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5.임마누엘(마태복음1:18-25)
[성경본문] 마태복음1:18-25개역개정
18.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임마누엘(마태복음1:18-25/2011.12.25.오전)
1.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자신의 글에서 밝히기를「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야 만했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록하기를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서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죄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자들은 죄와 악과 사탄의 권세가 너무 엄청나서 인간이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만 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하면서,「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실상을 이해하며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도 자신에게 닥쳐온 큰 문제점에 대하여 심각한 혼란과 고민 속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온전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 고민하고 혼란 가운데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요셉과 유사한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당면한 많은 문제들이 어디서 왔으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대부분의 문제들을 급한 마음에 감정에 이끌리는 데로 처리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림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으며, 이 땅에 오신 그 분을 통해서 내 삶과 생명에 일어난 큰 변화를 깨닫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며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에 이루어 나가는 축복된 삶을 살고자 합니다.
2. 그렇다면 제일 먼저 요셉이 만난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보면, 혼인하기로 약정을 하는 약혼식을 하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되었지만 그로부터 1년을 기다렸다가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옴으로 정식 부부가 된다고 합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바로 이 1년을 기다리는 기간 중에 일어난 문제였습니다.
마리아와 혼인을 약속했지만 아직 육체적인 접촉이 없이 각각 독신처럼 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마리아가 임신을 하고 만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결혼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고, 만일 자신의 딸이 이방인과 결혼을 하면 그 딸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식을 치룬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여도 자식을 낳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으며, 만일에 남의 자식을 가진 아내를 데리고 오면 평생에 수치를 씻지 못한다고 합니다.
요셉은 이런 상황 속에서 마리아가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자신에게 이 같은 큰 수치를 주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정결하고 온전한 여인이라고 믿었던 마리아의 배신에 요셉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유대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는데 결혼을 앞두고 치명타를 맞은 것입니다.
이 일은 요셉뿐만이 아니라 마리아에게도 마찬가지로 치명타였습니다.
결혼 생활도 하기 전에 요셉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동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로 죽임을 당할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본문에 보니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은 그가 죄와는 상관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자, 곧 말씀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자란 뜻입니다.
문제는 이 의로운 사람 요셉이 고민하다가 결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리아와의 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기로 한 것입니다.
원래 부정한 여자는 율법에 돌로 쳐서 죽이도록 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어 법대로 심판을 받게 한다면 요셉으로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에게 수치와 인생의 큰 고통을 준 이 여자를 용서하기로 했고 그래서 이 일을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해결하려 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지만 자신을 배신한 여인을 향하여 율법의 칼로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으로 그녀를 용서하고 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뜻 생각하기를, 요셉이 이 수치스러운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은밀하게 해결함으로 마리아를 살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이런 행동을 통해 그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의도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요셉은 원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 일을 은혜롭고 처리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이끌고 의로운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입어 의로운 자가 되었기 때문에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빠진 마리아를 배려하는 요셉의 의로움이나 지혜로움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요셉을 구원하고 그를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요 은총이요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4. 본문 20절에,「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는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왜냐면 우리도 당면한 문제들이 있고, 우리를 아프게 만들고 고민 속에 빠뜨리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이 일을 생각할 때에」라는 말씀에서, 우리 자신들의 문제들을 놓고 시간을 걸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요셉이 마리아를 부정한 여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는 결단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고,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천사가 나타나서「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말라」고 했겠습니까?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말씀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매일 당면하는 많은 문제들을 앞에 놓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며 말씀에 비추어 바른 결론을 내리려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율법적인 의로움, 곧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켜야만 하는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놓고 고민하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에게 큰 고통을 준 마리아였지만 그녀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일시적인 감정이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문제와 고통을 앞에 놓고 요셉처럼 이같은 신앙적인 사고, 이런 신앙적 삶을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가질 부분은 요셉이 신앙인으로 갈등하고 고민한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5. 요셉은 나름대로 자신의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그 결단은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내린 결단, 의로운 사람으로서 내린 결단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그것보다도 더 좋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새로운 길이 무엇입니까?
너의 아내인 마리아를 데려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기도하던 요셉에게는 너무나도 의외였습니다.
백 번 양보한다고 하여도 결코 마리아를 데려 올 수 없기 때문에 요셉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고민했는데, 하나님의 답은 간단히 마리아를 데려 오라고 하십니다.
과연 이것이 요셉이 원하는 답입니까?
과연 이것이 요셉을 사랑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새 길, 새 방법, 새로운 대책이라면 지금하고는 전연 다른 길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것도 가장 간단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부정한 여자인 이 마리아를 요셉의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합니까?
그것은「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잉태되었다는 이 말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토록 고민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던 이 사건이, 사람으로 인한 어떤 사고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스스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어떤 부정한 행위를 통해 생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고 계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러나 문제는 요셉의 태도입니다.
그의 마음, 그의 생각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24절에,「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은 요셉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그가 자신의 결단을 다 내려놓고 마리아를 데려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23절의 말씀으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여기 임마누엘이라는 말씀은 내용적으로 보면 성경 많은 부분에 나타나고 있지만,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본문 이외에 이사야서의 7:14절과 8:8-10절에서 두 번 등장할 뿐이고, 이것도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과 관련해서 언급된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이 말씀에 감동받아 도무지 내릴 수 없었던 결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으며, 염려하고 낙심하고 고민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내를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몸에서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놀랍고 두려운 사건이었지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1:37)는 말씀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에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와 이 요셉에게 일어난 이 사건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일어난 일이요, 이 일이 곧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오랫동안 고민하며 내렸던 결정을 내려놓고,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요셉 자신과 마리아를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7. 오늘날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늘 나 혼자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거나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임마누엘의 삶인지 알지 못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은 흔들리며 잘못된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만 합니까?
그분의 임마누엘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면서 우리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 바른 길로 나아가고 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삶을 통해 많은 영광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모범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분에게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더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1절에,「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신앙은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21절에서「자기 백성」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마16:18절에서 그것이 곧 교회임을 나타내셨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임마누엘이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인 28:20절에서 인을 치듯이 다시 증거되고 있으니「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가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8.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긴 요셉이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목수 출신에 불과한 이 요셉이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그 언약을 따라 자신이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짧은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많이 고민하셨고 통곡하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오죽하면 제자들에게「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26:38)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모든 수욕과 아픔을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십자가는 저주의 십자가가 아니라 은혜의 십자가요 구원의 십자가이며, 그 분의 생애는 우리의 모범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신앙이란 주께로 받은 사명, 곧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 되도록 복음의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거나 분리된 채로 방치하는 모든 것은 죄가 되며 사명자의 불충이라는 사실입니다.
9. 성탄절은 임마누엘의 새 시대를 여는 계절입니다.
성탄과 연말연시의 흥청거리는 이 도심 속에도 요셉처럼 고민하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 고민하다 죽어가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로 이곳에 주님은 우리 모두를 함께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그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의 빛을 비추는 임마누엘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