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장성한 사람이 되라(고린도전서13:1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3:11개역개정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린도전서13:11/2012.1.1.오전)
1.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4,500여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고 현지인도 10만여 명이 희생된 후, 지난 12월 18일 미군의 철수로 9년 가까운 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사라진 이라크는 종파간의 분쟁으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대량학살과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사담 후세인이었습니다.
그의 철권통치는 많은 사람들을 파리 목숨처럼 죽였지만, 묘하게도 결코 그가 죽이지도 못하고 대항할 수도 없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퀴벌레였다고 합니다.
태국 출신의 가정부 증언에 의하면 후세인은 바퀴벌레가 방에서 기어 나오면 어김없이 비명을 지르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자국 국민의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으면서도 바퀴벌레에 대한 협오와 강박관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바퀴벌레가 나오면 귀뚜라미를 보듯이 담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리퍼를 벗어 때려잡아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고, 뱀을 보듯이 소름이 돋는 사람도 있습니다.
년 초부터 왜 바퀴벌레 이야기인가 하면, 길거리에 나가보면 오고 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훌륭해 보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의외로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으며,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과 대응력을 가진 반면에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연약하고 소심하고 후세인처럼 아주 작은 일에도 패닉 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도 남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으며,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한 방에 모든 것이 무너질 만한 아킬레스건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2. 올해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지난 한 해의 경우를 돌아보면, 교회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오던 사람들이 대수롭잖은 말 한 마디에 시험들고 흔들려서 교회를 떠나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혼자서 몰래 신음하다가 그냥 무너져 내린 채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듣기 싫은 말 한마디나 어쩌다 잘못된 행동에 무너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간에 쌓이고 쌓인 감정이나 중압감에 눌린 것들이 어느 날 사소한 문제로 인해 폭발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아직 훈련을 통해 거듭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소위 성인아이의 모습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아이란 육신은 어른처럼 변했지만 그 내면세계의 인격과 생각의 수준은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훈련입니다.
자신의 잠자리나 사물을 정돈하는 것도 훌륭한 성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훈련입니다.
어릴 때부터 인사 잘 하는 것도 인격의 훈련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하게 보이는 삶의 일부분들이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채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사회생활 자체가 고통입니다.
한 마디로 육체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 육체 내면의 세계에 자리잡은 자아는 아직도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3. 요즘 일본에서는 회사를 1-2년 다니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우체국이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서비스를 하는데 결혼하면서 상대방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7년 후에 배달해 준다고 합니다.
결혼 생활 7년 쯤 하면 권태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때 첫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자의 말이 일본에서는 7년이 너무 길고 3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사이에 이미 이혼을 하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똑같은 것을 두 번째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데, 처음 차는 5-6년을 타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 타고 있는 차는 벌써 타이어가 3번 펑크 나고 말았습니다.
구입한 지 3개월 만에 고속도로에서 펑크가 나서 죽는 줄 알 정도로 자동차는 대파했지만 저희 부부는 전연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세상은 물건만 불량품이 아니라 훈련되지 못한 성인아이들이 세상 한가운데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4. 본문의 말씀을 보면 단 한 구절의 말씀 속에「어린아이」라는 단어가 무려 4번씩 등장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어렸을 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고, 느끼는 것도 어린아이 같고,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아직 단순하고 유치하고 미숙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완전한 사람들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종교 등의 영역에서 주인노릇을 한다고 하면 그 사회는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면 당연히 어린아이 때의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인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은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랑의 장이라고 불리웁니다.
어느 노래 가사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했지만, 그것으로는 참 사랑을 결단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장에서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13장의 4-7절까지의 말씀을 반대로 뒤집어 놓으면 어린아이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지만 어린아이는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온유하다고 했지만 어린아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는 질투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며 교만합니다.
어린아이는 함부로 행하며 자기 자신만 알고, 화를 잘 내며, 불의와 진리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왜 이 모양입니까?
어린아이에게 있어서의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도 결혼을 해도 받는 것만 원하고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5. 그러나 이런 어린아이라도 어머니의 품 안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아직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세상 가운데로 나가게 된다면, 이 어린아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도 어린아이의 시절에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어린아이의 이 모든 것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장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어린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었지만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지상 교회 안에는 육체는 장성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 내면 세계는 아직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소위 성인아이들이 많다는 의미 입니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부분적으로 알고 생각과 행동이 유치하고 단순하면서도 정작 고집은 세다면 교회는 분쟁과 시험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가장 많이 성장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갓난아이는 병치레를 하면서 성장합니다.
청소년이 되어서는 버리면서 떠나면서 성장합니다.
기어 다닐 때에는 집 안에 전부 인줄 알았는데, 모친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는 동네 공원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학교에서 인정받으면 영웅이 되는 줄 알았는데 자랄수록 점점 더 큰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큰 세계가 보일 때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머물렀던 장소를 떠나기 마련이고 지금까지 소유했던 것들을 버리면서 더 큰 세계로 더 가치 있는 것을 지양하기 마련입니다.
 
6. 성인이나 어린아이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사랑을 떠나 살 수 없고,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욕심을 부리고, 성인이 되면 될수록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한편으로 남다른 특별한 사랑을 꿈꾸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사랑을 받은 만큼 베풀 줄도 알지만, 어린아이와 성인아이는 사랑을 받기만 하고 주는 데는 매우 인색하며 받는 일에도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사랑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가장 아름답고 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나의 죄와 허물과 모든 약함을 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이 사랑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오늘까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고 오늘에 이른 줄 믿습니다.
과연 우리가 오늘 여기에 이른 것도 내 스스로의 힘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2012년 1월 1일이라는 새로운 시간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가 새로 시작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7.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면서,「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일요3:16,18)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셨고,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은 사랑을 받기만 원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장성한 사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면 우리는 주님 닮아가는 사랑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하지만 장성한 사람, 성인된 사람은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사랑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 능력으로 행하게 하며,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