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헛된 맹세(마태복음 26:31-46)
[성경본문] 마태복음26:31-46개역개정
31.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32.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헛된 맹세(마태복음 26:31-46/2013.12.1.오전)
1. 지난 주 월요일, 집에서 녹화된 한국 영화 도가니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자들을 수용하여 교육시키고 있는 어느 학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라고 합니다. 10살 전후의 어린 남녀 아이들을 원장과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성적 노리개로 삼으며 참혹한 학대를 일삼는 짐승만도 못한 어른들의 범죄가 새로 부임한 교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교육청, 시청, 경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비리의 연쇄 고리는 결국 이 추악한 사건을 덮어버리고 맙니다.
한 사람의 미술 교사와 젊은 인권운동가, 그리고 학대 받던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사회 속에 숨어 있는 거대한 구조적인 악에 대항하기에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습니다.
정말 기분 나쁜 것은 이 학원을 운영하는 학원장 일족이 교회의 장로로부터 시작해서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들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판에 패배한 주인공이 서울로 돌아간 미술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야말로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을 향한 선지자와 같은 음성으로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 소금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의 빛이고 소금임을 강조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도리어 세상이 우리를 바꾸어 놓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에 우리는 타협이라는 명분아래 우리 자신을 세상에 팔고 있으며, 신앙을 사수하기 보다는 현실을 택하고 더러운 이익에 영혼을 팔고 있는지 모릅니다.
영화 속에서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라는 노래가 반복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맹세가 나오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겟세마네로 기도하시러 가는 도중에 제자들을 향하여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33절에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당돌하게 대답하기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였고,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베드로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맹세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연약한 존재인 줄 깨닫지 못하고 맹세를 남발한다면 그 맹세가 제 인생의 올무가 되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이 맹세가 아주 기분이 나쁜 것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모른다고 부인할지라도, 자기는 목이 달아날 상황이 오더라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과 비교를 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충성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기분 나쁜 것은, 예수님은 이미 본문 65-79절에 나오는 내용처럼 베드로가 두려운 마음으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맹세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베드로 자기 같은 존재쯤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맹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인생의 문제점, 아니 우리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한 대로, 내가 약속한대로, 내가 장담한대로 안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걸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다 잠들었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부탁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이 사람들이 너무 고민되어 죽을 것 같으니 날 위해 기도 해달라는 부탁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런 간단한 부탁조차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본래부터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선하게 창조되었고 만물을 다스릴만한 능력이 있는 존재였지만,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파괴되고 연약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할 능력도 없고,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늘 실패하고 고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맹세하고 다짐을 해도 우리는 제 스스로의 힘으로 소원을 이룰 수도 없고, 죄가 주는 고통과 문제에서 스스로 벗어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인간으로서 전도자로서 남다른 은혜를 체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도다"(7:19) 고 하면서 그 원인이 제 안에 있는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탄식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고 했습니다.
4. 우리가 아무리 좋은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그리고 남다른 훌륭한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생각한대로, 말하는 대로, 장담하고 맹세한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연약함과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습니까?
본문 39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연약한 육신이 힘을 얻고 문제 만난 인생에게 살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큰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연약한 육신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그래서 고민이 되고 마음이 슬프고, 십자가 앞에서 놀라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겟세마네에 올라가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을 앞세우고 장담하고 맹세하면서 사람들에게 남 다른 자기 힘을 과시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된 문제를 감추려고 거짓말도 하고, 맹세하고 많은 말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말을 앞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놓고 날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으며,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고 잠만 자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한 것은 제자들만 아니라 예수님도 약하셨습니다.
피곤하고 졸음이 가득한 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약하고 피곤한 나머지 잠들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5. 본문 39절에 보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42절에 가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약하니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나의 연약함을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내 뜻은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라면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힘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2:43절에 보면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위해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연약한 인생이라도 새 힘을 얻는 줄 믿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실패하는 인생도 기도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마음이 슬픈 사람이 기도하면 위로와 소망이 넘치며, 질병 중에 고통하는 인생이 기도하면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꼭 기도만 해야 도움을 얻고 기도해야만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까?
인간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인생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창조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큰일도 할 수 있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도 체험하는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연약한 존재이며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시고 기도하면 반드시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6. 우리 인생의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인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늘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그가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 아는 사람은 그에게서 영생을 구하기 마련입니다.
사람 속에 악한 귀신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 속에 들어간 악령을 기도 이외에는 물리치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잘못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도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장담하지 아니하고, 헛된 맹세로 스스로 올무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도를 통해서 겸손해지고, 기도를 통해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시는 줄 믿기 때문이고,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먼저 변화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기 전에는 십자가가 두려웠고, 고통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는 제자들이 불쌍했지만 기도한 이후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다 받아들 수 있었습니다.
7. 오늘날 우리가 기도할 때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기도하기 전이나 기도한 이후에는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45절을 보면 스스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변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45-46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그 분은 기도를 통해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겉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엡1:21-22) 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으로 인해 교회가 세속화되고 변질되고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고, 바뀌어지 지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을 바꾸고 바뀐 자신을 통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많은 문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어리석은 맹세 대신에 기도하면 어떤 놀라운 결과가 주어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맹세가 나오고 장담이 나오고 인생의 자랑과 교만이 나오지만, 기도하면 내 삶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있는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이 모든 영광에 우리도 함께 참여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