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4.6.온 땅에 임한 어두움(마태복음 27:45-56)

[성경본문] 마태복음27:45-56개역개정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3)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온 땅에 임한 어두움(마태복음 27:45-56/2014.4.6.오전)

1.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때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무엇입니까?
3-4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먼저 창조하시고 스스로 보시기에도 좋았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세상에 빛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추함도 느낄 수 없으며, 만물의 가치도 측량할 수 없으며, 인간의 활동은 물론이고 생명조차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의 기본이 되는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신 후에 차례로 세상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빛에 의해 드러나고, 빛에 의해 가치가 창출되며 빛은 생명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마지막 운명하시기까지의 3시간 동안에 온 땅은 빛을 잃고 어두움에 갇히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빛을 잃은 세상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경우에는 태양 빛이 없어도 하루 24시간 사방 구석구석을 밝혀 주는 빛이 있고, 일시적으로 어둠에 쌓여 있어도 언제든지 불을 밝힐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빛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류가 빛을 잃어버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 더 이상 태양은 떠오르지 않으며, 인간의 힘으로 더 이상 불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2. 오늘 본문은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제 육시라면 오늘날의 정오, 즉 낮 12시를 의미합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 가장 밝은 빛을 비추는 시간입니다.
바로 그런 시간에 갑자기 세상은 빛을 잃고 캄캄해지고 말았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소동하였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겠습니까?
저는 평생에 일식현상, 즉 달이 해를 가림으로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몇 번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일식 현상은 구름이 많이 낀 상태의 어두움 정도로 태양의 빛이나 열을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못 박히실 때 생긴 어두움의 현상은 이러한 일식의 현상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데, 그 때 이스라엘은 유월절 명절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식의 현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온 땅에 임한 어두움" 이 어느 정도의 어두움이며 그 규모는 지구 전체인지 아니면 유대 나라의 지역적 현상인지 이것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애급에 10가지의 재앙 중에 하나인 어둠의 재앙(출11:21-23)을 고려해 볼 때, 이 어두움은 지역적인 어두움일 수 있으며, 그 어두움의 정도가 사람이 서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요, 어둠의 재앙이 계속 되는 3일 동안 사람들이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고 했으니,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캄캄한 어두움일 수도 있으며, 또한 일식 현상처럼 보고 행동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만큼의 그런 어두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물리적인 어두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밝은 대낮에 그것도 갑자기 어두움이 임했느냐 하는 것이고, 이 어두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시기에 스스로 좋았다고 만족하셨고, 사람들이 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아시면서 왜 이 땅에서 잠시 빛을 거두셨습니까?
이 어두움은 다름 아닌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아들을 잃어 버려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슬픔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어두움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거룩한 아버지로부터 잠시잠간 분리당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어두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나타내는 어두움이요, 이 어두움은 생명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 세상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요한1:4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고 하였고, 5절에는 "빛이 어두움을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고, 9절에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 다고 하면서, 이 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인류가 노력해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21세기의 첨단 문명을 자랑할지라도, 빛의 근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하면 생명은커녕 인류에게 더 이상의 미래가 없으며, 어둠에 갇힌 흑암의 고통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4. 빛을 잃어버리고 어두움에 갇힌 인류에게는 더 이상의 미래는 없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죄가 영원한 생명의 빛을 버렸고 그 빛 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빛을 잃고 어두움에 갇힌 이 세상의 현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잃어버리고 인간으로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악하고 더럽고 방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빛을 잃어버린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그래서 죄 짓는 일에 담대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배출해 내고 세상에 쏟아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벨탑의 문명이요 소돔 고모라의 타락이요 네피림의 문명입니다.
왜 사람들이 병들고 실패하고 방황하며 고통과 저주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빛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빛의 근본이신 하나님 떠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마11:28절에 보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며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하나님 떠난 인생의 삶은 무거운 짐을 지고 쉬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의미입니다.

5. 바벨탑과 소돔 고모라와 네피림 문명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쉬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의무를 부여하고 온갖 규제로 사람들을 속이고 삶을 속박하면서도, 피땀 흘려서 수고한 삶의 대가를 이 핑계 저 핑계로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면 살수록 인생의 짐은 점점 무거워질 뿐이고, 어릴 때 가졌던 아름답고 소중했던 꿈들은 간곳이 없으며, 남는 것은 노쇠함과 질병과 마음의 상처뿐입니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며 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생명과 빛의 근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부귀공명을 누리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여도 그 마음에 생명의 빛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어두움은 고통이요 이 어두움은 영원한 저주를 의미하며 이 어두움은 생명의 빛을 잃은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 분을 버림당하게 만들었고, 우리의 허물과 욕심이 그 분을 죽음과 저주의 고통을 당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움이 그 분을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우리의 어리석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아무리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삶을 산다고 하여도, 빛과 생명의 근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을 믿고 영접하면 안식할 수 있으며 평안함을 누리되 그것을 영원히 누리는 줄 믿습니다.

6. 계속해서 본문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46절에 예수님의 마지막 절망적인 부르짖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이 십자가에 버리셨냐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이미 시편 22:1절에 기록되기를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절망적인 부르짖음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불쌍히 여긴 나머지 신포도주를 주어서 예수님의 마른목을 추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은 목이 말라서 육신이 고통스러워서 부르짖는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이 두려워한 것은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버림당하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거룩한 아버지로부터의 단절을 고통스러워 하셨고, 공의를 이루시는 아버지로부터의 외면당하심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짖음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있까" 하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로부터 버림 당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가 됩니다.
왜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 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우리의 죄가 그 분을 수치스럽게 하였고, 우리의 죄가 그 분을 버림 당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버리고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고, 우리의 죄 때문에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히 우리 위에 머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7.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고, 그리고 본문 50절에 기록된 대로 33년의 생애를 십자가 위에서 마감하셨습니다.
누가23:46절에는 이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기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고 말씀하신 후 운명하셨고, 요한19:30절에는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신 후 영혼이 돌아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증거 중에 54절에 보면 로마 사람 백부장과 함께 한 사람들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그 분의 죽음을 시종일관 지켜 본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다른 관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는 크게 나누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누고 있는데, 서방교회는 우리 개신교와 천주교가 있고, 동방교회는 그리스 정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방교회와 동방 교회는 십자가의 모형이 각각 다릅니다.
서방교회는 십자가의 모형이 가로가 짧고 세로가 긴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십자가를 가리켜 라틴형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가로 세로가 동일한 길이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들이 십자가의 형태로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 많은데, 가로 세로가 동일한 건물 형태는 동방교회의 건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십자가의 형태가 다른 만큼 십자가의 의미 또한 다르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서방교회인 개신교와 천주교는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신 것을 의미하고, 그 고난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십자가는 고난 보다는 그 분의 부활과 승리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고 생각하는 두 가지의 견해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날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동정을 받아야 하는 쪽은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 가운데서 신음하고 고통하는 우리를 동정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영원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서방교회나 동방교회가 가진 견해를 다 같이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주어진 상황에 따라 십자가의 의미를 더 강조하는 것과 덜 강조하는 부분이 나올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십자가로 예수님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뒤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 더 크고 놀라운 은혜가 그 분을 통해서 임하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고난의 십자가를 보고, 동시에 승리와 영광의 십자가를 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본문51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만인 제사장의 길이 열렸고, 심지어 무덤까지 열려서 죽은 자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백부장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도 십자가를 통해 그 분의 죽음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 온 땅에 임한 어두움은 아들을 잃은 하나님의 슬픔이요,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신 아들의 슬픔이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당하시는 이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안에 머물렀던 온갖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그 분의 부활의 영광에 까지 함께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중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요 인생을 비추는 영원한 빛이십니다.
그래서 빛 되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으며 이 세상에서도 빛 가운데서 행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생명의 빛으로 오셨으니 우리 심령에 임한 온갖 어두움이 물러간 줄 믿습니다.
가정의 어두움도 물러가서 복음화 되는 줄 믿습니다.
일본 땅도 어둠의 세력인 사신 우상의 세력을 우리 안에 임한 이 생명의 빛으로 물리치고 마침내는 복음화하여 영원한 승리를 얻는 줄 믿습니다.

コメントを残す

メールアドレスが公開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が付いている欄は必須項目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