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4.큰 믿음(마태복음8:1-13)
[성경본문] 마태복음8:1-13개역개정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큰 믿음(마태복음8:1-13/2011.9.4.오전)
1.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대회에서 폐회를 하루 앞둔 어제, 50킬로미터의 구간을 걷는 경보대회가 열렸습니다.경보대회를 가리켜 사람들이 죽음의 레이스라고 부를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시합입니다.
마라톤 보다 거리가 훨씬 멀고, 규칙이 매우 까다로워 자칫 잘못하면 유명 선수들조차 실격을 당하는 어려운 경기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선수가 처음부터 단독 선두를 유지하고 그 뒤를 한국 선수들과 각국 나라 선수들이 2위 그룹을 형성하고 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선두 선수의 실격판정과 몸이 뒤틀리는 경련 등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하면서 차례차례 그 모습이 중계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특징은 처음부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달립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대단히 실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중에는 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선두에서 낙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선수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며,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체력의 일부를 보존하다가, 기회가 왔다고 생각되면 그 때 젖 먹던 힘 까지 다 동원하여 승부를 겁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일본의 축구팀이 북한하고 마지막 까지 0–0으로 이어갔지만, 로스타임 3분을 남기고 골이 터졌습니다.
한국하고 싸울 때에도 늘 그랬지만 일본팀은 나중을 알 수 없는 팀입니다.
마지막이 무서운 팀입니다.
우리 인생도, 우리의 신앙도 일본팀처럼 해야 합니다.
2. 산상설교를 마치고 내려오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이란 산에 올라가서 은혜 받는 것도 있지만, 받은 은혜를 세상에 내려와서 삶 가운데 바로 적용하는 은혜의 삶을 사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고통하면 문제로 부터 도망하려고 합니다.
부부사이도 뒤틀리면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인간관계도 부끄럼을 당하거나 어떤 문제에서 실패하면 그것을 만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망갈 생각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많은 세상으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셨고, 그리고 문제 많은 죄인들과 병자들과 고통 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의 문제와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살펴주셨고 도와 주셨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를 통해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 것은 삶의 현장에서 받은 은혜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선교사 수양회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쓴 한 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제목은 「거짓말쟁이 목사」입니다.
은사 선생님은
십자가 없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고 말씀하셔서
늘 십자가 설교에 힘을 쏟았지만
설교를 마치고 나면
십자가 없는 설교에 속이 상했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은사님도 가시고
많은 분들이 떠나셨지만
제 설교에는 십자가로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야 목사다운 설교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교회에서 설교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분의 저서를 선물 받고
책 속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연약한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루하루 연명하시면서
십자가의 삶을 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E.M 바운즈는 말하기를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서 나온다 했는데
나는 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고
십자가 설교를 했으니
나야말로 거짓말쟁이 목사였습니다.
3.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 자신의 행복입니까? 성공입니까? 아니면 은혜 받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는 자의 삶이, 은혜 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콩나물을 심고 그 콩나물의 머리위로 물을 부으면 콩나물이 쑥쓱 자라납니다.
들판에서 자라나는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그 머리를 움직이며 익어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강조하시는 내용은 믿음입니다.
한 문둥병자는 문둥병으로 고통당하고 버림당하고 이 문둥병 때문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린 이런 사람이라도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치료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이 고통스럽고 저주로 가득찬 인생도 새롭게 변화될 줄 믿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도 마찬가입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하인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 고통 하는 것을 불쌍히 보고, 자신이 마치 병든 사람처럼 예수님을 만나 하인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청한 것입니다.
하인이 병들었는데 마치 제 자신이 병든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귀한 마음을 가진 백부장을 귀하게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어찌 이천한 인생이, 그것도 이방인 된 사람의 집에 모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 평생에 신앙생활 하면서 최근에 와서 신앙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오는 이 백부장의 태도, 곧 겸손함입니다.
4. 우리가 흔히 추구하는 큰 능력, 큰 믿음이란 다름 아닌 겸손함에서 시작합니다.
사도바울은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듯이, 아무리 큰 능력,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여도 겸손함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는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주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제 문둥병 치료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자나 백부장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주님 앞에서 겸손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간구를 듣고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감동받고 놀란 것은 백부장의 외모나 지위나 그가 가진 권세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있었습니다.
여기 감당치 못한다는 말은 주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연약하고 무가치한 존재인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라면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식민지 안에서 로마의 군사 100명을 거느리는 장교쯤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신분입니다.
문제는 요즘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 선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워낙 교만해서,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지는 몰라도 겸손한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에 가면 1905년에 선교사가 세운 금산교회가 있는데, 그 마을의 유지였던 조덕삼이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 땅도 기증하고 교회 건축도 자신의 재산을 헌금해서 지었습니다.
하인들도 다 예수 믿게 만들었는데, 이 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는 날, 두 명의 후보를 세웠는데 한 사람은 조덕삼집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집의 마부로 일하는 이자익집사였습니다. 교회의 재정의 대부분을 조덕삼집사의 헌금으로 유지하고 있었는데도 투표 결과 마부인 이자익집사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집사는 그를 장로로 깍듯이 모셨고, 몇 년 후에 그도 장로로 선출되었지만 이자익 장로를 선임장로로 존중했고, 나중에는 이자익 장로가 신학교를 나와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자 이자익 목사님을 진심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겸손한 마음,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들 중에 가장 귀한 선지자로 생각하신 분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고, 예수님보다 훨씬 먼저 선지자로 사역하였고, 예수님이 그에게 세례 받으시려고 요단강에 나오실 때에는 이미 세례요한에게는 따르는 사람들과 제자들의 수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막1:7)고 하였습니다.
가장 귀한 우정으로 표현된 다윗과 요나단의 사이에 무엇이 있었기에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까?
왕의 아들 요나단의 겸손함이었습니다.
5. 성경에서 겸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은 겸손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하기를,「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마21:5) 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사람은 미워하시나 겸손한 자에게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람들을 보면 교만한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들끼리 어울려 다닙니다.
분위기나 느낌, 감정들이 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겸손의 왕이시기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기적을 어떤 사람들이 믿습니까?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인 줄 알고 주님의 은혜 이외에는 소망이 없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큰 믿음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의 것인 줄 믿습니다.
누가 자신의 뜻을 버리고 예수님의 뜻을 좇아갑니까?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겸손한 사람들을 붙드시고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6. 문제는 겸손한 사람들에게 임한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가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누가 큰 믿음의 사람이며, 누가 큰 능력의 사람이며, 누가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믿음대로 이룬 사람들입니다.
기도한대로 응답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권이나 도박 같은 것을 통해서 일확천금을 하면 성공했다고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마는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청교도적인 신앙을 지키는 교회에서는 지금도 교인들이 도박을 해서 돈을 따거나 복권이 당첨되어 십일조를 내면 그것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정당한 수입이 아니요, 도리어 사람을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소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 앞에 와서 겸손한 태도로 간구하는 자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믿음대로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운데 보면, 아무리 믿씁니다, 믿씁니다 해도 믿는 대로 안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교만한 마음이 위로부터 내리는 온갖 좋은 하나님의 선물들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기는 쉬워도 겸손하기는 어렵습니다.
능력을 행하기는 쉬워도 그 능력을 겸손으로 포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은 뜻을 이루는 줄 믿습니다.
겸손한 마음에서 큰 믿음이 자리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육체의 병중에 하나가 바로 문둥병입니다.
문둥병은 저주 받은 병이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중에 제일 무서운 병이 바로 교만함입니다.
교만은 저주받은 마음이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이요, 심판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7. 우리의 행복은 성공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큰 믿음의 삶에 있습니다.
믿음대로 역사가 일어나고 믿는 대로 응답을 받으려면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 주님은 세상에 오셨고, 우리 보다 먼저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셨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셨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만드신 줄 믿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고, 「가라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하고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큰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큰 믿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겸손한 마음입니다.
사람과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 분의 은혜를 구하는 곳에서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