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8.나는 누구의 소유인가(마태복음22:15-22)
[성경본문] 마태복음22:15-22개역개정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는 누구의 소유인가(마태복음22:15-22/2013.4.28.오전)
1. 국가가 인구 조사를 하는 최대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세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 국가 지출은 계속 증가하면서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세금을 낼 인구는 1억 2천 7백만을 정점으로 점점 줄어가는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 소비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세를 포함한 세금이 올라가면 자연히 소비가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고 보니 장사하는 기업들은 올라간 세금만큼 상품의 가격을 할인해 줌으로 고객의 소비를 유도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3프로를 올리면 3프로 세일을, 5프로를 올리면 5프로 세일을 합니다.
이러다보니 정치하는 사람들의 모양세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세일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고, 이런 조치에 대해서 각 기업들이 맹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가을의 참의원 선거에서 표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이번에 한 발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두고 국가와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 일련의 실랑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국가에 내는 세금 중에 성경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항목은 토지세와 소득세, 그리고 인두세와 종교세가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인 세금 문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아닙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세금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나 입장을 정리하려고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억압을 받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납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열심당원들과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결국 로마와 헤롯왕의 사적인 배를 불리기만 할 뿐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과 정권을 잡고 있는 헤롯 당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뜯어내어 자신들의 로마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데 혈안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매우 곤란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먼저 셋돈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셋돈이란 로마 황제의 초상화를 그려 넣고 이 화폐가 로마 황제의 소유임을 나타내었다고 하는데, 이 은화는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것으로 14세부터 65세의 사람들이 매년 마다 한 데나리온씩을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은화를 보시고 바리새인들에게 반대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초상화에 표시된 그림과 글자는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은화 한 닢을 앞에 놓고 이것이 누구의 초상화이며 누구의 소유인가를 질문하고 대답하시는 내용을 통해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초상화에 기록된 화상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로마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어린아이도 알만한 뻔한 내용을 질문 받는 바리새인들은 기분이 매우 나빴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뻔한 내용의 질문을 던졌지만, 바리새인들이 요구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도 의외였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로마가 동전에 황제의 인물을 새긴 것은 황제 숭배 사상도 포함되어 있지만, 재물의 소유권이 전부 로마의 황제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황제의 초상화가 새겨진 이것이 황제의 것이라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의 입으로 시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것은 로마가 무력으로 이스라엘을 굴복시키고 유대인들이 원치 않는 이방인에 의한 점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통치에 순응하고 그들의 조세의 법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4. 사도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를 로마서13장에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1)고 하였고, 그 이유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기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1) 것이라고 함으로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통해 성립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그래서 그 법에 거역하지 아니하고 순종해야 함을 말했습니다.
그 권세가 선한 권세인가 악한 권세인가, 그 권세가 강한가 약한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허락된 권세는 다 하나님이 내신 것이고,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국가의 법은 그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세의 의무는 그 나라의 백성이라면 어떤 정권이냐에 관계없이 반드시 국민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가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탈세는 불법일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세에 대한 문제에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의 어려움도 외면하고 정치가들이 정권을 획득하고 인기를 얻으려고 남발하는 선심 정책이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말하면서도 제 마음대로 국가의 세금을 축내고 잘못된 곳에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속이 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고 하는 이 말씀에 우리는 분명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5. 그런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말씀에는 우리가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전에 황제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법적으로 분명한 지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것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가리켜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것에 대한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소득의 십분의 일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연약하고 불쌍한 자에 대한 자비의 마음에서 나오는 구제나 선교하는 일이나 교회 건축에 대한 것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십일조를 제외한 우리의 헌금이나 선행이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자발적인 헌신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당연한 반응이지,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로 구분하여 드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이사의 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정한 법을 따라 우리의 소유 가운데서 일부를 드림으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간단히 생각하고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6. 물론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셨고, 지금도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가인이 드리는 제사를 거부하셨고 이스라엘이 드리는 황소의 희생 제물을 거부하셨습니까?
왜 이스라엘이 온 정성과 많은 재물을 드려 만든 성전이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어야만 했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제사에 드려지는 짐승이나 성전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신이나 황제가 원하는 것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도 그들처럼 기뻐하시는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따라 정해진 예물을 드리면 종교적인 의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5:23-24절에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 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며, 형제와 화목하는 우리의 모습을 예물보다 더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7.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중대한 요소가 구분할 줄 모르는데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원하고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하면서 그것이 최선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약4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사업을 계획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구체적으로 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위가 악한 것임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이 왜 나쁩니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행할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빙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선택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릅니다.
내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면서도 회개할 줄은 모릅니다.
그래서 약4장의 결론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 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고 무엇이 악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그것이 죄고 그것 자체가 악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그런 능력을 상실했습니까? 제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망각할 때였습니다.
8. 살면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배신당하는 것입니다. 배신으로 버림받고, 배신으로 속고, 배신으로 망하고, 배신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런 배신을 당해 본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생각하고 결심하는 것은 오직 돈입니다.
왜 믿을 것은 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후의 배신은 누가 합니까? 돈입니다. 돈은 반드시 사람을 배신합니다.
사람은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최후까지 의지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반드시 사람을 배신합니다.
수7장에 보면 아간은 돈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물질이 인생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가 감추고 숨긴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셨고,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
왕하5장의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같은 죄로 문둥병으로 저주 받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약5장에서 부한 자들을 경고하고 장사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면 이런 문제는 사라지는 줄 믿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돈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과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9. 야곱이 비록 삼촌 집으로 쫓겨 갔지만 돌아올 때에는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뒤에는 라반과 그 아들들의 추적을 받았고, 앞에는 400명의 군대를 거느린 형 에서가 칼을 빼고 복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공은커녕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그 때 위기에 빠진 야곱이 취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물질 때문에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삼폰 까지 속였더니 그 아내가 된 라헬까지 제 아버지인 라반을 속이는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그 때 야곱이 깨달은 것은 인생의 참 성공과 행복은 제 소유를 늘리는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얍복강에서 환도 뼈가 부러지기 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제 스스로를 하나님의 소유로 돌리는데 사는 길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추격하는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셨더라면 야곱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소유가 되었느냐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전6장 9절 이하에서 사람이란 존재는 무엇과 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6:20)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벧전2:9)라는 것입니다.
10. 우리도 제 소유가 귀하고 소중한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돈 천엔 보다도 내 돈 백 엔이 더 귀한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소유된 우리를 세상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않을 만큼 우리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 성공과 영원한 행복은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우리 자신을 드리면 드린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영원한 축복이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