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4.복음의 나침반(마태복음 10:1-15)

[성경본문] 마태복음10:1-15개역개정

1.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복음의 나침반(마태복음 10:1-15/2011.12.4.오전)
1.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중국 사람들은 서양에서 온 외국인들을 전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를 믿는 국가에서 왔으며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행세했기 때문에 서양인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술 취하고 방탕하며 도덕적으로 더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이것이 기독교라면 믿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몇 몇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예수의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같은 기독교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순결하고 거룩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들을 가리켜 「예수의 사람들」 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10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모습일 뿐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표현하는 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예수의 사람들이 되지 못한다면, 22세기에 이르러서는 과연 이 지상에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을지 매우 염려스럽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시면서 그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시는 모습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여러 번 읽어 내려가면서 머리에 떠 오른 것은 다름 아닌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는 기구였습니다.
나침반은 보면 그것은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돌려놓아도 신기하게 항상 북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침반이 가지고 있는 자석의 성질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행이나 사막 등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또는 건축물을 건축할 때나 전쟁 시에 군인들이 지도를 펴놓고 방향을 찾을 때 매우 요긴한 기구입니다.
문제는 왜 전도에 관한 말씀과 나침반이 관련이 있느냐 하는 사실입니다.

2. 전도자로 부르신 12명의 제자들 이외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이미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또 다시 12명의 제자를 선별하여 전도자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별해서 전도자로 세움을 입은 이 사람들도, 이전에는 아담과 하와처럼 자기중심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합당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와 함께 하면서 대부분이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사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예수님이 12제자들에게 주신 중요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님이 그들에게 지시하시는 분명한 방향과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5-6절을 보면, 주님이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가야할 것이지만, 지금은 네 이웃에게로 먼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중구난방으로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이지만 먼저 가정을 복음화하면서 이웃을 복음화하고, 그리고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영성이 약해지는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을 전도하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혼자 믿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장애가 많고, 그것이 교회에 영향을 줍니다.
친구들이 전부 세상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사람보다는 친구들이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효과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일차적인 방향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입니다.
그곳에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3. 두 번째는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자의 삶과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8)는 것입니다.
과연 이 12명의 제자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본문의 12명의 제자들과 우리들을 놓고 볼 때, 신앙생활을 누가 더 많이 했고 누가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습니까?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기껏 예수님 따라 다니면서 훈련받고 신앙생활 한 것이 대략 1-2년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장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니 능력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 이미 그들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대로, 주님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을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고 영혼 구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을 대신하는 사람이 일을 성사하도록 만들려면 충분한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처럼 그들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12명의 제자들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고 수많은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그들이 신앙의 연륜도 짧고 전도자로서 제대로 훈련되어지지 못했지만, 인간적으로 준비된 것이 없을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나가기만 하면 그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4. 더 나아가서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8절에는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고도 수고의 대가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도를 위해서 미리 무엇을 준비하거나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도자가 벌거벗고 다니면서 전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전도자가 아무 대책도 없이 목적지에 가서 적당한 사람이나 교회에 붙어 폐를 끼쳐도 된다는 말은 더욱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큰 권능을 나누어 받고, 위대한 복음의 사명을 받았으니 세상 사람들 차원에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머리 굴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부름 받은 사명자는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27년을 한 교회와 함께 걸어오면서 지금까지 인내하며 여기에 이른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이런 문제로 힘들고 고통스럽기는 해도 사명자답게 모든 것을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는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날 믿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이삭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4)는 이 말씀대로 여호와이레를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을 끌고 그곳으로 가지만 하나님에게는 분명한 뜻이 있고 계획이 있을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리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전도자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능력이 일어나고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지 머리나 쓰고 고민한다면 이미 사명자는 아닙니다.

5. 믿음의 능력이 언제 나타납니까?
요한11:40절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으니 믿을 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끝에서도 분명히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도자를 향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집 안의 양식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이지 자녀가 할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교회 걱정 마시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열심히 복음만 전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지 비판하고 욕하고 온갖 사람들이 나라 걱정하고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 것처럼 하는데, 나라걱정은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학교는 학생들을 바로 가르치고, 사업가는 성실하게 장사하면 국가는 바보 온달이 대통령이 되어도 잘 굴러갈 것입니다.
문제는 내 할 일은 안하고, 내 못난 것 생각 못하고 남의 탓만 하니 내일이 캄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자들이 먹고 입고 잠자는 것 까지 염려하지 말고 다 내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자의 사명을 받은 자의 삶은 바로 복음의 나침반과 같기 때문입니다.
나침반의 침이 북쪽만 가리키는 것은 자석의 성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자의 삶, 복음의 사명자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 나침반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금이나 은이나 동이 없어도, 한 벌 옷만 가져도, 이 사람들이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냅니다.
어느 집에 가던지 그 머무는 집을 축복하면 축복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대적하는 자들이나 지역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가리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했습니다.

6. 전도자에게는 주님이 나누어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이 주님의 능력이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더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소명이 있다면 반드시 주께로 받은 능력이 있으며, 이 능력이 세상 한 가운데에서 우리로 복음의 나침반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세상에 왔으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답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로 갈지 분명한 답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가 전도자에게 필요 없는 것은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처럼 주님이 그들의 예비함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동양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편히 쉬라고 관을 뉘어 놓는다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수직으로 세워 그 머리를 하늘로 향하게 한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하늘을 바라보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빨리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침반이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자리를 잡던지 그 침이 정북을 향하듯이, 우리의 사역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하고, 우리의 삶이 세상 가운데서 영원한 하늘나라로 향하도록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복음의 사명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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