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16.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마태복음27:33-44)
[성경본문] 마태복음27:33-44개역개정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마태복음27:33-44/2014.3.16.오전)
1. 어릴 적에 동네 사람들이 개를 잡는데 밧줄을 개의 목에 걸어서 대문 밑에 난 구멍을 통해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그 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개의 모습에서 생명에 대한 애착과 함께 생명이기 때문에 맛 보아야 하는 고통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저 불쌍한 생각만 들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내 안에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생명이 갖는 희로애락과 그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 것 뿐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물론이고 한낱 미물이라도 제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고 하심으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은 생명이 소중한 만큼 제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 생명을 연장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그야말로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거짓말도 해야 하고, 남들과 싸우고 미워하고 모함도 하고 속이며 국가 간에는 전쟁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저렇게 밖에 못 사는가? 이런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에 묶이고 메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돈에 욕심이 나서 돈에 메이면 돈 밖에 모르는 인생이 됩니다.
도박에 미친 인생은 도박이 인생의 전부인 줄 착각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입니다.
이성에 메이고 성욕에 메이고 향락에 메이면 앞으로 남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무엇인가 옳지 못한 것에 한 번 메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꿈이 사라지고 미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도 그곳에 한 번 묶이면 모든 꿈이 사라집니다.
한마디로 노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노예에게는 꿈도 소망도 미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노예처럼 매여 버린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은 꿈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은 마음으로 살고, 그래서 온갖 몸부림을 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런 삶의 방식이 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원하는 것을 얻었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습니까?
만일 그렇다하여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한 방울의 물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음부의 불꽃 가운데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저들의 결과는 세상에서 제 생명을 사랑하면 사랑한 만큼, 제 생명을 소중이 여기면 소중히 여긴 만큼, 사람들은 더 많은 죄와 허물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제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잘못된 것에 영영 묶일 수도 없으며 우리를 사로잡을 그 어떤 힘이나 권세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순교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을 묶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에 대한 온갖 협박과 고통과 감언이설로도 묶이지 않았고 속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돈이나 향락이나 명예나 그 어떤 세상적인 보화에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또 다시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생에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메일 수 없으며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흔들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세상에 묶이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생명이 가치가 없거나 그것을 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명이 귀중한 만큼 그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짐승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우리도 생명이 귀중한 만큼 이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 생명을 사랑하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그 방법과 목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그 예수님을 향해 온갖 말로 비난하고 멸시하는 군중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는 나머지 예수님을 향해 던진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40) 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42) 고 하였고,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42) 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에 죽어가는 사람이 똑똑하고 잘난 사람입니까? 아니면 십자가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이 잘난 사람입니까?
당연히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불쌍하고 못나고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이 사람들보다 못난 인생이고 실패한 인생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이 일제의 압박 속에 신음하고 있을 때,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 독립도 보지 못하고 온갖 고초를 겪다가 목숨을 잃은 구국선열들이 망한 인생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희생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자유를 누리면서 잘사는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5.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이 사람들은 잘못된 가치관에 묶인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내려오면 우리가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는 바로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잘 먹고 잘 살고 원하는 대로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입니까?
한마디로 황제의 아들 정도의 행세를 해야 우리가 믿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했으며, 왜 십자가에서 고통과 저주의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당할 사망의 온갖 고통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이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마굿간에서 나셨고, 평생을 한 벌의 옷으로 만족하셨고(눅3:11),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고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모든 대적을 이기며, 실패도 없고 고통도 없이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원수가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보란 듯이 그곳에서 내려와야 하고, 뭔가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인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사람들은 교회라면 당연히 축복받고 성장하고 부흥하고, 온갖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야 그곳이 진정한 예수님의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만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요 성도의 모습입니까?
6. 우리가 예수님의 일생을 주목해 보면 그는 많은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 분을 통해 나타나는 수도 없는 기적과 능력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너무나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능력도 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시험 산에서 기도하실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40일을 굶주렸고 그 때 마귀가 나타나서 돌로 떡을 만들어 네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고 하시면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기도하실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이 검을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오자 칼을 들고 저항하는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마26:53) 고 하시면서,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은 전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순순히 붙잡혀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시면 서도 침묵하셨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가운데 계신 것은, 그 분이 너무 무능하고 못났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조롱하는 말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란 어떤 기적과 능력을 보고 체험한다고 믿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절대로 믿음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그들이 믿을 사람들도 아니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분이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의 말대로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죄의 세력에 사로 잡혀 온갖 저주와 고통 속에서 소망 없이 죽어가며 신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가난해지셨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능력이나 권세도 사용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무능한 존재로 보인 것은 우리를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이 멍텅구리 같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함께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었으니, 과연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소망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영적인 수준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요즘 보면 생각보다 교회 안에 가짜가 많고, 엉터리 같은 교회들이 많고, 밥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선교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결코 세상 때문에 메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꿈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하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주와 더불어 사는 것인 줄 믿습니다.
8. 본문 마지막 부분을 보면,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를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만일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통해 이 땅에 온 인간이라면, 그에게는 남을 구원할 그 어떤 능력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왔더라면 인류의 구원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를 주셨고, 바로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본문에서 매우 신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로, 십자가 밑에서 조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42) 는 이 말 그대로 그는 스스로를 구원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셨고, 자신은 죽음과 저주에 갇혀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둘째로,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43) 고 말한 그대로, 예수님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한 그 아들을 하나님은 삼일 만에 사망에서 건저 올리시고 부활의 영광을 맛보게 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신 줄 믿습니다.
9. 사도바울은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고 이 세상에 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고,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나아가는 영생의 길이 다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련하게 보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셨고, 십자가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바라보도록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으니, 지금부터 영원토록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