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7.마음이 지혜로운 자(출애굽기 36:1-7)
[성경본문] 출애굽기36:1-7개역개정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
3.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4.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5.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출애굽기 36:1-7/2011.11.27.오전)
1. 하나님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가르치신 후에,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막은 오늘날로 하면 성전에 해당합니다.
성막은 유목민이나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출애굽 시대의 성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브라함과 족장 시대에는 가는 곳 마다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고, 광야에서는 성막을, 솔로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건축물로서의 성전이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자연 만큼 더 좋은 환경은 없을 것입니다.
사방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채로 예배해야 하는 한정된 장소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 속에서의 예배는 어떤 의미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더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에게 과연 성전은 꼭 필요한 것인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 것」(출29:43)이라는 말씀으로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성전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성전이 없었고, 성막도 없었던 시대에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렘23:24)다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도망가다가 벧엘이라는 전연 낮선 곳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같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하나님을 통해서 나그네 20년 세월을 보낸 후에 큰 부자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니 성전이 없다고 해서, 건축을 하지 못한다고 하나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요,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도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에 이르기 까지 세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내용으로 성전에 해당하는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더 좋은 건축물로 성전을 지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다가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1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헛된 일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실패나 후회 또한 전연 없는 전능하시고 온전하신 분이란 말씀입니다.
그 분의 생각, 계획은 반드시 성취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광야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고, 다윗과 솔로몬에게는 성전건축의 사명을 주셨습니까?
3.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브사렐과 오홀리압 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아주 특별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다시 설명하기를「지혜와 총명」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는 지혜와 영지, 신개역에는 지혜와 영지라고 했는데, 구개역에는 지혜와 깨달음이라고 했습니다.
한글 성경에서의 총명은 구별한다, 이해한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교회에서 목회를 27년간 시무하면서 느낀 것은 그의 대부분의 경우에 교인들은 의외로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앞서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나옵니다. 자가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미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 문제나 사건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감정을 앞세웁니까?
지금 신앙생활이 감정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말씀을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먼저 배우고 깨달아 알게 되면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성령님의 도움을 통해 내 감정을 죽이다보면 나는 새사람으로 변화가 되는데, 항상 말씀보다는 감정을 먼저 앞세우다 보니 아주 작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내가 흔들리면 하나님도 흔들리고 천국까지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켜 지혜롭지 못한 사람,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잠시 잠깐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어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신실한 일꾼이 될 수 없으며 언제 어디서 관계가 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교회의 지도자로 착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아르바이트라고 부릅니다.
아르바이트는 연금도 의료보험도 노조가입도 아무런 혜택도 없습니다.
그저 시간만큼 일한 대가만 받으면 그만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막을 위해서 부른 사람들이 바로 「마음이 지혜로운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런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면, 36장에서 3번씩이 반복하고 있고, 35장 끝에서도 같은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브사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수많은 충성된 일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지혜로운 마음이 어디서 왔습니까?
1절에 보니「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셨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시는 일꾼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의 일부를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일꾼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명령에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성막을 짓는데 성막만 덜렁 세우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많은 거룩한 물건들과 장식이며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쓰임 받는 거룩한 도구란 사람의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만들거나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지난 토요일 갑자가 컴퓨터가 고장이 났고, 재생불능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고생을 했고, 귀중한 데이터를 많이 잃고 말았습니다.
비싼 희생을 치루고 나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은 새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제 실력으로는 정상적인 컴퓨터는 다룰 수 있지만 문제만난 것은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6.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지혜와 총명」이란 말씀은 사실로 말하면 그들에게 능력을 베푸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전문적인 능력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텔레비전나 신문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종이 한 장, 빈 병 하나, 헌 옷가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리사이클을 하는데 사람들을 놀라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좁은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지혜를, 어떤 사람들은 좁은 땅에 효율적인 공간을 가진 집을 설계하는데 한마디로 건축이 아니라 예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시대에는 이런 지혜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귀합니까?
저들은 아무리 복잡한 일도,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도 문제없이 풀어 나갔는데, 왜 우리는 일도 못하면서 시험에는 잘 넘어지고 있습니까?
7. 그 답이 2절에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하나님의 일꾼이란 마음에 스스로 자원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쁘게 여기고 자신을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에 대한 열망,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 주어지고, 임무가 부여되었을 때 벅찬 감정으로 가슴에 충만해야 합니다.
흔히 보면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으면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은 아예 온데간데없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조건 좋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면 희생하면서도 마음이 기쁘고 힘든 것도 힘든 줄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래야 합니다.
이번 행사에 오신 오카리나 단장님은 자비량 전도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요리를 만들어 온 세상 사람들 다 대접하고 천국 가시려고 작정을 하신 것처럼 그렇게 남 대접하고 전도하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오카리나에 모이는 단원들도 그런 마음에 자비량으로 오셨습니다.
신실한 복음의 일꾼의 특징은 능력도 있지만 더 귀한 것은 충성된 마음에 있는 줄 믿습니다.
8. 교회 일은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잔꾀나 부리고 핑계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면 반드시 시험 들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마귀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일을 해도 기쁨이 없기 때문이고 보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받은 지혜와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신이 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재미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일하는 곳에는 축복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막 짓는 일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물건들을 가져와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나중에는 그만 가져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런 열심을 주님 섬기는 일과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오늘 본문처럼 넘치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발적으로 해야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성막을 짓는 일이고, 오늘날로 하면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이 지혜로운 사람들, 하나님께 능력을 받은 이 사람들이 성막을 세우는 일을 통하여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 한 가지를 얻게 됩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데로, 왜 하나님이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나 하는 사실입니다.
일본 신화에, 아마데라스 신이 일본 천황에게 3가지의 신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칼, 보석, 거울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보물로 보관되어 있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자기 백성들에게 4가지의 중요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심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는 성경 말씀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른 길을 걷도록 하셨습니다.
셋째는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믿는 자를 보호 하시고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넷째가 축복의 도구로 성도들에게 교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9. 제가 목회를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교회는 물론 하나님의 몸된 성전이지만 분명한 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신 것은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기 위한 장소로서 수단으로 삼으셨지만, 우리에게 있어 더 중요한 사실은 성전 건축을 통하여 주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 피 흘려 죽으신 그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값을 수 있는 헌신의 기회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에게 자기 재물과 시간과 몸과 간을 아낌없이 희생시킵니다.
도박 좋아하는 사람은, 이번에 일본의 제지 회사의 창업주 아들이 도박판에 100억 엔이 넘는 회사 돈을 빼서 도박판에 헌납하고도 당연히 할 일을 다 했다는 그런 표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 짓는 일에, 자기 인생을 망치는 일에 마치 여름의 불나방처럼 그렇게 제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데, 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사랑이 사랑의 불꽃은 피우지 못하고 연기만 내고 있으며, 죽으면 천국 간다는 사람들이 돈 떨어지고 어려운 일 만나면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낙심합니까?
교회가 선민을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 은혜의 산물인 줄 안다면 교회만 오면 신이나고, 교회 일만 하면 즐거울 것입니다.
왜? 정말 신나고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이 헌신할 수 있는 장소인 줄 믿습니다.
10. 둘째로 교회는 선민을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인 줄 믿습니다.
7절에「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성막을 세우기 위한 재료라는 것이 시장에서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6절에 보니 스스로의 손으로 수고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극 정성을 다하여 온 백성들이 수고하였고, 그 수고가 나중에는 쓰기에도 남아넘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 사람들이 넘치도록 수고합니까?
이 일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값아 주시고 채워주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큰 능력을 베푸시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국회 의사당을 통해서 일하시기 보다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다 보면, 자아 중심의 인격이 그리스도 중심의 인격으로 변하고, 정욕과 감정에 묶인 삶이 변하여 축복의 중심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런 역사가 바로 사도행전 2장 42-45절에 나타났고, 오늘 우리 가운데도 그런 역사가 넘칠 줄 믿습니다.
11.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 백성을 축복하시기 위한 축복의 도구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섬겨 더 큰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누가 지혜와 총명으로 충만한 사람입니까?
주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리고 주신 사명에 감격하여 주님께 충성된 삶을 사는 것이 능력의 삶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교회야 말로 십자가 보혈로 갑주고 산 예수님의 몸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자녀들, 그리고 오고오는 후손들이 이 교회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능력의 기회가 이 교회를 통하여 주어지는 줄 믿고 받은 사명과 능력으로 축복의 시대를 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