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말씀을 성취하는 사람(마태복음26:47-56)
[성경본문] 마태복음26:47-56개역개정
47.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말씀을 성취하는 사람(마태복음26:47-56/2014.1.12.오전) 1. 사무엘하 20장에 보면, 다윗 왕 때에 베냐민 지파의 세바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은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군대를 모으고 반란 진압에 나서려 할 때에 원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을 만났고, 요압은 사촌형제인 아마사에게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하는 체 하면서 한 손으로는 그의 수염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품에 숨겼던 칼을 빼어 그의 배를 깊숙이 찔러 버렸고, 방심하고 있던 아마사는 창자가 다 흘러나와서 길바닥에 많은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그 죽음이 너무 처참하여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의 옷으로 덮어 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아마사를 대신하여 세바의 난을 진압했고, 다윗 왕의 충성된 부하였지만 다윗은 이 사실을 평생 기억했다가 임종할 때에 아들 솔로몬에게 요압의 죗값을 묻도록 했고(왕상2:5-6), 솔로몬은 성전 안으로 피신하여 숨어 있던 요압을 찾아내어 죽이게 됩니다. 요압은 다윗의 일등공신이었지만 다윗왕의 뜻을 어기고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형제였던 아마사를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도 그 분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배신의 키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던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가롯 유다를 통해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는 은 삽 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약속했고, 본문 49절에 보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 입 맞추는 것을 신호로 그를 체포하기로 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왕조의 역사를 보면 한 마디로 배신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는 물론이고 가정 안에서도 이런 배신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배신의 행위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도리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자신의 뜻 하는 바를 배신의 행위를 통해 그 뜻과 욕망을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자신의 뜻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을 도리어 십자가에 희생하고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해 오셨고, 마지막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른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본문 56절에 밝히기를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말씀 성취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말씀성취,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적어도 26장 전체를 놓고 볼 때,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찬 상에서도, "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대로 간"(24) 다고 선언 하셨고, 그래서 만찬에서 나누시던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십자가에서 흘리는 자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세상에서 뜻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배신이 나오고, 모략이 나오고, 위선과 속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그는 제자의 배신을 미리 알면서도 그 배신의 키스를 담담하게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입맞춤을 나누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50) 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친구가 아니라 원수요 도적놈이라고 고함을 지르고,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도 얻지도 못하게 만들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속을 다 아시면서도 그 인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의 입맞춤 후에 오는 배신으로 말미암은 고난이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알면서도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는니라"(52) 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인도의 간디처럼 무저항주의자이기 때문입니까? 테레사 수녀처럼 박애주의자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저항하고, 배신당하는 것이 견딜 수 없어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저항한다면 내 뜻은 이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요한18:10절에 보면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던 사람이 베드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만일을 대비해서 칼을 미리 준비했는지, 칼의 출처에 대해서는 분명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그런 베드로의 행동을 보신 예수님이,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53-54)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권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군대귀신을 쫒아 내시고, 물 위로 걸으신 예수님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는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시고, 포도주가 떨어져 곤란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이셨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나 권세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40일 금식기도 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두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첫째는 지나치게 굶주리고 계셨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신성으로 충만하신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이런 능력을 사용하셨다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을 지도 모르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헤롯과 로마 정권을 순식간에 엎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속 시원하게 일을 처리했을지는 몰라도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6. 저도 목회자이지만, 일부 목회자들이 교회의 재산과 목회를 통해 얻은 명성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탐욕에 사로잡혀 교회를 고통하게 만들고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말씀의 교사로, 영혼의 목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자식 잘 키우고, 존경받고, 인정받은 것, 그리고 하늘나라에 쌓은 상급이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입니까? 우리가 세상에 와서 내 소유가 된 것은 물질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죄 밖에 없는데, 이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여기까지 사용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착각해서 마지막까지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가롯유다인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교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고 했는데, 그 십자가에 내 자신을 못 박는 것이 너무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은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처럼 나 자신을 십자가에 먼저 못 박을 때 가능한 줄 믿습니다. 7. 예수님은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우리처럼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38절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 분도 인간이기에 편하고 싶고, 배불리 먹고 자색 옷을 입은 부자처럼 편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유혹한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39절에 보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였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몸과 마음이 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잠시잠깐이라도 제자들과 함께 있어 그들이 기도로 힘이 되어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원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해야 할 시간에 깊은 잠에 떨어졌고, 56절 하반절에 보니 깨어나서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 현장의 현실입니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3년씩이나 동거 동락하던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까? 이 갈릴리 촌사람들이 예수님 붙잡고 한 번 출세해보려고 했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기서 인생이 끝장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었다면 이 사람들은 영원한 배신자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처럼 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에서 멀리 도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원하는 대로 행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가롯유다의 배신의 키스를 받으셨고, 모든 권능을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셨고,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도망할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침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나아가야 할 길이 있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 있듯이, 오늘 우리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가 십자가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무서워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인간 본능의 모습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려면 말씀에 대한 순종의 훈련이 필요한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40일 금식 기도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고,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반복을 통해서 그 사람의 습관에 변화가 오고, 이런 훈련을 통해서 사람의 가치관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예배의 습관이 필요하고, 기도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9. 셋째는, 기도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41)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시험에 다 이기는 강자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결국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주기도문까지 가르쳐 주시면서 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이 이 기도를 통해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우리도 유혹을 이길 수 있고, 우리도 십자가와 같은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기다린다고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과 확신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첫 걸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내 삶 속에서 일으키는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의 사람은 배신의 입맞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곁을 떠난다 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부터 내 뜻을 버리고 내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내 삶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말씀이 성취되고, 아버지의 뜻이 성취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먼저 고난을 맛보신 예수님이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2014년도는 내 뜻을 버리고 말씀을 성취하는 축복의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