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15.제자의 길(마태복음 28:16-20)

[성경본문] 마태복음28:16-20개역개정

16.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제자의 길(마태복음 28:16-20/2014.6.15.오전)

1. 한국에는 신실하고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주는 귀한 신앙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가운데 대의그룹 회장인 채의승 장로님은, 어린 시절부터, 첫째는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가 되고, 둘째는 큰 기업의 회장이 되고, 셋째는 자비로 교회를 100군데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서 기도하는데, 결국 회장도 되고 건국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도 되었는데, 마지막 세 번째 꿈인 교회건축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교수도 그만 두고, 대기업의 회장 자리도 내어 놓았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대학교 교수 자리 하나, 회장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든데, 이 분은 주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100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장마 비로 공장이 침수되었고, 다시 세운 천안 공장은 불이 나서 없어졌고, 손해 배상으로 물어야 하는 비용만도 엄청나서 더 이상 제기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채 장로님이 신용이 있어서 채권단 32명이 재기할 때 까지 돈 받을 권리를 미루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1999년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데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없어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장롱 속에서 5백만 원 청약 통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약하여 전액 추수 감사예물로 드렸습니다.

그 때부터 축복이 임하기 시작하는데 100억대의 부도난 돈은 돈도 아니었습니다.

외국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공장은 24시간 가동하고, 하나님은 추수감사의 예물의 수천 배의 축복을 주셨고,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만 천오백명이 넘고 하나님께 약속한 100개 교회 건축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2. 우리는 이런 살아 있는 간증을 들으면 감동이 되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동은 있어도 행함이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힘도 나고 없던 소망도 생기지만, 막상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행함이라는 적용이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인들 사이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래도 양심이 선한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실망하고 낙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위선자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며, 제자의 길은 더욱 어려운 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로서 복음의 길, 사명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 마태복음은 처음에 계보가 나오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들 가운데 오셨고, 33년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위대한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 복음을 유대인만이 아니라 온 세계 이방인에도 전하여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초청 범위를 확대하면서, 그 사명을 사도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 라는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자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복음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3.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서두에서 밝힌 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기 보다는 사명과 현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갈등과 고민으로 행복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의 말씀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마태복음을 끝내기 전에 본문에서 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본문 18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 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자가 만물의 통치자로서 하늘 보좌에 앉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에 대한 성취입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필연적으로 나타난 부활 사건을 통해 그 예언들이 성취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권세와 능력을 마귀가 온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유혹하는 약속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라(마4:8-10),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마귀가 약속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장 크고 높고 놀라운 영광을 얻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엡1:21-22절에 밝히기를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 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있어서나 땅에 있어서나,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4.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무후무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본은 복음화의 1%의 벽도 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된 복음의 사명자들이 자신의 고집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안되면 실망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낙심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고집과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회개의 말씀도 거부하고 그의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뜻이며 내 방법과 일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었고,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은 제 생각이나 욕심과 맞지 아니하면 모든 것을 잘라 버리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후배 목사님이 보내준 글이 있었는데, 어느 구약학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요즘 설교자들이 무엇을 설교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탁월한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여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진리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이 사람들은 청중을 끌어 모으고 큰 교회를 이루고 있지만, 과연 이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가? 그들의 메시지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사명자로서의 우리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제 가슴 속에 담아 둔 것을 쏟아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성경말씀으로 배워도 다른 말이 나오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감추인 내 나름대로의 고집과 욕심과 생각들을 다 쏟아버리지 아니하면 결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사명자의 길도 갈 수 없습니다.

5.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 속에서 우리가 머뭇거리고 갈등하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최고의 권위와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디로?

모든 민족을 향해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삶을 살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같은 말이지만, 이것은 내 힘과 생각대로는 안되는 일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며, 또한 그 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면 복음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너희는 가서" 라고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라는 말씀은 복음이 유대인이라는 틀에 갇혀서 예루살렘 한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이방인의 세계로 넓혀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사명자의 발걸음에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도우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르쳐서 제자 삼아 세례를 주는 이 일을 계속해서 전개해 나가는 동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도우심의 보증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는 순종해서 가면 나머지는 주님이 다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빌립 집사를 광야로 이끄신 성령께서 간디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하시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6. 행하지도 아니하고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이요 불순종입니다.

하다가 안 되고 실패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실패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인간이 아무리 힘을 써도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되고 안 되는 결과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그곳에서 가르치고 배운 것들을 지킬 수 있도록 제자된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자의 기본적 자세는 삶의 현장에서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의 목적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전도자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이 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도, 그 복음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상급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계시록을 쓰면서 서두가 강조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3) 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행함이 있는 살아 있는 신앙이요,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영적 싸움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사실을 가리켜 표현하기를,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1:6-7) 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말씀을 듣는 자도 배우는 자도 아니요, 오직 행함으로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줄 믿습니다.

7. 계속해서 19절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20절의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는 이 말씀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장면을 연상하도록 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구름 기둥은 사막에 내려 쬐는 태양 빛에서 보호를 받는 것이고, 밤이 되면 온도차이가 심하게 내려가는데 그런 추위에서 보호받는 것이 불기둥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 분의 인도와 보호하심의 상징입니다.

그 분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의 여정을 막을 자가 없었고,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언제까지 함께 했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까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끝 날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태복음의 시작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시작되었던 것처럼(마1:25), 예수님의 제자로서 받은바 사명을 다 하는 그날까지 변함없는 임마누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역사가 21세기 전도자들에게도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못하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으며, 열매가 부족하다고 근심할 이유도 없으며, 감사함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8. 주님이 이렇게 많은 것으로 제자된 사명자들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제자의 길이 쉬운 길이 아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세상일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은 사명대로 믿고 나아가면 가는 곳마다 주님의 예비하신 은혜와 능력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며, 말씀을 배운대로 가르치고 행하면 우리보다 더 훌륭한 또 다른 제자들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특히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제자의 길은 그런 의미에서 좁은 문, 좁은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지만, 일단 그 길로 나아가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약속하신 말씀대로 동행하시면서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계승되어진 이 복음의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복음의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소원합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