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0.하나님이 주신 것(시편104:14-24)

[성경본문] 시편104:14-24개역개정

14.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5.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16.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17.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8.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19.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

20.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오나이다

21.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22.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들의 굴 속에 눕고

23.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24.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이 주신 것(시편104:14-24/2011.11.20.추수감사절)
1. 지난 주간에 부탄왕국의 국왕 부부가 일본의 국빈으로 방문했습니다.
31살의 국왕과 21살의 왕비는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난 달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겸해서 일본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인구 70만 명의 산간지방의 아주 작은 나라로 국민 대부분이 열심 있는 티벳 불교신자들이고, 이 국가의 주 수입원은 수력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이웃 나라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 가난한 나라, 별 볼일 없는 나라가 요즘 서방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21세기에 있어서 국가의 척도는 소위 국민 총생산이라고 하는 GNP에 있는데 이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는 국민총생산으로는 세계 161번째로 빈약한 나라이지만 GNH 즉 국민총행복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우등생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국왕은 이 GNH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경제성장보다는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는 그런 정책을 펼치고, 이런 것이 서방 세계의 관심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은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국가들이 GNP에 열을 올리면서 풍요로움과 편리함이라고 하는 것으로 온 국민의 욕망을 자극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일본을 포함하여 각국의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거짓선전에 속아, 그들이 빚잔치로 국민의 선심을 사는 사이에 많은 국가들이 빚더미위에 올라 앉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런 위태도록 상황에서, 가난하고 불편하고 너무도 작은 이 부탄왕국이 도리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가진 국가들은 잘 살고, 대부분의 불교국가나 이슬람 국가들은 가난하거나 독재자들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으로 알아 왔는데, 이 부탄이라는 국가는 불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서방 세계의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전 국왕 스스로가 권력을 국민에게 이양하고 입헌국주국을 민주국가로 만들어 아들이 국왕에 취임하면서 상원, 하원제를 실시함으로 절대적인 군주의 권한을 아낌없이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2.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은 세계 20개국으로 이루어진 선진국에 들어갔고, GNP도 세계 15위쯤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만큼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일본이 세계 3위의 GNP를 자랑하는 국가로 역시 그만큼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가 이 GNH라고 하는 총행복의 척도에서 얼마만큼 자유롭고 여유가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많은 신자들이 모이고, 교회의 재정이 넉넉하고, 교회는 유명 인사들로 넘치고 있는 그런 소위 1류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그분들의 신앙생활이나 삶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할 일이라고 봅니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 교회는 소박했고, 그 규모도 작았습니다.
심지어 197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의 신자 수는 이 백 수십만에 불과했고, 장안에 큰 교회라고 하면 수 백 명이 모이는 정도였고 대형교회도 천여 명 전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대형집회와 맞물려 엄청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면서 한국 교회는 순식간에 대형교회를 양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형화의 길을 걸어온 한국교회가 경제적 척도에서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는 몰라도,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도리어 메마르고 빈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일부의 현상에 불과하지만 젊은 신학도들이 빚을 얻어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의 일선에 서면서도 막대한 빚을 얻어 교회를 건축하거나 기성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하고 부임하는 이런 사태에 이르고 말았으니, 목회자의 삶이란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붙잡힌 능력의 종이 아니라 평생을 빚에 사로잡힌 경제동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과연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을 향한 향기로운 진정한 감사가 생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저는 몇 가지 감사할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5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올 해는 세례신자 한 명도 내지 못하고 넘어가는가 했는데, 성도님의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성도님 가정에서 생산한 쌀을 온 교인들과 이웃 시장 사람들에게 까지 맛있는 햅쌀을 싼 값에 공급하면서 교회가 쌀 풍년을 이룬 것입니다.
덕분에 교회도 저희 가정도 많은 쌀을 선물 받았는데, 이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사랑의 역사라는 생각에 너무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3일 딸아이의 결혼이 하나님의 은혜와 넘치는 축복 속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넘치는 감사가 있었고, 올 한 해가 너무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감사할 것은 내년이면 제가 일본선교사로 헌신한 지 만 30년이 됩니다.
많은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교회들의 도움을 입으면서,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목자되신 주님의 은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외롭고도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온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존귀와 능력과 은총에 감사하며 영광의 찬송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짐승들이나 가축조차도 사랑으로 돌아보시고, 그것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풍족함을 누리도록 하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4. 그런데 본문 전체에서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이 베푸신 흡족할 만한 은혜와 축복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에는 우리를 위하여 채소와 식물을 자라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기 위해서 포도주와 기름을, 삶을 지탱하도록 베푸시는 양식을 통하여 힘을 얻게 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이 너무 많으며, 너무 지혜로우시며, 너무 풍족하며 넘치도록 부요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에 대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한국에 김홍섭 판사님이 계셨는데, 언제나 재판 단상에 육법전서와 함께 성경을 함께 놓고 재판을 하는데, 재판 할 때 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인데 어쩌다 범관이 되어 당신을 재판하게 되었소. 나는 대한민국의 법에 의해 판결을 내리지만 그러나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니 낙심하지 마시고 부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식사를 하다가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데 이유는 그 날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고의 가족들의 너무 초라한 모습이 생각이 나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양식을 사서 피고의 가족에게 보내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도 크고 놀랍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 왜 평안이 없으며, 우리의 삶이 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말씀이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가 사라졌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지만, 우리는 썩는 밀 알 되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행복을 GNP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는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짐승이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어 나오고 있습니다.
밤은 짐승들에게 활동하는 기회를 주지만 사람들에게는 휴식하라고 주시는 시간인데,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소유를 위해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육체의 욕망을 위해서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짐승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며 그리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보면 우리는 잃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더 크고 놀라운 것으로 채워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게」하신 줄 믿습니다.
가난한 부탄 나라 사람들, 이 티벳 불교 신자들도 인간의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참 행복을 모른 채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이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주어진 사명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사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면 이것보다 불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6.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온 세상이 중국 끝자락에 붙은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부탄국가와 그 국민을 주목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이 신앙을 우리가 받은 축복 중의 축복인 줄 알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열방의 축복의 표본으로 삼으시며, 우리의 감사를 통해 많은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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