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26.산 자의 하나님(마태복음22:23-33)

[성경본문] 마태복음22:23-33개역개정

23.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산 자의 하나님(마태복음22:23-33/2013.5.26.오전)
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 시비를 걸다가 예수님의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에 의한 집중포화를 맞고 물러간 뒤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교묘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과 달리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오경만을 온전한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부활의 교훈을 찾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은 믿지도 않는 바로 이 부활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이 파 놓은 함정은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상과 마귀는 지금도 성도들과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위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때 성도가 제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교회가 받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첫째는, 말씀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을 무너뜨린 마귀는 시험 산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말씀을 잘못 적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로 배우고 삶에 실천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속아 넘어갈 뿐입니다.
둘째는,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입니다.
제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지킬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가운데로 가져와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도 복되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2.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준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일곱 명의 형제들이 한 여인과 결혼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역의 나라들은 형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을 대신하여 대를 이을 자녀를 낳게 하는데 유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관습을 수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신명기 25:5-10절에 모세의 법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혼법에 의해서 일곱 명의 형제들이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결국에는 후사를 보지 못하고 나중에는 일곱 형제들과 그 부인까지 죽고 말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이 부활한 후에는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언 듯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있다고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부활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았더라면 결코 이런 질문을 예수님에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위 성경의 권위자로 자처했지만 실상은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질문에 의해 자신들이 성경에 대해 얼마나 무식하며 얼마나 엉터리 지도자였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했습니다.

3. 첫째로 그들은 성경을 바로 알지 못했고 그 결과로 오류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이 그들로 하여금 부활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면 부활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 사두개인이나 이단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제 스스로는 바로 믿고 행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나 지식이나 능력으로도 깨달을 수 없는 생명의 신비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도 바른 믿음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 사람의 한계점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 육신이 소멸되듯이 사람의 영혼도 소멸되는 줄 알았습니다.
천사나 영적인 존재들, 그리고 예정론에 대한 교리로 믿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이 사람들이 부활하면 이 여자가 일곱 형제들 가운데서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냐고 했으니,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다가 자신들이 오류에 빠졌고, 자신들이 파 놓은 함정에 스스로 들어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한계점은 성경을 잘 알고 있고 하나님도 열심히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바울의 증거대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전15:13-14)고 했으니, 부활이 없다고 믿는 이 사두개인들의 신앙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마디로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아무것도 아니며 헛수고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4.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 가운데서 바리새인들의 일부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일은 있어도 사두개인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은 부활신앙을 가졌고, 천사나 영적인 존재들을 믿었지만 사두개인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전부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경험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신학자들의 일부는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출애굽의 역사를 부정하고 그들이 갈대밭을 건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두개인들처럼 성경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13장에 보면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셨는데 고향 사람들은 믿기는커녕 도리어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저희가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13:58)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믿지 않으면 능력도 기적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예수님의 마음이 인색하기 때문입니까?
인간은 무능하고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홍해도 가르는 능력이 나오는데, 이 나사렛 사람들은 그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로서 오는 온갖 좋은 은사와 능력과 축복들을 스스로 배척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두개인들이야말로 제일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5.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 말씀하시기를,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부활 문제를 가지고 마치 육신을 입은 세상살이의 연장쯤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쯤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로 말미암는 근본적인 변화, 변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한계점을 넘을 수 없는 그런 연약한 육신이라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서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산"(42-44)다고 했으니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시는 부활의 사건은 단순한 육신의 재생이나 세상에 속한 유한한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본문의 말씀 그대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되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부활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관계를 초월하고, 육체에 있을 때의 모든 경험들을 초월하고, 세상의 한계를 초월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그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 마지막으로 부활에 관한 큰 난제 한 가지가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문 32절에 기록함과 같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부활에는 두 가지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 이후에는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후에 경험해야 하는 사실 한 가지, 그것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 신앙이 없이 그저 육신대로 살다가 죽으면 영도 없고 내세도 없고 선과 악에 대한 심판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성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고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후가 이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죽으면 빌린 돈도 갚지 않아도 되고, 죽으면 지은 죄도 다 사라지고 죽으면 모든 것이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죽은 영으로 하여금 부활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이 정하신 사후의 세계는 두 종류의 부활을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입니다.
심판의 부활이라 함은 이 세상에서 육체로 사는 날 동안에 지은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끝남이 없는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지옥의 고통과 복음을 거부하고 불의하게 살아왔던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억울함에 밤낮으로 이를 갈고 원통해 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식구들이 결코 이 심판의 부활을 당하지 않도록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천국에서 누리는 영원한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망도 없고 영광도 없는 죄에 대한 값으로 영원한 고통을 맛보기 위해 부활하는 그런 소망 없는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꿈에도 그리며 사모하던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의 자녀가 받을 영광이 기다리는 그런 부활을 맛보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 받을 자들의 부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믿음으로 자녀된 우리들의 부활에 관심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장차 받을 영광이 있고, 장차 들어가야 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히 왕노릇 할 영광이 있기에 우리의 부활은 하나님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8. 성도들이 고대하는 이 부활의 영광은 또한 이 지상교회가 사명을 다하는 그날 까지 교회의 힘이요 소망인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가 찢기고 부서지는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네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는 말씀, 즉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참으로 어려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칭찬해 주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께 충성된 일꾼으로 남아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신앙인 줄 믿습니다.
망가지고 부서지고 찢기고 능욕 받아 마침내 죽임 당하는 자리에 끌려갈지라도 이 신앙 버리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충성된 증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처럼 우리도 그렇게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산 자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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