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20.두려움이 없는 세상(마태복음28:1-15)
[성경본문] 마태복음28:1-15개역개정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두려움이 없는 세상(마태복음28:1-15/2014.4.20.오전)
1. 지난 수요일 아침에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페리 전복 사고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325명의 남녀 학생들과 교사들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배를 탄 사람들 가운데 일반인들도 많지만, 그 가운데 200여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의 생사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학생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실시간에 전해지는 뉴스를 지켜보던 온 국민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고,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교회도 6명의 학생들이 이 배를 탔는데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소식이 없어 온 교회가 기도하는 가운데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자녀들을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시대인데, 그런 자식을 수학여행 길에 바다에서 잃어버렸으니 그 슬픔을 누가 위로 할 수 있으며, 그 고통과 절망감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구조 활동이 생각보다 지체되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실낱같은 희망으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점점 절망감으로 쌓여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는 이번 사고가 왜 고난주간과 그리고 부활 주일을 앞에 두고 일어났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이 귀한 생명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안타까워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물며 그 부모들과 유족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온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지금이라도 기적과 같이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한마디로 평안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번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은 그동안 자식 키우면서 당한 마음의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녀를 남다르게 올바로 키우려고 결심하면 할수록 그 고생은 커지는 법입니다.
사랑과 정성을 다하면 다할수록 부모는 더 많은 희생의 짐을 지기 마련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부모의 속을 썩이고 부모의 짐이 되어도, 막상 자식이 어딜 가면 부모는 염려가 되고 소식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이번 사고처럼 그 자녀의 생사를 알지 못할 때 부모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과연 이 부모들에게 무슨 평안이 있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평안이 없는 세상을 말할 때, 어찌 부모들만의 일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평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돈 때문에 평안을 잃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잘못된 인간관계가 밤낮으로 우리를 염려하게 만듭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물질이 우리를 고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미래나 잘못된 관계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우리의 죄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고통이 어디서 왔으며, 왜 낙원에서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죄가 두려움과 염려와 질병과 실패를 가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순종이 인류를 두려움 가운데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와 여인들을 만나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평안하라" 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첫 날 가장 기뻐해야할 첫 만남에서 평안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거듭 반복하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16: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하였습니다.
17:23절에도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고 하셨고,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많은 근심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20:18-19).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보다는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말과 경험을 더 믿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제자들은 "허탄한 말"(눅24:11) 로 들었고,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도무지 믿지 아니하"(막16:11)였습니다.
문제는 불신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고, 제자들을 염려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만난 천사의 첫 마디도 "무서워 말라" 고 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도 "무서워 말라" 는 것입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으스스한 무덤가에서 그것도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에 천사를 만났으니 여인들의 가슴이 놀랄 만도 하였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고 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4. 그러나 십자가의 사건과 본문의 흐름을 보면 일시적으로 나타난 불가사의한 현상 때문에 충격 받은 것을 가지고 놀라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국가를 반역한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으니, 이 사건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는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인하여 염려에 빠졌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새벽같이 찾아간 예수님의 무덤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도 시신이 사라지고 없어졌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인사가 "평안하뇨" 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일반적 인사였던 「카이레테」 로, 우리의 아침 인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인생의 보람과 기쁨과 소망은 잠시뿐이고, 평안이 없고 근심과 고통에 빠져 사는 세월이 몇 배나 길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입니까?
죄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죄가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고, 이 죄가 인간에게 오는 온갖 좋은 것을 다 빼앗아갔고, 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 갈라놓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은 당장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는 세상입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욥처럼 우리에게도 고난이 옵니다.
그래서 피땀 흘려 번 재물도 하루아침에 빼앗아 가고, 건강했던 육신이 하루아침에 질병이나 사고로 무너지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내 품에 있는 자식 까지도 빼앗아 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늘 슬프고 고통스럽고 허무하고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5.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참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의 첫 만남을 통해 평안을 먼저 말씀하신 것은, 평안을 잃고 두려움에 빠진 너희들에게 내가 평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저희들에게 평안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평안에 관해서는 이미 요한14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나의 평안"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침에 사람을 만나 안녕하십니까? 혹은 오하요 고자이마스 라고 인사하는 것은 평안을 비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상대방에게 평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너와 내가 서로 평안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단순한 희망사항 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여인들에게 평안을 선언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구하고 공급받는 그런 불완전한 평안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빼앗길 수도 없고 취소될 수도 없고,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평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성육신 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온전히 공급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기쁨과 평안을 얻은 이 여인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연락도 없을 때 부모는 두렵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며 "나 왔어", 이럴 때 지금까지 부모님들이 가졌던 온갖 잘못된 생각과 감정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안도감과 기쁨으로 충만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누리는 감정도 그랬을 것입니다.
십자가로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나셨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있으며, 이 보다 더 놀랄만한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불신으로 가득찬 세상이 여인들로부터,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을 빼앗아 가버리고, 죽음이 그 분을 감추고 말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다시 그 모습을 보이셨으니 어찌 두려움이 물러가지 않으며, 어찌 근심 걱정 불안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가 받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뵈올 때, 제자들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넘쳤지만, 무덤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도리어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서 군사들을 매수하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인생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속이는 자요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이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 믿으면 안심이 되고 믿으면 감사가 나오고 믿으면 평안이 임하는데, 문제는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얻었습니다.
첫째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들 가운데로 다시 옮기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무덤이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 가운데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대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시는 분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의 길로 나아가면 우리의 삶은 말씀대로 이루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는, 9절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부활 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일을 눈으로 목격하고 음성으로 듣고 예수님의 발까지 붙들고 경배할 정도로 그들은 확실한 증거를 얻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두려움이나 의심이나 슬픔도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8.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증거로 남았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증거하기를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3-8) 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부활의 사건을 제일 먼저 목격한 여자들의 이름과 무덤을 수직하던 사람들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을 정도로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말씀과 사도들의 증거에 이르기 까지 그 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 수 없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이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슬픔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어떤 사람도 새롭게 하며, 그 어떤 저주 받은 환경이나 문제에서도 넉넉히 구원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5) 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임한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9.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이번 페리호 침몰 사건이 왜 고난 주간 중에, 그것도 부활 주일을 앞에 두고 일어났으며, 그 사고를 통해서 왜 우리들의 수많은 어린 자녀들을 잃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고통과 슬픔이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가 부활 신앙, 부활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부활의 영광은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온 교회들이 기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구조작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연되고 있으며, 왜 일기는 불순하여 구조 작업을 방해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부활 신앙이 없다면 그 어떤 두려움도 물리 칠 수 없으며,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고통과 슬픔도 넘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함으로 재현하고, 부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면 재산이나 명예나 건강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을 잃은 슬픔과 두려움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왜나면 부활 신앙은 잃은 것보다 더 귀한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회복할 수 있으며,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잠시 잠간의 이별을 견디어 낼 수 있으며,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