앙교회를 28년 동안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28년의 세월은 참으로 힘들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이어온 것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으로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양육받음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제 몸처럼 사랑하는 헌신적 신앙에 대한 감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어려운 선교지역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선교사역에 지원할 수 있었던 축복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기도 중에 믿음으로 낳아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양육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한 감사는 이미 교회가 25년 주년을 맞이하면서 신명기 8:1-6절의 말씀을 가지고 “광야길 25년”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3년간의 세월은 갈수록 형극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목자되신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고 했습니다. 교회가 걸어온 길이 영광의 길이었든지 광야 길이었던지 분명한 것은 우리 혼자서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동행 해 주신 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나온 세월이 헛되지 아니하고 걸어온 발자국 마다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2012년이라는 올 한 해를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가 믿음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온 한 해는 내 힘으로 산 세월이 아니라 목자 되신 주님이 이끌어 주신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이 고난에 대한 태도를 욥의 인내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그리고 말씀공부에서 욥기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와 기쁨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순간적인 쾌락은 있어도 참 기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일시적인 즐거움은 있을지몰라도 참 평안은 누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감사가 사라졌고,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은 있어도 감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 때 이 감사는 축복받은 신앙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이 감사는 살아있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감사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축복된 미래를 여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6. 시편기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사를 회복해야만 하는 시대적인 당위성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미 2천년 전에 사도바울이 타고 로마로 가던 알렉산드리아 호가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배의 모든 소유물을 바다에 던져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만이라도 건지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들은 여러 날을 캄캄한 가운데 바람과 풍랑 속에서 모두 죽음의 공포 속에 떨고 있을 때, 그 때 사도바울이 저들에게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면서,“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행27:21- 22)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통과 절망 중에 들려온 복음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가 맹렬한 기세로 배를 엄습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 한 사람도 죽지 않고 276명이 다 살 수 있다고 하는 이 확신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것은 바울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바울의 하나님이 간밤에 그에게 나타나서 계시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유라굴로라는 폭풍 속에서 절망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밤에 주님이 주신 환상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한가지로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7. 그렇다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누가 살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람들뿐입니다. 그것은 어떤 환란과 고난 속에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를 만나도 문제에 빠지지 아니하고, 그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꿰뚫어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이 그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창45:8)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만난 고난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바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에 노예로 팔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우리 아비 야곱의 온 식구를 구원하시고, 온 땅의 기근에서 만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셨고, 애급의 치리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난과 우리의 현실은 결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큰 뜻을 이루시는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8. 바울이 풍랑 속의 배 밑창에서 확신했듯이, 요셉이 애급의 감옥 속에서 확신하듯이, 우리는 이방 땅의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확신하는 줄 믿습니다. 이 땅 이 민족을 구원하라고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고, 28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자에게,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영광으로 충만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