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2.유대인의 왕(마태복음 27:27-32)

[성경본문] 마태복음27:27-32개역개정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유대인의 왕(마태복음 27:27-32/2014.3.2.오전)
1.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도 받게 되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와 모욕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고 대항하거나 그 잘못된 부당한 태도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며,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만날 때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거나 암송을 하면서, 죄도 없는 예수님도 이렇게 당하셨는데 그의 제자된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고, 분노를 가라앉힌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저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고 나름대로 정의감에 사로잡혀 설쳐대거나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제 자신의 성격도 순화되면서 이렇게 분노할만한 일도 별로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분쟁 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거나 적당하게 피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당하는 섭섭한 말이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래 저 사람의 말이 맞아!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고, 나는 결코 의로운 사람도 아니며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2.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로마 군병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면서 온갖 수치와 모욕을 쏟아 내고 있는데, 사람들의 이런 태도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생명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상처받는 일이 생기고, 자녀로 인해서 속상하는 일도 생기고, 주위 사람들의 언행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런 곳에서 받는 상처와 실망과 분노를 언제까지 간직해야 하며, 언제까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까?
엡4:26-27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 타지 못하게 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보면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잘못된 감정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런 감정은 속히 잊어버리고,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좋은 감정에 사로 잡혀 살기 보다는 잘못된 감정에 사로 잡혀 사는 세월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찬송하며 감격 속에 살아야 하는데, 실상은 더 많은 분노에 사로잡히고, 슬픔과 고통의 감정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일상을 보낼 때가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3. 우리가 3년 3개월에 걸쳐 마태복음 전체를 강론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 마태복음의 특징은 첫 장이 족보로 시작하면서 그가 유대인의 왕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참고삼아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종으로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의 족보가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인간으로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비록 마굿간에서 출생하셨지만 왕으로서의 탄생하셨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21장에 보면 사람들은 그 분을 유대인의 왕으로서 맞이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의 십자가 위의 죽음도 "유대인의 왕"(27:37) 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왕을 어떻게 대우하였습니까?
종교지도자들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왕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군병들은 어떠했습니까?
영내에 있는 온 군대를 모아 놓고 예수님을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그를 왕이 아닌 광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속에 쌓여 있는 감정과 생각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4.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대신 붉은 옷을 입혔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조롱이 시작된 것입니다.
붉은 색의 옷은 왕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생략되었지만 마가15:15절에는 예수님을 채찍질 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겼을 때 빌라도의 재판 이후에 맞은 채찍으로 인하여 이미 그의 온 몸은 이리저리 찢겨졌고, 피투성이가 된 것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다고 했습니다.
왕의 면류관은 왕의 위엄과 국가의 영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금은보석으로 찬란하게 만들수록 권세가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마는, 예수님의 면류관은 가시나무로 엮어 만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대를 손에 쥐어 준 것은 왕의 통치를 상징하는 홀 이라고 불리는 막대기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대 위에 올린 광대처럼 예수님을 그렇게 장식한 로마 군인들은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면서 그의 얼굴에 꽃다발 대신에 침을 뱉었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는 대신에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면서 온갖 희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여기에 관한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4년에 영화배우 멜 깁슨이 만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그리스도의 수난) 이라는 영화로, 전 세계적으로 찬반의 여론 속에 많은 감동을 준 작품으로 성경의 기록에 근거하여 사실에 가깝게 표현한 작품으로,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12시간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 영화를 보면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있을 정도였는데, 비기독교인 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5. 문제는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을 그것도 억울하게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 모든 일에 침묵하셨고 조금도 저항하지 아니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던 베드로를 기억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고 하시면서, 내가 지금이라도 당장 12군단의 규모를 가진 천사를 동원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저항하고 얼마든지 억울한 재판을 공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지혜와 능력과 권세가 있었지만 그것들을 일절 사용하지 않으셨고 침묵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침묵은 그들을 용서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가시는 이 십자가로 향하는 고난의 길은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변호하고 부당함을 호소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자식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함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경우는 두 말이 필요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 침묵하셨고, 그 아들 예수님도 불법적인 재판에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공의와 의로운 일을 기뻐하시는 분인데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6. 하나님은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마치 농부의 심정으로 한 알의 밀을 땅에 심는 심정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12장에 보면 유월절 명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청했고, 그들을 향해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곧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의 피를 이 땅에 쏟음으로 우리를 살리고 되찾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예수님의 침묵은 불법 앞에서 용기 없는 비겁한 침묵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놓치거나 잃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이 모든 것을 침묵하게 하신 것입니다.
44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온 세상이 캄캄해졌습니다.
지상을 덮는 이 캄캄함은, 이 어두움은 아들의 희생을 슬퍼하시는 상징이요, 인간적인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도 아들을 잃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아들을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릴 받을 수 없는 존재요, 망할 수도 없는 존재요, 결코 잊히거나 무시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것도 영원히 누리는 줄 믿습니다.

7. 마태복음 27장의 경우에는 절수가 길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2절을 보면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고 했습니다.
원래 십자가의 처형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달려야 할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유는 당시의 시민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밤새도록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많은 심문을 받았고, 로마 군병들에게 심한 채찍질을 당하여 이미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고, 그래서 갈보리 언덕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실만 한 기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이 일을 빨리 해결하려고 힘이 세어 보이는 북아프리카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대신 지게 만든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객관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경꾼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도록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입니다.
그 많은 군중들 가운데 왜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8.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우연 같은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완벽하신 인도하심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로 광야로 나간 빌립입니다.
빌립은 사람 없는 광야에서 급히 마차를 타고 달려가던 에디오피아 국왕의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내시를 만났고, 그는 이사야서에서 고난당하시는 어린양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던 차에 빌립을 만났습니다.
빌립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쳤고, 예수님을 영접한 내시는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로 인하여 그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나중에는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빌립도 몰랐고 그 내시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도 그렇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십자가를 졌고, 그 일로 인하여 온 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며, 마가15:21절에 보면 그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이름은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기록하고 있고,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이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롬16:13).
온 가족의 신앙심은 물론이고 그들이 교회에 신실한 자들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대적하고, 로마 군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마귀처럼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조롱거리에 불과하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고전1:18) 사도바울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9. 하나님은 원래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강력하게 요구함으로 양보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왕을 세우면 권력을 이용해서 폭정을 일삼고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헤롯왕도 그랬습니다.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백성이야 어찌되던지 수탈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참된 왕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이셨습니다.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본을 보이셨습니다.
참된 왕은 전쟁을 쉬게 함으로 평화를 주며, 선동하는 대신에 안심하도록 하며,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그들을 위해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계시면서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면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시며 방황하고 고통 하는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을 위로하시고 평안하게 하셨고, 왕으로서 자기의 백성들을 영원히 구원하심으로 그들을 향한 왕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선동된 백성들까지 로마 군인들까지, 그들은 예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심으로 침묵하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그들을 위해 영원하고 좋은 길을 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침묵하면 그들에게도 사죄의 은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10.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든 아픔과 수욕을 자기 백성을 위해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그 분을 본 받아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21)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결과가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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