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11.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18-22)
[성경본문] 요한복음21:18-22개역개정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너는 나를 따르라(요한복음 21:18-22/2010.4.11.오전) 1. 2006년경부터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모자라 농산물은 물론이고 자연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예언하기를, 만약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정도 밖에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동물도 사라지고 인간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일이 우리의 현실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양봉업자는 하루아침에 5천만 마리의 벌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사과, 딸기, 호박 등의 농작물의 90%가 꿀벌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로 보고 있지만, 더 정확한 원인은 밝혀 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 재앙이 시작에 불과하지만, 일본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중에, 최근에 그 대안으로 연구 개발되고 있는 모종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더러운 파리입니다. 애급을 초토화 시킨 10가지 재앙에도 등장하는 파리가 잘만 연구하면 인류를 대재앙에서 구원 할 수도 있습니다. 무균 상태에서 키운 파리를 농작물 가까운 곳에 그들이 원하는 먹이를 놓아두면, 이 파리가 꽃을 찾아 여기저기 날라 다니면서 꿀벌을 대신해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귀찮기만 하고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파리가 이제는 위기에 빠진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더 이상 더럽고 귀찮은 파리가 아니라, 생태계 파괴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감을 가진 슈퍼스타의 파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2.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아무리 잘 생기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삶의 존재의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잘못된 것에 생명을 걸고 산다면, 이것은 파리만도 못한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배운 것도 없고, 가진 소유도 없고, 사회적으로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주님 만나 새사명을 부여받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 때, 세상은 그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삶을 살았으며,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믿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의 주가 되심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이것이 요한복음을 쓴 저자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많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으로 되돌아간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들과 재회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자리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띠」는 인간의 자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3. 사람이 젊을 때는,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기 마련입니다. 자기 생각을 따르고, 자기 판단과 능력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주위와 마찰이 일어나고 쓸데없는 오해를 사기도 하며, 많은 실수와 실패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달라집니다. 주위에 대한 배려와 그 동안 체험한 경험을 통해 더욱 신중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남기 보다는, 남들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게 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한문으로 사람을 인간이라고 하는데, 이 한문 人間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사람 人자에, 사이 間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서, 사람 사이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일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떠나 내 혼자 독야청청해서는 바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 화목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은 사람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메는 띠가 아니라, 남들이 메어주는 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젊어서는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가까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정답인 줄 알 때에는 나이 드신 인생 선배들의 처세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끄시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행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나를 묶는 띠를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띠에 묶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띠에 묶일 때 참 행복과 평안이 가정에 넘치는 법입니다. 4. 예수님은 계속해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너는 나를 따르라 고 하십니다. 남을 따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묶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 성질 급한 베드로에게 따르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아프카니스탄 같은 나라를 보면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매일 폭탄 테러에, 불법에, 공포와 분쟁에 휩싸여 있습니다. 연합군이 주둔해도 질서가 유지 되지 않으며, 참다운 자유도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스로에게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람은 좋은데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없으면 남들에게 휘둘리며 끌려 다니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내게 힘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그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라 방종하는 사람이요, 죄의 노예일 뿐입니다. 정욕과 죄의 세력에 끌려 다니는 비참한 노예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5. 주님을 따르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분의 형상을 본받으며, 그 분이 33년간 보여주신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입니다.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주님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주님입니다.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늘 보좌의 영광도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누군가의 좋은 점을 닮으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22절에 보면,「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배우려고 할 때에 배움의 대상을 보기보다는, 주위에서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과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교인들이 제일 많이 빠지는 시험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남을 보고 자기 신앙의 태도를 결정하고, 남을 보고 시험에 들고, 남 때문에 살고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남들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다르고 삶의 모습이 다른데, 어떻게 로봇처럼 똑같이 찍어낸 사람처럼 살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을 사람이 따로 있으며, 어떤 사람은 순교의 영광에 들어갈 사람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재물이나 영광이나 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일 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각각의 삶과 주신 소명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를 입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적 최종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6. 둘째는 사명을 위해 살게 됩니다. 파리 한 마리도 그냥 공중에 날아다닐 때에는 귀찮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사라진 꿀벌을 대신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을 때에는 파리채로 때려잡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땅 속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처럼 보였는데, 스스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고대 에집트에서는 지렁이를 잡는 사람에게는 엄한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난 이후로는 복음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마침내 이 복음을 위해 순교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사명을 다 하였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나를 주관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같은 군인이라도 북한의 군인은 금강산댐에 동원되어 개죽음 당하고, 미친 지도자의 희생물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군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걸기 때문에 그 생명은 물론이고, 그 죽음조차도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7.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받은 사명에 있습니다. 도박꾼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노름을 해도, 세상에 그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욕하고 미친 사람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자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전에 텍사스에 살고 있는 멕시코 사람, 폴 벨이라는 사람이 전도자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3:16절을 가르쳐 달라고 하며, 찬송가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죄짐맡은 우리 구주를 가르쳐 주었습니다.나중에 세례를 받기로 했지만 3주간 동안 교회를 결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5명의 멕시코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는 너무 적은 능력과 지식으로 5명의 사람들을 구원하였고,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한 방울의 피와 한 방울의 물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다 쏟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요, 이 받은 사랑으로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8.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우리의 허리에 띠를 묶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띠요, 진리의 말씀의 띠요, 전도자로서 복음을 위해 고난 받기를 각오하는 사명자의 띠인 줄 믿습니다. 일본선교의 새 시대를 열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야 합니다. 그 따름을 통해 우리가 먼저 변화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에 축복하시고 능력을 베푸시는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보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생명을 살리는 이 시대의 사명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