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25.예수 그리스도의 피(출애굽기12:21-28)

[성경본문] 출애굽기12:21-28개역개정

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 그리스도의 피(출애굽기12:21-28/2012.3.25.오전)
1.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지키는 명절로서는 가장 오래된 절기로 약 3,500여 년의 세월을 내려오면서 기념하고 있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의 내력을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가나안의 유목민으로 살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기원전 1875년경에 요셉을 따라 애굽에 이주하게 되었고, 많은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힉소스 왕조에 이르러서는, 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히브리 사람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자 그들을 노예로 삼고 탄압하기 시작했고, 고통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서 그 땅에 10가지의 재앙으로 징계하시고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짐승이나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집안의 모든 장자들에게 임하는 죽음의 재앙이 애굽 온 땅에 임하기 직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한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1월14일에 가족 단위로 양을 잡아 고기는 불에 구워 무교병과 함께 먹고 그 피는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보호함을 받게 한 것입니다.
애굽 땅의 온 집안에서 장자들의 죽음으로 통곡소리가 들릴 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가정들은 죽음의 재앙이 그 집을 넘어감으로 장자들이 보호됨으로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지 않으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이 10번째 재앙에는 두 손을 들고 그들의 해방을 허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은 노예생활의 고난을 기억하고 출애굽에 감사하며 장차 올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면서 지금도 이 예식을 가장 귀한 행사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동의 회교도들에게 둘러싸인 손바닥만한 나라가 지금까지 수 없는 전쟁에서 싸워 이기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유월절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신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도 이 유월절을 귀하게 여기고 어린 시절부터 기념하셨고, 그리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과 십자가의 죽으심도 이 유월절 기간 중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만민을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이미 애굽에서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의 구원과 출애굽을 위하여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당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출애굽 당시의 사람들이나 오늘 우리들과 미래의 사람들도 사람의 공로나 어떤 힘으로나, 혹은 양이라는 짐승의 피를 통해 구원받고 죄 용서 받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속죄의 어린양으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통해 출애굽하고 구원받고 죄 용서를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2. 지금도 하나님의 소원은 만세 전부터 택한바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에서 저주와 고통에서 해방되어 참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로서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데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고통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죄를 대신하여 희생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형편과 구원받은 과정을 살펴보면서 구원받은 자의 축복과 감격을 다시 한 번 상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의 현주소는 애굽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이요 죄로 말미암아 고통 하는 장소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출3:7절에,「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당한 고통이 무엇입니까?
유아를 학살하고 고역을 무겁게 하는 통치자 바로의 손길입니다.
애굽이란 곳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참된 예배를 금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곳입니다.
생명을 걸지 않으면 참된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암흑의 현주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은 히브리 민족인 이스라엘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죄와 고통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구속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출애굽의 사건은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생활을 계속하며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예배를 방해하는 그 어떤 환경과 조건이라도 그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고 축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온전하고 풍성한 축복은 온전한 예배를 통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배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가 자유롭고 그리고 바른 예배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환경과 주어진 조건을 핑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하나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이면서 살았습니다.
신앙을 지킬 수 없는 환경,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어버릴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어느 것 하나 양보하지 않았더니 하나님은 도리어 그를 크게 축복하셨고, 임금과 백성들의 가장 신뢰하고 존경받는 능력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페르시아의 포로로 끌려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히브리민족의 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자기 민족의 생명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해 냈습니다.
이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정치적인 수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하나님 중심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인한 능력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자신의 혈육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기근에서 구하는 세계적인 총리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스스로는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도리어 더 큰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창출해 내었습니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도 자기 나라 이상으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환경과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결과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도 걸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던지 오직 하나님의 약속하신 언약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출6:5절에,「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하였으니, 이것은 우리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과 그 약속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백성은 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언약으로 붙잡느냐 아니냐에 모든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을 붙잡지 못하고 출애굽한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는 기적은 맛보았지만,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닫고 붙잡는 것인 줄 믿습니다.

5. 문제는 언약을 깨닫고 그 언약을 붙잡은 사람이 어떻게 출애굽 할 수 있습니까?
22절에 기록된 대로 양의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왜 양의 피를 발라야 합니까?
피는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인간이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피를 흘려 죽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양의 피가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들과 우리와 오는 후손들의 모든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요14:6절에,「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으니 이것은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집의 모양이나 가치나 혹은 위치가 아닙니다.
그 집의 문설주에 뿌려진 희생양의 피를 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궁궐 같은 집이라도 양의 피가 없으면 죽음의 저주가 임하고,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라도 그곳에 양의 피가 있으면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 집안에는 누가 있어도 관계없습니다.
히브리인이든지 애굽인이든지 다른 이방인이든지 관계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집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피를 발랐는가가 중요합니다.
일본은 사단의 역사가 왕성한 곳입니다.
교오토의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에 가보면 그 안에 1천 개의 불상이 놓여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일본의 영적 현실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사업도 하고 자녀도 교육하면서 살기로 작정했다면, 반드시 그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본 선교하겠다고 하면 일본 선교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 말해 줍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일본복음화를 위해 사용하시려고 이곳에 불러 주셨는데, 우리가 다른 곳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 마귀의 종노릇이나 하고 마귀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6. 누가 축복받을 사람이요 누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입니까?
삼상 16:7절에,「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즉 사람의 인격 속에 그 심령 속에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세상 적으로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여호와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사울에게는 늘 악신이 찾아와서 그를 번뇌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찾아다니면서 행하다가 나중에는 온 가문이 저주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왕국을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주셨고, 마침내 그의 가문을 통해 영원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를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구원이 임했습니다.
애굽이 10가지 재앙으로 국토가 쑥밭이 되어버렸지만 이스라엘은 출애굽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그 다음 날 아침 이스라엘은 꿈에도 그리던 해방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구원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완악하고 강퍅한 바로의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순간적으로 체험되어지는 줄 믿습니다.
결코 어떤 인가의 공로나 수고나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즉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이루어졌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7.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피를 바를 때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애굽 전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자 이번에는 죽음의 재앙이 온 국토를 뒤 덮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모든 애굽의 집에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서 모든 장남과 짐승의 첫 태생까지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애굽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져갈 때,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은 시작되었습니다.
한 쪽은 무너져 내리는데 다른 한쪽은 해방과 자유와 축복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저주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인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의 길을 가게 하려면, 부모가 자녀들의 영적 인방에도 피를 발라야 합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면 이 시간에도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가정의 인방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면 그 가정은 하나님이 모든 환란과 유혹과 고통에서 건지시고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8.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피를 바를 때 예배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27절에,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소원대로 예배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참 자유와 진정한 행복의 조건을 무엇으로 측량해야 합니까?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자유롭게 우리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귀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려고 때로는 노예 상태에서 신음하게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게 하고, 때로는 바쁘고 복잡하고 속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데 자유로운 그 심령은 진정한 축복을 누리고 있는 증거입니다.
자녀들과 함께 둘러앉아 가정예배를 드리고 식사기도를 함께 올리고, 잠자는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대고 부모가 축복기도를 올린다면 이 가정은 제대로 된 가정이요 복 받은 가정인 줄 믿습니다.

9.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피를 바를 때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꿈에도 그리던 해방과 자유를 맛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힘있게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물뿐만이 아니라, 애굽 인들이 스스로 내 놓은 보화들을 가지고 약속의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역사를 의미합니다.
양의 피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알고 자신의 심령과 가정에 바른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은 곧 새로운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른 사람들의 앞길에는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 길을 내면서 나아갔습니다.
목이 마를 때에는 반석에서 물을 내었고, 하늘에서는 만나가 비같이 내림으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았으며, 바람을 타고 나라온 메추라기 떼로 저들의 배를 불렸습니다.
사막의 낮은 무더웠고 밤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였지만,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극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마침내 하나님의 성전인 성막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집을 중심으로 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0. 죄는 사람을 고통하게 만들고, 온갖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만들고 나중에는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살리되 영원히 살리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 되었던 우리 모두를 영원히 살리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의 영과 육신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고, 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며, 왜 가정에서 말씀과 기도로 본을 보이지 않습니까?
요한일서1:7절에,「그 아들 예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줄 믿고, 가정에도 자녀들에게도 우리의 심령의 인방에도 예수의 피를 발라 모든 재앙과 환란과 죄가 주는 죽음에서 구원받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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