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4.부활의 증인(누가복음 24:1-12)
[성경본문] 누가복음24:1-12개역개정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부활의 증인(누가복음 24:1-12/2010.4.4.오전)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면제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에게 절망적인 슬픔과 낙심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1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죽음은 결코 두려움이나 종말이 아니라, 영원하고 확실한 장래를 보장받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는 줄 믿습니다.
2.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 부활은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실제 사건이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456번이나 예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산 증인들의 삶을 통해서도 예수 부활은 증거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과 영광을 통해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은「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4)고 했습니다.
부활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믿는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정하신 예정이며 섭리입니다.
또한 이 부활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던 증거입니다.
3. 예수 부활은 예수님의 자신의 증거와 많은 역사적 사실로 증거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3일만의 다시 살아날 것을 여러 번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40일간 나타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행26:23-29절에 베스도 각하와, 아그립바 왕도 최근에 일어난 예수 부활의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미루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할 때, 이론이 타당해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유는 기독교의 진리는 초 이론적이요, 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자들도, 여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날 때 그들은 믿었습니다.
바울 역시, 아덴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그의 증거를 듣고 믿은 사람은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부인, 그리고 그밖에 몇몇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때에 능력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고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4. 그러면 믿는 자들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두려워하던 그들이 담대한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를 잡아 죽인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고, 로마 군병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잡혀 죽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사랑하고 따르던 스승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숨어 지내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삶이 염려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생명을 걸고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 생명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교회와 우리 모두가 부활의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약한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아주 적인 일로, 사소한 일로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담대합니다.
죽을 자리에 가서도 두려움 대신에 담대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영생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생과 내세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더 나아가서 부활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온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증거하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생의 온갖 자랑과 잡담을 늘어놓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부활의 능력은 증거할 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그 사람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평생 예수 믿고, 마지막에 가서는 예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 분을 믿고 따라갈 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과 경험을 초월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지금도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시는 성령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6.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무덤 가운데서 찾을 분이 아닙니다.
본문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미 부활하고 계시지 않는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말하기를, 그는「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6)고 했습니다.
당시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하고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던 바울도 예수 부활을 체험하고 말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자신의 삶을 드렸고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분명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 관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청원하고, 허락 받아 장사지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인 것을 사람들 앞에서 증거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요,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을 담대히 증거 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이 땅, 이 민족을 살리며, 복 받게 하며, 영원히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순교까지 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 뜻 깊은 부활주일에 이런 믿음, 이런 용기, 이런 담력, 이런 축복을 우리 모두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7. 한 때 전 세계의 우등생임을 자랑하던 일본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과 일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은 물론, 일본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뾰쪽한 해법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우등생이 세계적인 문제아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부활의 증거들이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여 무능하고 부끄러운 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요한복음 11: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습니다.
믿으면 증거해야 하고, 믿으면 믿는대로 살아야 합니다.
믿지 못하니 문제가 생겨도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증거하지 못하니 능력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능력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8. 베드로는 공회 앞에서「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20)고 했습니다.
그는 사실은 사실대로 믿을 뿐 아니라, 사실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를 증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대로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에는 힘이 있고, 담대함이 있으며, 설득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지구촌은 많은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능력을, 죄와 사망으로 충만한 세상에 쏟아 부어야 합니다.
바울의 부활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매복하고, 죽도록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 이 예수 부활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본복음화와 세계선교, 천국 일꾼 양성과 성전건축이라는 4대 사명 위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축복을 쏟아 부으시고, 생명의 열매가 풍성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자신은 능력과 생명의 삶을 살며, 이 일본과 이 시대가 예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예수 부활의 복음의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