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5.두려움이 없는 삶(마태복음10:16-33)

[성경본문] 마태복음10:16-33개역개정

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움이 없는 삶(마태복음10:16-33/2012.1.15오전)
1. 요즘 외환시세를 보면 1달러에 1,100-1,200원 정도이고 일본의 경우는 77엔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마는, 1880년대 한국에서는 1달러가 엽전으로 3,200닢 정도가 되어 1달러를 옮기는 데는 등짐으로는 불가능하고 소달구지를 동원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경제적 불황은 전 세계적이지만, 특히 유럽은 자고나면 유로 가치가 하락하고,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가다 보니, 유럽 대륙은 근심의 구름으로 잔뜩 흐린 상태에 있습니다.
한 때 세계 경제 2위로 달리던 일본도 이유 없는 엔고와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나라 살림이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보니 노다 정권이 소비세를 10%로 올리겠다고 선언하고 지난 13일 내각을 개조함으로 사실상의 증세작업을 시작하는 등 일본의 근심도 보통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로 나가면, 경제로 인한 근심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이 두려움이 전세계를 강타하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대공황과 같은 공포로 바뀌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인생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근심과 염려와 불안이라는 모순투성이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가 결혼을 못하면 못하는 데로 염려가 많고, 결혼을 하면 하는 데로 걱정이 쌓이고, 자녀를 출산하면 출산의 기쁨은 잠시 뿐, 자녀로 인한 부모의 근심은 한평생 따라 다니기 마련입니다.
자녀가 대학 못 들어가면 그것 때문에 근심, 들어가면 등록금 때문에 걱정, 셋방살이하면 집이 없어서 한숨, 집을 사면 빚 때문에 한숨, 세상만사가 사실 이렇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소원을 성취했다고 즐거워하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되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불안하고 근심 가득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하며, 무엇을 붙잡아야 염려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축복을 누리면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2. 오늘 본문을 보면 먹고 사는 세상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전도자들에게도 염려와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세상일을 다 내려놓고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으로 인한 염려가 없고 특히 목사님들이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도우시니 두려워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본문을 보니 전도자가 전도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지자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도 신앙으로 말미암는 핍박을 두려워하고, 세상으로부터의 오해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불화를 두려워하고, 열심히 전도해도 진리와 의가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세상 한 가운데서 두려워합니까?
세상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것 같은 전도자들은 왜 두려워합니까?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의 사람들이나 전도자들이 예외 없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인생 자체가 연약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본은 종교나 사상이나 지위, 소유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똑같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만큼 더 많은 욕심을 내고, 어렵고 힘든 만큼 그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려고 남들 이상의 몸부림을 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생들을 향해 주님은 심판의 칼날이 아니라 사랑의 손길을 베푸시고, 우리들의 죄와 허물과 연약함을 불쌍히 보시고 용서하시고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이런 연약한 인생들을 향해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19절에 「염려치 말라」고 하셨고, 26절에는「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가운데서 이 말씀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심각한 위기에 빠져 염려와 두려움으로 충만한 연약한 인생에게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 말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도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2:15-17)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사람들의 말과는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두려워말라고 하신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참새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생명도 돌보아 주시는 주님이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만나고, 이 위기를 전도자 스스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해도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두려움 대신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몇 가지의 중요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4.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전도자의 사역에서 우리는 일반 논리에서 어긋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전도자가 평안히 전도활동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님이 전도자를 도와주시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의 세일즈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물건을 팔고 영업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전도자와 세일즈맨이 다른 것은, 그들은 돌발 상황 없이 의도대로 움직여 주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마는, 전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자의 능력은 도리어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일어나고,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난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희생하고 있을 때, 내 생각과 뜻에 어긋나는 일을 만나면 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가 생각하고, 심할 경우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던 일도 집어던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17-18절의 상황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자가 예상에도 없었던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는 그곳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났습니까?
놀라운 것은 그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 마다 하나님의 더 놀라운 능력과 도우심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5. 사도들이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 복음을 증거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저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하루에 삼천 명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교회 안에 구제로 인한 불공평함이 있어 이 일로 교회가 시끄러웠지만 오히려 성령 충만한 집사들을 세움으로 교회가 힘 있게 전도하는 등 교회를 든든하게 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예루살렘에서의 대대적인 핍박이 일어나자 교회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처럼 위기 속에 빠졌지만 핍박을 통해 오히려 온 지역에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본격적인 선교의 시대를 열어가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도리어 흩어진 교회들의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의 교회를 향한 분노와 박해가 오히려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만들면서 소아시아와 유럽 복음화의 주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이 지상의 모든 교회 가운데서도 계속되어지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6. 둘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들이 반기독교 정책을 가진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고, 끌려가 신문을 받을 때에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약속하시기를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도자에게 지혜로운 언사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서 전전긍긍하거나 목숨을 위해 타협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은 위기 속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말을 하였고, 오고오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믿음의 본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배짱이 좋아서도 아니고, 남다른 담력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떤 고난 속에서도 도우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순조로우면 기도할 일이 없어지고, 어려운 일이 없으면 교만한 마음이 늘어나고 인간의 연약함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삶에 부족함이 없이 풍부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 보다는 부모와 함께 가난과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해온 자녀들이 더 위기에 강하고 효자가 많고 삶 자체를 귀하게 생각합니다.

7.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교회가 크고 유명한 만큼 자신들의 신앙도 크다고 착각하면서 일주일 한두 번 출석하는 것으로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교회를 붙들고 씨름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어려움 당한 교회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 본 적이 없으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그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해 본 적이 없으니, 어디서 참된 기쁨과 감사와 생명을 건 기도가 나오겠으며, 어찌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뇌와 아픔과 십자가의 수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신앙의 위기를 말하고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로는 도우심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바로 그 위기의 현장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가 나타날 터인데, 도리어 위기 때마다 고난과 고통을 두려워하고 염려하다 보니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믿는 자의 고난은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위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고난의 역사를 반복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비된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에만 오면 불신앙이 나오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믿음 대신에 염려와 두려움으로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실망할 일이 많이 생길 바로 그 때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믿으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기 바랍니다.
 
8. 셋째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염려하고 두려워합니까? 잃어버릴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재산을 잃을까? 명예를 잃을까? 목숨을 잃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명예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명예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명예를 위해 희생한 만큼 그것이 더 귀하고 그래서 그곳에 생명을 걸게 됩니다.
어느 날 생명보다 귀한 그 명예를 잃어버리면 이 사람은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게 될 때에는 이미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하셨고, 우리는 그런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에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28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육신의 생명만 앗아갈 뿐이지만 하나님은 육신과 영혼을 영원토록 지옥 불에 던지시는 심판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9. 작년 한 해도 그랬지만 올해도 우리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떠나고 없는 빈자리를 그의 제자 여호수아가 대신 했을 때 그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하여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1:6)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너를 버리지 아니하」(5)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염려와 두려움은 있습니다.
야곱도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제 인생에 반드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속에서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전도자가 생명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모든 고난 속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염려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염려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아가면 두려움은 물러가고, 순간 순간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과 은혜가 우리의 삶에 충만한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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