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29.예수 십자가를 보라(누가복음 23:44-49)
[성경본문] 누가복음23:44-49개역개정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예수 십자가를 보라(누가복음 23:44-49/2010.3.29.오전)
1. 아오모리에 가면 명물로서 「고긴사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1724년에 공포된 농가근검절약법에 의해 면을 재배할 수 없고, 삼베로는 추운 날씨에 몸을 제대로 보호 할 수 없기 때문에 삼베 기지의 구멍에 면으로 수를 놓아서 몸을 따뜻하게 보호한 것이 오늘날의 아름다운 문양의 아오모리 「고긴사시」가 된 것이라 합니다.
평생을 이렇게 수를 놓은 어느 할머니의 손을 보니 손가락 끝이 휘어졌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변형된 그 손가락에서「고긴사시」의 명인의 삶이 보였습니다.
또한 그 장인의 기술을 딸에게 전수했는데, 그 손녀가 아직 8살이지만 어머니의 수 놓는 모습에 흥미를 가져 즐겁게 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는 모습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습니다.
한 가지 일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 것은 어찌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한 평생 그 분과 동행하며 그 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 예수님의 흔적과 예수님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과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에게는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몸을 드린다한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교회당 문을 열고 세상으로 돌아가면, 삶이 너무 분주하고 피곤해서 주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기억조차 하지도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명의 삶이 각 사람의 헌금함 이름 아래에 꽂혀 있는데도 어떤 사람은 한주, 두 주가 지나도 그대로 꽂혀 있을 때 목사의 마음이 답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예수님의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의 남학생 하나가 항상 주위가 산만하고, 학교 성적이 좋지 못하여 담임 여선생님이 걱정이었습니다.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친과 단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선물을 준비해서 가져 오는데, 이 아이의 선물꾸러미는 신문지에 스카치 테프를 더덕더덕 붙여 포장해 온 것이라 받기에도 민망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선물을 다 열어보고 각각 칭찬해 주었고, 마지막에 이 아이의 선물을 열어 보니 그곳에는 쓰다 남은 향수와 유리로 만든 가짜 다이아몬드가 많이 박힌 팔찌인데 그것도 중간 중간에 알맹이가 몇 개 빠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깔깔거리고 흉보며 웃었지만, 선생님은 향수를 찍어 바르며 이 아이에게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 돌아갔지만 이 아이는 가지 않고 선생님 곁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물어보니 선생님에게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고, 그날부터 이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의 보살핌에 공부를 잘했고,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이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 주었고, 나중에 의과대학을 나와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선생님이야 말로 이 아이에게 행복과 소망과 사랑을 주는 향기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향기를 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교회도 이 모양으로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향기로 가득한 교회가 된다면, 예수님의 향기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생명의 역사는 지금보다도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로 채워질 것이며, 우리의 삶은 이 오사카, 이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3.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본다」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세 번째는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각각 신분이나 출신이나 배경이 다르지만 한 가지의 사건을 놓고, 한 장소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분의 죽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것을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로 갈보리 언덕과 그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 십자가를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결심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4. 첫 번째로, 십자가 사건을 진두지휘하던 로마 장교인 이 백부장은 시종일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일체를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의 과정에 이르는 예수님의 모든 아픔과 수욕과 흘리신 피를 보았으며, 그 분이 죽으실 때 일어난 지진과 갑자가 어두워진 천재지변의 시종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이 처참한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으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마27:54)이라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비록 로마인이요 군인이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5. 두 번째는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좋은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몰려온 소위 구경꾼들이 갈보리 언덕과 그 주변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백부장처럼 십자가 사건의 현장 가장 가까운 곳에는 있지 않았지만, 사건의 생생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마지막 운명까지 지켜본 이 사람들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슴을 치는 행위는 애곡의 표시입니다.
죄책을 느끼거나 통회하는 것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표현이지만, 적어도 이 십자가의 사건을 지켜본 구경꾼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고 그를 못 박아 죽이라고 한 자신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는 죽음을 당할 만한 죄를 짓거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의 무죄성을 자신들의 가슴을 침으로 표시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요구와, 그 잘못된 결정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 십자가 처형에 대한 사건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이나 이 군중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불법의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뒤늦게나마 후회와 죄책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아는 자들과 그를 따르며 섬기던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종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잃는 슬픔과 충격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6. 그들은 한결같이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었고, 그분은 죄인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할 구주가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는 우리를 대신하신 주님의 사랑의 십자가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해야 할 정도로 처참한 희생을 치르신 예수님의 죽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살기 어렵다고 하여도,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봐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십자가에 못박힌 이 예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볼수록 그 분의 당하시는 수욕과 고통이 예삿일이 아님을 알았고, 마침내 그 분의 죽음에 임하여서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변에 서서 이 십자가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재미로 구경하던 이 사람들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볼수록 죄책감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분의 운명하심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가슴을 치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은혜의 삶을 살지 못합니까?
왜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그 십자가 위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은혜가 사라지고, 시험거리고 근심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게 되는 것입니다.
7. 세상의 장인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손가락이 휘도록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자녀된 우리가 내 몸을 아끼고, 신앙과 생활을 별개로 생각한다면, 어찌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일 년에 몇 번 행하는 이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예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내가 한 몸을 이루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사건이요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내 육체와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쏟아 붓고, 그 분의 살을 찢어 내 몸에 전이시킴으로 그분과 내가 하나를 이루는 새로움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면 남들은 볼 수 있지만 내게는 십자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를 숙이면 가슴의 목에 걸린 가슴의 십자가가 보이고, 내 심령 속에 새겨진 예수 사랑의 인을 친 십자가가 보일 것입니다.
누구라도 보면 알 수 있지만, 보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성경도 보면 깨달아지는데, 세상만 보니 무슨 은혜가 있고 힘이 나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니 당연히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8. 현대인들에게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입니다.
인류 문명이 최첨단을 달리는 이유도 보는 것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하나님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시고, 내 삶에 감사가 넘치게 하시며,
내가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로 진동하도록 도우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자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세상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더욱 확실해 집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했으니, 이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 십자가를 붙듦으로 생명을 살리는 능력의 사람이 되며,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감으로 예수의 향기를 온 세상에 진동시키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