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11.예수님은 우리를(마태복음 8:14-17)

[성경본문] 마태복음8:14-17개역개정

14.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님은 우리를(마태복음 8:14-17/2011.9.11.오전)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전에는 경험하지 못하던 한가지의 심각한 문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믿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몰랐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믿고 난 순간부터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의 증거들을 무너뜨리고 이전의 불신의 상태로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악한 궤계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사단은 우리의 약점이 드러나면, 사정없이 물고 늘어지면서 그것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의 노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홍수에서 구원받은 이후에 노아는 술에 취했고, 그의 술 취함을 통해서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고, 그의 후손들이 살던 소돔 고모 라도 유황불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노아에게는 단순한 실수로서의 술 취함이었지만, 마귀는 그 틈을 노려 그의 자손들을 저주가운데 가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고, 이제는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시는 모습이 8장 이하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8장의 처음에는 불쌍한 문둥병자를 치료해주셨고,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서 그의 하인을 치료해 주셨고,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시고, 나중에는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며, 군대 마귀를 쫓아내어 사람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사역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 모든 사역은 한마디로 영적 전쟁 그 자체입니다.
그의 생애 자체가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출생에서부터 헤롯의 핍박을 받으셨고, 공생애의 기간 동안 바리새인 서기관 등의 종교지도자들의 공격과 노골적인 사단의 공격과 방해를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죽음을 기뻐하면서 영적 승리가 자신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3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여 모든 믿는 자들의 영원한 주가 되셨습니다.

2. 본문에서도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다가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자신의 질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치료하셨다고 했습니까?
본문에서는「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났」(눅4:39)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격이 없는 질병을 향해 꾸짖으시고, 생명이 없는 바람과 풍랑을 향해서도 꾸짖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어릴 때, 같은 부산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많이 살았습니다.
제몸이 너무 허약해서 자주 경기로 식구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한 번은 마당 한 가운데서 정신을 잃고 넘어가는데 할아버지께서 도끼를 들고 제게 달려와서는 당장 도끼를 제 가슴에 내려칠 것처럼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손자의 질병으로 인한 위기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는 종교가 없으신 분이지만, 질병의 배후에는 악한 영이 있다는 것을 아셨던가 봅니다.
예수님은 질병은 물론이고 풍랑과 바람 뒤에는 예수님 자신은 물론이고 제자들을 위기 가운데 빠뜨려 그들의 믿음을 빼앗으려는 사단의 세력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질병에는 병균에 의한 질병이 있는가 하면, 생활 습관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질병도 있습니다.
병균은 균을 죽임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환경에 의한 질병은 생활 습관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꿈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으로 말미암는 질병은 약을 사용해도, 물리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왜냐면, 이런 것은 겉으로는 질병으로 나타나지만 그 배후에는 사단의 세력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3. 병든 베드로의 장모를 꾸짖으신 것도 그 배후에 사단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며 그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에게는 생명을 가지고 호흡을 하는 존재는 물론이고, 다른 생명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무생물들까지 다스리고 그 한마디의 명령에 절대 복종케 하는 창조주의 능력과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 한 가지는 모든 것을 사단의 활동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모든 질병이나 심지어 인간의 실수나 죄까지도 여기에 붙여 합리화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남편을 화나게 만들어 놓고 화를 내는 사람을 향해 귀신들렸다고도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화를 내도록 원인을 만든 사람은 귀신의 우두머리입니까?
또 한 가지는 사단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의 축사 활동을 통해 귀신들이 쫓겨나고 온전해 지는 경우를 많이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 자신도 마귀에게 이끌려 시험 산에서 3가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는데, 그에 반하여 성령의 역사를 거슬리는 사단의 활동이 얼마나 험악했습니까?
문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선민 이스라엘을 범죄하고 심판받도록 만들며, 예수님을 시험하며 복음의 사역자들을 방해하고 박해하며, 오늘날에는 우리들에게도 온갖 시험거리와 유혹과 고통을 가져 오는 존재가, 베드로의 장모에게 열병으로 활동하던 존재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놈인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영적인 예리함으로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을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4. 옛날에 저주받은 땅에 가서 살면 그 저주가 임한다고 해서 반신반의 하였는데, 한곳에서 30년 가까이 목회를 하면서 돌아보면, 그 말이 참됨을 알았습니다.
교회 와서 아무리 넘치는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돌아가도 내 삶의 근본을 바꾸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가리켜 「쓴 뿌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 하」라 (히12:15)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리 몸에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가서 달라붙어 마음대로 자라는 종양이 있습니다.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면서 다른 정상적인 모든 세포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몸집을 급속도로 불려 나갑니다.
결국 인간이 암이라고 하는 세포에 정복되어 죽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암세포 같은 종양이 우리 마음에도 있고, 영적인 세계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간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삶의 환경과 조건이 어렵다 해도, 믿음으로 살면 환경을 이기는 능력을 얻는 줄 믿습니다.
내 자신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연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말씀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는 길이 얼리는 줄 믿습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고, 바람과 파도까지 잔잔케 하시며, 사단의 세력도 꺾어버리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이기는 능력, 회복케 하는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5. 계속해서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더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니,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고 했습니다.
고열로 인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던 여자가 고침 받고 일어나 즉시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시중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질병으로 누워 있었던 사람입니다. 수척해서 힘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주님의 손발이 되어 봉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질병에서 치료받고, 건강을 얻은 이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먼저 아비를 장사하고,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그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믿지 않는 남편이나 시어머니나 식구들을 먼저 달래고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먼저 한 사람들은 전부 신앙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이 박해가 있어도 먼저 예배하고, 먼저 주일 성수하고, 먼저 십일조 생활하고, 먼저 봉사하였더니,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다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승리보다 더욱 값지고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는 신앙적인 승리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6. 일본의 정치가들이 60여 년 전에 원자력을 좋은 곳에 사용하자고 시작한 것이 원자력 발전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원자력의 혜택을 누린 만큼 빼앗아가고, 문명의 이기로 얻은 만큼 상실감과 상처가 더욱 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의 육체, 정신, 환경을, 심지어 영혼까지 다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문명과 과학세계가 인간을 진보시키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고통과 슬픔을 안겨 주었고, 두려움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6-17절을 보니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연약함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우리들을, 귀신들려 고통하는 불쌍한 우리들을, 목자없이 유리하는 우리들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문제들을 친히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했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4-5)고 말했습니다.
언 듯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병든 자들을 간단히 치료해 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신 만큼 그 분은 십자가에서 아픔을 당하셨고,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서 귀신을 좇아내신 것만큼 그분은 사단의 창에 찔려 모든 피와 물을 십자가위에서 다 쏟아 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만큼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외면당하시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 만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고통 중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실상은 그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7. 우리들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힘 있는 것처럼 행세하기를 좋아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외롭고 불쌍한 존재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하지 않으면 바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회복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목사님께 질문하기를, 목사님!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가요? 너무 괴롭습니다. 목사님은 이 도시에 문제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문제가 있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문제없는 곳이 있다면 공동묘지의 무덤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살아 있다면 당연히 그 문제를 주님께로 가져가야 할 것이고, 주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우리들을 치료하시고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좇아내신 이유는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든 자, 지친 자, 실패한 자, 버림받은 자, 귀신들린 자, 원통한 자, 갇힌 죄인들까지고 다 용납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병든 사람들을 버립니다. 병원도 치료가능성이 있는 사람만 받아 치료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세상이 버린 사람들을 찾아오시고 그들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되는 순간 이 베드로의 장모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습관적으로 교회를 드나들면 불쌍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믿고 따라가는 예수님이 날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며 특히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신 것이 무엇이며, 지금도 주님이 날 위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올 때 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기쁨과 축복과 은혜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셨고, 예수님은 홀로 서 있는 우리의 친구가 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병든 육신과 저주 받은 환경을 치료해 주시고, 하늘나라의 소망 속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구원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제부터는 이런 은혜와 축복이 이 일본 땅에도 넘치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데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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