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6.예수님이 보신 것(마태복음 9:1-9)

[성경본문] 마태복음9:1-9개역개정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이 보신 것(마태복음 9:1-9/2011.10.16.오전)
1. 애플사의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오랫동안 암과의 투쟁을 벌이다가 10월 5일에 사망하자 전 세계는 그가 만든 iMac, iPhone, iPod, iPad등의 단어를 떠올리며 iSad라고 표현하며 그의 사망 소식을 애도를 표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시대의 레오날드 다빈치라고 하면서 그를 최고의 천재로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개인 재산만 해도 67억 달러 이상이라고 하니 애플 회사가 잡스를 통해 벌어들인 재산까지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아이폰의 인기는 일본에서도 선풍적일 정도입니다.
스티브잡스는 늘 똑똑한 말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작 그 인생은 행복하지도 못했고, 인생의 마침표도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때로는 자신이 세운 회사도 버렸고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본 것은 국가도 민족도 이웃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 성공뿐이었습니다.
애플회사가 컴퓨터나 휴대폰을 만들어 남기는 이문이 30%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물건을 만드는 타이완 회사의 이문은 불과 2%였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물건을 만들다보니 애플회사와 잡스는 갈수록 돈 방석에 앉았지만, 정작 타이완의 하청 회사에서는 종업원들이 줄줄이 자살을 하고 회사의 경영이 어려운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 속에서도 늘 똑똑한 사람,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 속에 있는 믿음을 보시는 눈이었습니다.
 
2. 우리들은 어떤 시각에서 어떤 관점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은 한 중풍병자의 질병이 병자 자신의 신앙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치료받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병자 본인에게 신앙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문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께로 온 몇 사람의 믿음을 주님은 주목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내용이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마가복음 2장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집 안팎으로 너무 많이 몰려들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에 환자의 침상을 메고는 도무지 예수님께로 가까이 갈 수가 없음을 알고 이 사람들이 택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지난봄에 우리 권사님 한 분이 세를 내어준 집이 비가 센다고 해서 수리를 했는데 돈은 돈대로 들고 수고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하느라고 마음고생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그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 앞으로 환자를 달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괘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면,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어떤 중병을 앓고 있다면 과연 우리 교인들 중에 몇 사람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남의 집까지 망가뜨리면서, 남들에게 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말하면서 그 사랑과 희생을 받기는 좋아해도, 내 자신이 그 사랑과 희생을 몸소 실천하는 데는 너무 인색하고 개으른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3. 운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주님이 보신 것이 무엇입니까?
병자를 메고 예수님께로 온 이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많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어려울 때 저 사람이 조금만 힘을 더 보태어 준다면, 혹은 전도하고 나서 전도를 받은 사람의 믿음이 성장하지 못할 때 속이 답답하고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가정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열심을 내어보지만 아직도 믿지 않는 식구들이 집 안에 있는 것을 볼 때 실망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충성하며, 말씀과 기도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있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시는 주님의 말씀과 행동이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심으로 중풍병자를 메고 온 이 사람들의 속에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결국은 문제의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바른 믿음 바른 삶을 살고 있다면, 내가 전도한 사람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으며, 내가 바른 신앙의 본을 보이고 있다면, 가정의 믿지 않는 식구들에게까지 반드시 주님의 은총이 임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이 보신 것은 중풍병자가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4.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이 불쌍한 중풍병자를 반드시 치료해 주실 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남의 집 지붕을 뚫고서라도 이 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었고, 바로 그 믿음이 치료의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승산이 없는 곳에 승부를 걸지 않습니다.
남의 지붕을 뜯어내고서라도 예수님께 이 병자를 데리고 가야만 할 이유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이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희생하고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물이나 문제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를 가지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문제나 특히 헌금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까지 우리는 망설이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딸아이의 결혼을 통해 감사할 일이 많았습니다마는, 지난주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결혼을 축하해 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또한 여러 나라에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축의금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저희 부부를 감동시킨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부부가 유럽에 갔다가 동구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선배 선교사님 부부가 건축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의 그간 고생하셨던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는, 우리 교회 선교부에서 준비한 선교헌금하고 일 년 동안 모아두었던 저금통을 깬 돈과, 그리고 여행비용에서 일부를 떼어서 그분들에게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저희는 건축이 완공되었다고 한 번 오시라는 소식도 받았지만 갈만한 형편도 못되고 그냥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이 분들이 오사카에 있는 어느 교회의 강사로 오셨다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제가 이곳 오사카에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딸 아이 결혼을 축하한다고 많은 축의금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제 아내는 말하기를,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11:1)는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분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해서 드린 것은 아닙니다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얻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일,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을 때에는 주저함이 없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먼저 보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믿음으로 합심하여 선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기적과 능력과 축복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5. 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는 주님의 치유의 선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입니까?
예수님에게는 이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음을 이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무모할 정도의 행동을 가져왔고, 바로 그 믿음이 주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메고 온 중풍병자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메고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믿노라고 말은 하는데, 믿음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능력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믿을 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불신하면 망설이고 의심하면 행동할 수 없지만,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고, 그 믿음이 난관과 문제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누가 세상을 이기고 누가 문제와 난관을 돌파할 수 있습니까?
스티브 잡스와 같은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입니까?
세상을 놀래게 만들 정도로 능력 있고 재주 많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무능하고 나는 부족해도 내가 믿고 따라가는 우리 주님의 변함없는 그 사랑을 믿고,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믿고, 그 분만이 나를 축복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6. 마지막으로 중풍병자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네 병이 나았다고, 치료되었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까?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죄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그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물론 환경까지 저주받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사람 속에 자리 잡고 주인 노릇하는 죄를 먼저 사해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중풍병자를 향하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람의 중풍병이 그 사람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사람의 지성을 눈멀게 하고, 죄는 세속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불쌍하게도 그곳에 정당한 이유도 없이 생명을 걸게 만듭니다.
죄는 의와 불의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며, 죄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자신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만들며, 도리어 죄가 주는 온갖 저주와 고통 속에서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들이 한 평생 수고하고 희생해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렸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서도 모든 것이 평안하고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지옥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를 바라 보아야만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 (롬1:29-30)라고 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를 향해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7.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에는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질병에서 고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이 분쟁하는 것과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대적하고 서로에게 고통과 눈물을 주는 이 모든 것이 죄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께로 온 이 믿음의 사람들처럼, 예수님만이 우리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해 주실 수 있음을 믿고 나오는 것인 줄 믿습니다.
왜 예수께로만 가야하며, 왜 예수만 믿어야 합니까?
그 분만이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모든 형편을 잘 아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인도하시는 참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 선한 행위를 일으킨 사람들 안에 있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지진과 해일, 원전 사고 그리고 경제의 위기라는 이 4중고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본문의 중풍병자와 같은 이 일본을 우리가 나서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일본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축복하시며, 전도자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은혜와 영광으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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