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21.멀리 떨어진 베드로(요한복음 18:19-27)

[성경본문] 요한복음18:19-27개역개정

19.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멀리 떨어진 베드로(요한복음 18:19-27/2010.3.21.오전)
1. 예수께서 고난당하신 현장에서 나타난 특징은 말이 적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19장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배신, 그리고 대제사장과 빌라도 총독의 심문과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까지의 16번의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생략되거나 기록되지 아니한 말씀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가장 긴급하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묻는 말에 간단한 대답 이외에는 말을 아끼셨고, 심지어 자신을 변호해야 할 상황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은 누구보다 많은 시험을 받으셨고,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시험에 지거나, 고난에 굴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과, 받은바 메시야로서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때로는 도리어 오해와 의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이런 순종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은 말씀에도, 생각에서도, 행함에서도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기록하기를,「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고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분의 무죄성이나 완전성을 말하거나 변호하지 못했습니다.
마땅히 변호해야 할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말았고, 당연히 변호 받으셔야 할 예수님은 홀로 계셨고 침묵하셨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의 부인과 변명, 저주와 배신만을 맛보셨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앞두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 좋은 인간관계의 비결은 거리를 좁히는데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들과의 거리를 좁히며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갈 때, 그런 것이 우리의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여는데 도움이 되고 힘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분과의 거리를 좁혔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던 그 밤에 자신에게 미칠 환란이 두려워 예수를 버리고 부인하고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주님 앞에서 맹세하던 그 제자들의 맹세와 결심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오늘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님의 자리에 내가 있고, 제자들의 자리에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어 할 때, 누군가가 내 떨리는 손을 잡아 주었으면 생각할 때,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려고 할 때 내 손을 잡아주고, 나를 대신해서 변호할 사람이 필요할 때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있습니까?
나는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나는 처세에 능하니 괜찮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고난당하신 주님을 변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형통할 때, 내가 건강할 때, 내가 아직 쓸모가 있다고 생각되어질 때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지금까지 공들인 인간관계도 간 곳이 없으며, 우리는 광야 한 가운데 홀로 버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3. 그러나 감사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여전히 소망은 있습니다.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달아났지만, 주님은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주님은 그들의 모든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버린 그 죄까지도 함께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뿐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이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요일2:1절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고, 항상 우리의 변호사가 되셨고,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리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 자신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나는 틀려먹었어! 나는 죄인이야! 나는 위선자야! 죽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는데, 아직도 우리는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으며, 여전히 스스로가 재판장이 되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위기를 만난 예수님으로부터 될 수 있는대로 멀리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떨어진 분량만큼 주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g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제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8-39)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이며 확신입니까?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내가 도망간다고 멀어지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내 죄나 허물이나 실수로 인해 멀어지는 그런 관계도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따라오시며 사랑하시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4. 루터가 자기 죄로 고민하다가 잠들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벽에 큰 글씨로 자기의 죄들을 낱낱이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들이 너무 많고 엄청나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너무 고통스럽고 슬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못 자국난 손이 나타나더니 루터의 모든 죄 목록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주목하여 보니 그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손이 자기의 모든 죄 목록을 깨끗하게 씻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아무리 참소할지라도 우리를 변호하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에 데려가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은 우리는, 마귀는 물론이고, 세상이나 그 어떤 권력이나, 심지어 우리 자신 스스로도 우리를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가 없음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심문을 받으시고, 수치를 맛보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겪으신 그 목적이 우리를 모든 죄와 모든 저주와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구속함에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이 확신이 오늘 우리를 굳게 세우며, 우리에게 은혜의 삶을 살게 하는 줄 믿습니다.

5. 문제는 베드로가 주님과 멀찍이 떨어져서, 불을 쬐면서 예수님의 일을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차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지 못하면서, 그래서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예수님의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는 예수님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먼 거리는 당장 자신의 신변에 안전을 보장해 줄지는 몰라도, 결국 베드로는 위기를 맞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25)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자기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자기 몸에도 미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황급히 자기에게 다가온 위기를 뿌리치려고 거듭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고,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침내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맹세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짧은 시간이나, 그 사이에 예수를 모른다는 말과 태도가 습관화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자기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신경을 써 주는 것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이 따르지 않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과 고난의 현장에 함께 있지 않는 것은 참 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관심은 관심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관심만 가지고 있다가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 사랑은 희생과 수고와 아픔을 쏟는 것이요, 어려울수록 함께 하는 것입니다.

6. 베드로는 닭 울기까지 그렇게도 예수님을 거듭거듭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죽는데 까지 따라가겠다고 맹세한 베드로가 아닙니까?
그런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미처 돌아보기 전에 이미 스스로 배신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마침내 그는 무너져 내리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행한 일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심문하고 힐난하며 심문하는 사람들보다 더 타락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닭이 울기까지는 주님이 하신 경고의 말씀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와 허물, 자신의 비인격화된 모습은 모르고 늘 남의 탓만 하고 살았습니다.
늘 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늘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닭의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실 때, 그 말을 좀 더 마음에 새겨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더욱 베드로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7. 우리는 주님께 너무 많은 사랑과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기보다는 주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내 자신을 희생하기를 두려워하고,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아까워하고 있습니다.
멀찍이 떨어진 관계는 도움이 안됩니다.
오히려 멀찍이 따라가는 것은 시험거리를 불러 오고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가져 올 수도 있습니다.
지난 2월24일 부산에서 일어난 여중생 살해사건의 범인인 김길태가 지난 14일 범행을 자백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를 교회 앞에 버리고 갔는데, 주워 키운 사람이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라고 했다 합니다. 그는 늘 외톨이로 혼자 지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안되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뒤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33살인 그의 인생 1/3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결국 흉악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멀리 두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멀찍이 떨어진 거리로는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습니다.
교회와의 관계도 멀찍이 떨어져 따라 온다면 그것이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일에 남보다 앞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의 특징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다가가는 친화력을 가진 것입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람을 가까이 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가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8.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는 많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주님의 음성에 남들보다 더 귀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은 헌신의 기회를 갖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과 자신과의 거리를 좀 더 좁히는 일에 열심을 내며, 은혜의 사람은 닭이 울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 허물과 죄를 회개하며, 평소에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줄 믿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는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나를 새롭게 하시며,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이기며 십자가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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