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25.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마태복음 8:24-34)
[성경본문] 마태복음8:24-34개역개정
24.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8.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29.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마태복음 8:24-34/2011.9.25.오전)
1. 통계에 의하면 일본 인구의 0.4%만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경지역은 기독인구가 0.9%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지역의 크리스천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인구의 99.6%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불신앙 가운데 있습니다.
불신앙이란 세상 사람들 스스로 생각할 때, 그것이 자유요 평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신앙 자체를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지금 일본은 패전 이후에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이즈미 총리 이래로 1년짜리 총리들이 수상자리를 이어가면서 정치, 경제, 외교관계는 물론이고 3.11의 대재난에 이어 계속된 태풍이며 홍수로 말미암아 사방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워낙 일본 사람들이 점잔하고 남에게 죽는 소리를 안내고 속으로 삭이는 민족이지만 속으로는 다들 울고 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장만했는데 지진이 나서 부서지고, 해일이나 홍수에 떠내려가고, 물에 잠겨서 못쓰게 되고, 가설 주택에 들어갔지만 그 가설주택도 물에 잠기고, 지역의 기반산업이 붕궤되면서 직장도 사라지고, 2년 후에는 가설주택을 나와야 하는데 정말 막막합니다.
원전사고로 고향과 멀리 떨어진 객지에 피난 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일본 자체가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도리어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일본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유럽이나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1100만 명의 국가 그리스의 문제를 유럽 전체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죄의 결과요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의 결과인 줄 전연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근본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곪아가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고 두려움과 혼란 속에 빠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불신앙의 한계라는 사실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불신앙 때문에 고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같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풍랑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고, 제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여러 사람이 바로 이 갈릴리 바다의 어부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풍랑은 보통 때에는 경험하기 어려운 매우 격렬한 풍랑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함께 배에 모시고 가는 제자들에게 왜 풍랑이 일어나 위기에 빠져야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흔히 예수님 믿으면 인생의 풍랑, 즉 고통 하는 문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지켜 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문제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지도 못한 때에 잃어버리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숨이 막힐 것 같고, 여러 가지의 두려워할 만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경우에는 문제를 만나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어지면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계속 고통합니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신을 버리고 방치하는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같은 고통, 같은 문제를 만나도 제일 먼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죄 때문에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신앙의 시련인가? 아니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더 놀라운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따라 가는 것입니다.
3. 신앙의 사람들이 불신앙의 세상 사람들과 다른 또 다른 한 가지는 확신입니다.
신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나는 이런 것 때문에 결코 망하거나 죽지도 않는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 확신이 어디서 옵니까?
사도바울은 고백하기를,「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5,39)고 했습니다.
이 확신은 다름 아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날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나 같은 못난 인생을 위해 하나님은 그 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전쟁이 나서 사방이 죽음이고 고통인데, 젖먹이를 않고 있던 한 어머니가 주위에 보니 모친을 잃고 젖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갓난아이들을 보자, 자신의 품 안에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차례대로 다른 아이들에게 젖을 물려주고 보니 정작 내 아이는 목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죄로 죽어가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품 안의 독생자는 십자가에 던지고 우리를 대신 품에 안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것이 우리가 환란 속에서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인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풍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세상을 이기고 두려움을 주는 모든 고통을 물리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불신앙과의 싸움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풍랑으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했습니다.
마가복음은 같은 사건에서「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고 했습니다.
믿음이 적다, 믿음이 없다, 믿음이 약하다는 이 모든 표현은 한마디로 불신앙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4. 왜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두려움은 곧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믿음만이 있으면 모든 두려움은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습니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했고, 그것도 모자라 모든 제자들이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다고 하면서 반대의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신앙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불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불신앙이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 온 것입니다.
그러나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일어난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 하자 능력과 큰 확신으로 불신앙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들고 온 아시아를 돌면서 불신앙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교회를 반석위에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큰 확신을 가진다면, 온 세상이 재앙으로 고통 하는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체험하는 줄 믿습니다.
5. 그런데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3:1)하면서 그 때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묘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3:2-5)시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세란 고통 하는 때요, 이 고통의 원인이 전부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연약해지고 교회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돈은 사랑하면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주께 받은 사명에 충성하기 보다는 세상일에 더 부지런하다면 이것이 불신앙의 증거입니다.
디모데가 밝힌 말세의 이 사람들의 특징은 전부 악인들의 행위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악인들의 행위를 디모데는 이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교인들을 향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이때에도 교회 안에서 악인들의 행위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것은 불신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불신앙이 존재한다면 이런 행동은 교회 안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앙과 싸우되 불신앙에 대한 전쟁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신앙을 해결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이 교회 안에는 물론이고 우리 가정과 우리의 삶의 현장에 넘치는 줄 믿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이 물러가면 저주와 고통은 물러가고 두려움과 한숨도 사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치료되며 귀신은 쫓겨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할 줄 믿습니다.
6.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불신앙이고 이 불신앙이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 28절 이후에 가다라 지방에 가신 예수님이 누구를 만나셨습니까?
두 사람의 귀신 들린 자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사납고 힘이 센지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여러 번 쇠사슬에 그들을 묶어 보았지만 번번이 삼손이 포박을 끊되 불탄 삼실을 끊어버리듯 귀신들린 자들은 그렇게 쇠고랑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 단번에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말았습니다.
귀신들이 도리어 예수님께 간청하여 그 사람들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 들어가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간청대로 허락하셨더니 군대마귀는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 바다 속에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 이전에 그 분만이 가지신 권세였습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권세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권세와 능력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불안에 떨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염려 근심하는 것을 똑같이 흉내 내면서 살아야만 합니까? 불신앙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귀신들린 자가 무서워 아예 접근도 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곳으로 가셨고, 그들을 만났고, 그리고 귀신들린 자들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의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된 우리들도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케 하며 귀신을 쫓아내」(마10:8)는 능력입니다.
심지어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7.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의 존재를 사람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들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존재, 특히 그 분의 능력과 권세를 알지 못하고 목자 없이 길 잃고 헤매는 어린양처럼 세상 한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만 뜨면 근심 걱정 한숨이요, 시도 때도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10:19)고 했습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받은바 사명에 목숨을 건다면 우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는 줄 믿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전유물입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합니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도우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 때부터 두려움과 근심과 고통은 물러가고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기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